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獨 메르켈 ‘EU 안보 독립’ 선언… 美중심 세계질서 요동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30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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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28일 “유럽은 더 이상 미국과 영국 동맹에만 의존할 수 없다”며 “이제 스스로의 운명을 위해 싸워야만 한다”고 밝혔다. 유럽연합(EU)의 맹주가 독자 행보를 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70여 년 역사에서 유럽이 미국을 떠나겠다는 움직임은 처음이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등장 이후 흔들려온 국제질서 지형이 또다시 요동치고 있다.

선거 유세 중 나온 말이긴 하지만 평소 신중한 언행을 보여온 메르켈 총리 스타일상 이번 발언은 즉흥적인 것이 아니라 오래 품어온 생각을 적절한 타이밍을 골라 한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침공 이후 유럽인들은 러시아로부터 직접적 안보 위협을 느끼고 있다. 미국이 과연 유럽의 안보를 위해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 불안감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가 대선 기간 공약한 대로 취임 후에도 독일의 대미(對美) 흑자를 지적하며 방위비 증액 요구를 집요하게 외치자 메르켈로서도 임계점에 다다른 것이다.

트럼프는 지난주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헌장 5조인 집단방위 조항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아 충격을 줬다. 미국 마셜플랜이 2차 대전 후 유럽의 경제부흥 축이라면 나토는 안보 축이다. 1949년 해리 트루먼 대통령 이래 역대 미국 대통령이 동맹국이 공격받으면 미국이 자동 개입하는 헌장 5조를 언급하지 않은 것은 68년 나토 역사상 처음이었다. 외려 트럼프는 나토 동맹국들이 국내총생산(GDP) 2% 수준으로 국방비 지출을 늘리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4연임을 자신하는 메르켈은 자유무역과 EU를 옹호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손잡고 프랑스와의 결속을 강화하면서 미국 영국에 의존해온 국방에서 탈피해 독자적인 EU군(軍) 창설까지 검토하고 있다. 유럽이 독일 프랑스 주도의 EU와 전통적 친미, 친트럼프 성향인 영국 두 진영의 갈등 체제로 접어들 수 있다.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와 자국중심주의는 세계 열강의 세력화와 지역주의로 귀결될 공산이 크다. 대선 기간 나토는 물론 한국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등 동맹국을 향해 안보 무임승차론을 주장하며 방위비 증액을 요구했었던 트럼프는 이를 하나하나 현실화시키고 있다. 동맹조차도 이익을 창출하는 비즈니스 대상으로 생각하는 상대에게 안보를 얼마나 의탁해야 하느냐는 유럽의 질문은 바로 우리에게도 향한다. 동맹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대미 협상력도 함께 높여야 하는 한국의 외교도 초유의 시험대에 올랐다.
#앙겔라 메르켈#독일 총리#eu 안보 독립선언#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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