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하준경]정권 명운 걸린 ‘소득과 집값의 경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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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상승 속도보다 집값이 빨리 오르면 정권 재창출 못해
하우스푸어나 렌트푸어 모두 새 정부엔 부담
현재 부동산 열기, 불패자산 믿는 탓
금융건전성 관점서 선제 대응해야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문재인 정부의 ‘소득 주도 성장’은 ‘근로소득 주도 성장’이라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불로소득이나 투기소득을 염두에 두진 않았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부동산 투기나 집값 문제에 대한 새 정부의 정책 방향이 뚜렷하지 않다.

돌이켜보면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 정치권력의 부침에 집값, 특히 아파트값과 중산층 소득의 경주만큼 크게 영향을 준 경제변수는 없었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대체로 중산층 소득과 아파트값이 비슷한 속도로 올랐고, 노무현 정부에서는 소득도 꾸준히 올랐지만 그보다 아파트값이 더 빨리 상승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소득에 비해 집값 상승이 더뎠고, 박근혜 정부에서는 소득 상승이 더딘 와중에 아파트값이 결국 더 빨리 올랐다. 소득 상승률과 인기지역 아파트값 상승률을 비교해 보면 정권별로 이런 특징이 더 두드러진다.

거칠게 말하자면, 사람들이 원하는 주택의 가격이 서민과 중산층의 소득보다 빠르게 올랐던 시기의 정권은 정권재창출에 실패했다. 노무현 정부는, 집값을 잡으려는 대통령의 의지는 충만했지만 전 세계적인 과잉 유동성 속에서 넘치는 돈들이 아파트로 몰리는 것을 조기에 제어하지 못했다. 반면 이명박 정부에서는 가계 빚이 느는 가운데서도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 속에 집값이 조정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빚내서 집 사라는 정책을 쓰면서 인기 지역을 중심으로 집값이 다시 올랐다.

소득과 집값의 경주가 정권의 성패에 영향을 주는 이유는, 첫째로 주택이 계층 상승의 사다리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중산층·서민·청년들의 소득보다 아파트값이 더 빨리 오르면 이들은 집을 마련하거나 더 나은 집으로 옮기는 것이 점점 버거워진다. 돈을 싸게 빌려줘서 원하는 집을 사게 하자는 처방들이 나오지만 투기를 놔둔 채 금융을 완화하면 집값은 더 도망가고 계층 상승의 꿈도 멀어진다. 부동산 투기를 죄악시하면서도, 투기에 뛰어들지 않거나 뒤늦게 뛰어든 사람들에게 좌절감과 불이익을 안겨주는 사회가 돼버린다.

다음으로 집값이 소득보다 빨리 오르면 많은 이들이 당장 주거 관련 비용을 더 내야 한다. 돈을 빌려 집을 사는 사람들은 원리금 부담에 소비를 줄이는 하우스푸어가 된다. 부동산도 자산이니 빚 갚는 것이 강제저축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유동성이 낮고 미래 가격이 불확실한 하나의 자산에 현재의 행복을 포기하며 모든 부를 넣는 것은 분산투자의 원리를 무시한 위험한 행위다. 특히 몇 년 전부터는 무주택자들이 급속히 렌트푸어가 되고 있다. 전세금은 오르고, 월세로 밀려난 사람들은 높은 집세에 허리가 휜다. 집 때문에 가난해지는 사람들이 양산된다. 빈곤화의 고통이 경기부양 효과를 압도하며 정권의 토대를 뒤흔든다.

결국 소득 주도 성장은 소득이 집값과의 경주에서 뒤처지지 않아야만 성공할 수 있다. 아무리 소득이 올라도 주거비로 쏙쏙 빠져나가면 불평등 해소도 저출산 해결도 공염불이다. 중소벤처보다 부동산 투기로 돈이 흐르는 구조를 놔두고서는 경제의 생산성도 올릴 수 없다.

최근 집값이 들썩이는 이유 중 하나는 집으로 부를 축적했던 세대의 일부가 노후대책으로 부동산을 선택하고 있고, 금융이 이를 뒷받침해 주기 때문이다. 노후에 임대료가 꼬박꼬박 나오고, 언젠가 매매차익도 보기를 기대하며 저금리로 돈을 빌려 부동산에 넣는다. 집값이 소득과의 경주에서 앞서가면 더 많은 사람들이 이 흐름에 동참하게 될 것이다.

앞으로 집값의 향방은 불확실하다. 하지만 집값이 빚에 의존할수록 위험이 커진다는 점만큼은 확실하다. 집을 불패의 안전자산으로 믿고, 있는 돈 없는 돈 다 넣는 투자 행위는 개개인의 위험에 그치지 않고 한국 금융과 거시경제의 위험을 초래하므로 금융 건전성 측면에서, 또 금융 소비자 보호 차원에서 선제적이고 실효성 있게 대처해야 한다. 부동산 시장의 입장에서도 그것이 파국을 막고 궁극적으로는 수요 기반을 건전하고 튼튼하게 재편하는 길이다. 나아가 문재인 정부에서는 집을 투기 대상이 아니라 삶의 공간으로 바라보도록 패러다임 자체를 바꿔야 한다. 앞으로 5년 후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나라가 실현되었는지 여부는 소득과 집값의 경주, 또는 근로소득과 투기소득의 경주 결과를 통해 평가될 것이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문재인 정부#부동산#집값 상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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