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정기획위가 ‘점령군’ 소리 듣지 않으려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26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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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역할을 하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24일부터 사흘간 22개 정부 부처로부터 업무보고를 받고 있다. 과거 인수위가 고압적인 행태로 물의를 빚은 점을 의식한 듯 김진표 위원장이 첫날 “완장 찬 점령군으로 비쳐서는 공직사회의 적극적 협조를 받기 어렵다”며 위원들에게 자기희생과 솔선수범의 리더십을 보여 달라고 주문했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 듯하다.

외교부가 24일 업무보고에서 ‘작년 두 차례 핵실험을 포함한 거듭된 도발로 북한과 대화를 하기 어려웠던 상황’을 설명하자 한 위원이 “대화를 할 수 있는 환경을 창출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다그쳤다. 박근혜 정부의 정책기조를 따라야 하는 정부 부처에 대한 상황인식이 결여된 무리한 요구다. 국정기획위가 정식 대면보고에 앞서 서면보고를 요구하면서 ‘과거 정부 추진 정책 평가 및 새 정부 기조에 따른 개선방안’이라는 답변 항목을 포함시킨 것은 과거 정권 사업에 대한 반성문을 쓰라는 얘기로 들린다.

국정기획위가 밝힌 국정 방향 중 공공기관 성과연봉제를 폐지하라는 것은 박근혜 정부의 4대 개혁 중 하나인 공공개혁을 원점으로 돌리라는 얘기다. 김연명 국정기획위 사회분과위원장은 어제 교육부 보고에서 “사학비리는 20∼30년간 우리 사회 고질적 문제였는데 더는 학생·학부모·교사가 이런 문제로 고통받지 않게 하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노무현 정부 때 야당과 사학재단의 반발로 불발된 사학법 개정을 교육부가 재추진하라는 취지는 아닌가.

과거 정권인수위는 갑질 행보로 비판을 받았다. 이명박 정부 인수위에서는 부동산 정책 자문위원이 고액 부동산 컨설팅을 해주다 해임되고, 국가경쟁력특위 관계자들이 점심때 인천 강화군까지 가서 장어요리 대접을 받아 이경숙 인수위원장이 수차례 사과했다. 소장학자가 중심이었던 노무현 정부 인수위에서는 한 전문위원이 노동부 업무보고가 마음에 안 든다며 자리를 박차고 나오는 일도 있었다.

지난 정부의 공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실패를 거울삼아 새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잘 이식해 국정의 일관성을 유지토록 하는 것이 정권인수위의 역할이다. 공무원을 개혁의 동반자가 아니라 개조의 대상으로 보는 마음가짐으로는 새 정부 앞에 놓인 막중한 개혁 과제를 성공적으로 완수하기 어렵다는 점을 새겨야 할 것이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이명박 정부#문재인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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