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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도 꼼짝 못하는 ‘킹 메이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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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도 꼼짝 못하는 ‘킹 메이커’ 있다

뉴스1입력 2017-06-19 01:13수정 2017-06-19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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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젠잉(葉劍英)을 안다면 중국 현대사를 상당히 아는 사람이다.

예젠잉은 중국 현대사에 결정적인 두 장면을 연출했다. 한 번은 마오쩌둥의 생명을 구해 준 일이고, 다른 하나는 덩샤오핑을 권좌에 올려놓은 것이다. 일단 두 장면을 음미해 보자

중국 현대사의 최고 절정인 대장정. 대장정 막바지에 마오쩌둥과 장궈타오(張國燾)는 북상남하 논쟁으로 마지막 권력투쟁을 벌였다. 장궈타오는 남하해 홍군이 기력을 회복할 시간을 벌자는 주장을 했고, 마오쩌둥은 북상해 만주를 점령한 일본군과 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군사력은 장궈타오 진영의 압도적 우세였다. 이들의 대립은 서로가 총구를 겨누는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전개됐다.

그러나 ‘어떻게 홍군이 홍군에게 총을 겨눌 수 있는가’라는 대의명분 아래 양측이 전면전까지 가지는 않았다. 상황이 꼬이자 장은 마오를 체포해 처형하려 했다. 그러나 장의 참모였던 예젠잉이 마오에게 음모를 사전에 누설, 마오는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마오는 이때 예젠잉을 마음속에 담아두었다. 후에 문화혁명 때, 거의 모든 혁명 원로들이 수난을 당했지만 예젠잉은 무사했다. 그리고 마오는 비행기 사고로 숨진 린뱌오(林彪) 후임으로 예젠잉을 국방부장(장관)으로 발탁했다.

예젠잉의 활약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마오 사후, 덩샤오핑이 집권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이다. 국방부장으로 군권을 쥐고 있었던 그는 사인방을 일망타진한 뒤 권력을 그대로 덩에게 넘겼다. 덩은 예젠잉이 죽을 때까지 그를 큰형님으로 깍듯이 모셨다고 한다.

그는 두 번이나 중국 현대사의 물길을 바꾼 것이다.


예젠잉의 고향이 바로 광둥(廣東)성이다. 그는 죽었지만 그의 후손들인 ‘예가(葉家)’가 지금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중국 정치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예젠잉은 생전에 6번 결혼해 7 남매를 낳았다. 그들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이 큰아들인 예쉬엔핑(葉選評)이다. 그는 광둥성 성장을 지냈다. 둘째는 예쉬엔닝(葉選寧)으로 군 정보기관의 수장을 지낸 뒤 은퇴했다. 은퇴 이후 광둥에서 사업을 해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바로 예쉬엔닝이 예가의 핵심이다. 그는 중앙 정부와 군부, 사업가 인맥 그리고 군 정보기관에서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막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특히 그는 군 정보기관장을 7년 역임했다. 이 시절 쌓은 정보력과 인맥을 바탕으로 시진핑이 권력을 잡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시진핑 가문과 예가는 이전부터 밀접한 관계였다. 시진핑의 아버지가 시중쉰이다. 시중쉰과 예젠잉은 대장정을 함께한 오랜 동지였다. 예젠잉이 시중쉰보다 16세 연상이다. 시중쉰은 마오쩌둥 시절 하방을 당했다. 그런 시중쉰이 권토중래를 위해 택했던 곳이 고향 산시성이 아닌 광둥성이었다. 시중쉰은 예가의 도움으로 1978년 광둥성 당서기로 내려가 재기를 노렸다. 마침 개혁개방이 본격화되고 광둥성이 경제발전의 선봉장 역할을 잘 수행하자 시중쉰은 중앙정계로 복귀한다.

시중쉰은 정계 은퇴 이후 광둥성에서 말년을 보냈으며, 그의 부인 즉 시진핑의 어머니는 지금도 광둥에서 산다. 시진핑의 두 누나들도 광둥성에서 사업을 해 거금을 번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차기 지도부의 유력한 주자 중 하나가 후춘화(胡春華) 광동성 당서기다. 후춘화는 2012년 광둥성 당서기로 발탁된 이후 은인자중하고 있었다. 시진핑의 인맥인 태자당(공산당 고위간부의 자제들로 이뤄진 파벌)이 아니라 후진타오의 인맥인 공청단파(공산주의청년단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춘화는 최근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가 지난 4월 4일 예젠잉 탄생 120주년을 기념하는 기념식장에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맨 앞줄 정중앙에 떡하니 앉아 있었다. 이는 예가가 후춘화를 차기 대권 주자로 낙점은 아니더라도 거부하지 않을 것임을 상징하는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1주일 후 시진핑 주석이 후춘화의 행동을 칭찬한 것이다. 시진핑이 지방 간부를 칭찬한 것은 아주 이례적인 일이다.

이후 후춘화는 5월 말 광둥성 공산당 대회에서 연설을 하면서 무려 26번이나 시진핑 주석에게 충성을 다할 것을 맹세했다. 차기 대권을 잡기 위해서는 시진핑 가문과 예가의 낙점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후춘화는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로써 후춘화는 차기 대권에 가장 근접한 주자가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예가는 공산 중국 출범 이래 한 번도 ‘킹’을 배출하지 못했다. 그러나 킹메이커 역할은 계속하고 있다. 만약 후춘화가 다음 대권을 잡는다면 예가가 배출한 중국 정상은 덩샤오핑, 시진핑, 후춘화 셋으로 늘어난다. 그렇게 된다면 중국의 진정한 정치 명문가는 예가가 아닐까 싶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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