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장원재]일본의 놀라운 음식가격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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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재 도쿄 특파원
장원재 도쿄 특파원
아이들과 자주 가는 집 근처의 이탈리안 레스토랑 체인 사이제리야는 파스타를 299엔(약 3000원)부터 판다. 주력 메뉴는 399엔(약 4000원)이다. 회사 앞 우동가게는 제일 싼 우동이 230엔(약 2300원)이다. 한국으로 치면 명동 초입에 해당하는 번화가 대로변에 있는데 말이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최근 한국 포장마차 우동도 이보다 비싼 듯했다. 돈 없는 젊은이들의 단골 메뉴인 규돈(쇠고기덮밥)은 중간 크기가 350∼380엔(약 3500∼3800원)이고 돼지고기덮밥은 330엔(약 3300원)이다.

일본 도쿄(東京)의 일부 음식점은 값이 놀랄 만큼 싸다. 인건비가 비싼 일본의 식당들이 ‘착한 가격’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20년 넘게 불황을 겪으며 효율성을 극대화했기 때문이다. 회사 앞 우동가게는 한 명이 지킨다. 손님은 직접 우동을 받아들고 서서 먹은 뒤 식기를 반납하고 나간다. 규돈 전문점도 한가한 낮 시간엔 직원 한 명이 근무한다. 대중식당은 손님이 직접 자판기에서 식권을 사는 게 보통이다.

최근에는 첨단기술도 한몫을 하고 있다. 로봇과 인공지능(AI)으로 구인난을 극복하고 경영 효율성을 기하는 것이다. 일본 최대 회전초밥 체인 하마스시는 일부 점포에서 로봇이 접수와 자리 안내를 담당한다. 터치스크린으로 주문하면 회전대에 초밥이 등장한다. 계산할 때를 빼면 점원 얼굴을 볼 일이 없다. 지난달 평일 점심에 찾아간 166석짜리 점포에는 홀에 나와 있는 직원이 3명뿐이었다. 초밥 2점을 세금 포함 97엔(약 980원)에 판다. 고급 초밥도 있지만 기본가격에 선택 가능한 초밥 종류가 80가지가 넘는다.


요식업뿐만이 아니다. 3월에 지바(千葉) 현에 문을 연 ‘이상한 호텔’은 객실이 100개인데 직원은 7명뿐이다. 체크인 체크아웃 등 대부분의 업무를 로봇에 맡겼다. 무인 프런트에선 공룡 로봇이 한국어 중국어 영어로 안내한다. 요양시설에선 AI를 탑재한 로봇이 레크리에이션을 진행하고, 치매 환자와 대화를 나누는 일이 보편화되고 있다. 편의점 업계는 무인계산 시스템 조기 구축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형은행은 AI를 활용해 경비 90%를 절감하는 신개념 점포를 만들겠다고 한다.

최근 한국에서 온 지인들은 교통비 등 일부 항목을 빼면 도쿄의 체감물가가 서울보다 싸다고 입을 모은다. 깨끗하고 친절한 데다 저렴하기까지 하니 일본에 오는 한국 관광객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사드 한반도 배치 문제를 둘러싼 갈등으로 중국으로 갔을 관광객들이 일본으로 몰리는 것이기도 하지만, 일본이라는 나라의 근본적인 관광 경쟁력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한국은 일본과 사정이 아주 다른 것 같다. 일본은 일자리는 많은데 사람, 특히 한창 일할 젊은 노동력이 부족하고 한국은 청년 구직자는 많은데 일자리가 없다. 그러다 보니 일본은 국가적으로 로봇 보급과 자동화를 장려하고, 한국은 한 명이라도 사람을 더 채용하는 기업에 세제 혜택과 지원금을 주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81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물론 안전 등 일부 인력 충원이 필요한 부문은 있을 것이다. 당장 청년들의 일자리 확보 문제가 시급한 만큼 정부의 긴급처방이 이해가 가기도 한다. 하지만 정부 돈을 쏟아부어 일자리 수만 늘린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두 사람이 하던 일을 세 사람이 하는 방식으로만 일자리 문제에 대응하면 10년, 20년 후 기업 경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4차 산업혁명을 이끌 인재를 육성하고, 국내 기업들이 기술혁신을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부의 역할이 수반되어야 하는 이유다.
 
장원재 도쿄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일본 음식 가격#일본 로봇 보급#4차 산업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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