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표의 근대를 걷는다]한산 아성대장간, 쉼없는 메질과 담금질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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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부터 3대에 걸쳐 이어져온 충남 서천군 한산면의 아성대장간.
1910년부터 3대에 걸쳐 이어져온 충남 서천군 한산면의 아성대장간.
그곳에 들어서면 벽면 한복판에 빛바랜 초상사진 두 점이 걸려 있다. 그 밑엔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1910∼1932 김봉환’ ‘1932∼1968 김동훈’. 그리고 그 옆에 사진 없이 적혀 있는 또 하나의 이름. ‘1968∼ 김창남.’

3대째 이어 오는 충남 서천군 아성대장간 대장장이들의 연혁이다. 현역 대장장이는 78세의 김창남 씨. 김 씨의 할아버지가 1910년 대장간을 열었고, 1968년부터 김 씨가 가업을 이어온 것이다.

아성대장간은 서천군 한산면 한산시장 한편에 위치해 있다. 한산시장엔 볼거리가 많다. 새벽에 열리는 모시시장을 비롯해 꽃상여를 만드는 상엿집, 함석으로 쓰레받기 빗물받이 등을 만드는 함석집, 전통부채 공작선(孔雀扇)을 만드는 부채집, 막걸리 양조장, 재래 목욕탕 등등. 이 오래된 것들 가운데 대장간은 단연 독보적이다.

대장간의 작업장은 그리 넓지 않다. 한가운데 커다란 모루가 버티고 있고 화로 풀무 물통 메 망치 집게 등이 여기저기 놓여 있다. 언뜻 어지럽게 널려 있는 것 같지만 실은 김 씨의 손놀림에 가장 익숙한 자리에 제대로 놓여 있는 것이다. 김 씨는 여기서 풀무질 메질 담금질 등 전 과정을 남의 도움 없이 혼자서 한다. 시뻘겋게 달궈진 쇳덩이는 김 씨의 빠른 손놀림 덕분에 금세 삽이나 낫, 호미 모습으로 뒤바뀐다.

이곳의 주요 생산품은 농기구. 그런데 10여 년 전부터 그 수요가 부쩍 줄었다. 농촌인 한산에서조차 농사짓는 사람이 줄었기 때문이다. 그 타개책으로 아성대장간에선 미니어처 기념품도 만든다. 미니 쇠스랑, 미니 삽, 미니 망치를 비롯해 촛대, 명함꽂이, 문고리 같은 것들이다. 이들은 투박하면서도 우직한 매력이 있다. 한동안 입소문을 타고 널리 퍼져 나갔으나 몇 년 전부터는 미니어처 판매도 여의치 않다고 한다.

불로 쇠를 다루는 것은 인류사에서 산업의 출발이었고 대장간은 그 산실이었다. 하지만 산업화를 거치면서 대장간은 거의 사라졌다. 얼마 전 울산에서 열린 쇠부리축제에 전국의 대장장이들이 모여 기량을 뽐내기도 했지만, 대장간의 쇠퇴는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렇기에 아성대장간은 더욱 돋보인다. 찾는 이는 줄었지만 김 씨는 지금도 매일매일 쉼 없이 메질을 하고 담금질을 한다. 그는 ‘그냥 대장장이를 해야 한다’고 생각할 뿐이다. 아성대장간, 벌써 108년째다.

이광표 오피니언팀장·문화유산학 박사
#아성대장간#한산 아성대장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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