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서현의 신간산책] 자기계발 보다 '자기배려'가 절실한 시대, <스탠드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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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년 5월 15일 16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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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가 불황일수록 호황을 누리는 산업이 있다. 바로, 자기계발을 이뤄준다는(?) 산업군이다. 자기계발을 다루는 서적들이 매년 수 만권 이상 출간, 판매되며 별의별 교육이 생겨나고 성행한다. 너도나도 자격증을 따거나 교육을 받기 위해 줄을 서고, 식사 시간과 자는 시간 마저 줄여가며 자신을 학대한다. 현대인들의 삶의 속도는 한없이 빨라지고 있다. 새로운 기술이 끊임 없이 쏟아지고 어제 배운 것은 그대로 구식이 된다. 끊임없는 배움과 성장만이 살 길이다. 아직 도래하지 않은 자신의 장밋빛 미래를 기다리며 지금 이순간의 모든 것들을 희생하고 그저 흘려 보내며 버텨낸다. 정녕 그것이 인간으로 태어난 죄로 말미암아 따라야 할 정해진 운명이란 말인가?

스탠드펌 표지(출처=IT동아)
스탠드펌 표지(출처=IT동아)

현존하는 나라 중에 그래도 국민 행복지수가 가장 높다는 덴마크에서 그 행복과 관련해 큰 반향을 일으킨 베스트셀러가 한국에도 출간됐다. 뿌리가 든든한 나무와 함께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굳건히 서 있는 삶'이라는 표지가 인상적인 <스탠드펌, Stand Firm/다산초당>이다. 이 책의 저자인 '스벤 브링크만'은 덴마크 알보그대학교 심리학 교수로, 속도와 효율만을 중시하는 가속화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현대인의 삶의 질에 관한 담론을 이끌어내고자 적극적으로 대중과 소통하는 학자다.

이론상으로, 기술이 진보하면 인간은 시간 제약으로부터 해방된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기술 진보를 따라 인간도 '쉼 없고 끝없는 향상'을 쫓느라 오히려 시간은 턱없이 부족해 진다. 현대인은 자아실현과 역량강화, 평생학습이라는 명목 아래 '시장가치를 지닌 자아'를 끊임 없이 개발해야 한다. 문제는 방향과 내용은 상관없이 그저 능력 개발과 변화만을 전제로 한다는 데 있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이 점점 더 빨리 움직이는 세상에서 방향과 시간 감각을 잃지 않고 중심을 잡고 단단히 서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이제 자기계발이 아닌 '자기배려'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가 말하는 자기배려의 핵심은 '자기 수용'과 '현실 인식'이다. 자기계발 강요에 맞서 내세운 그의 대안은 다음의 7단계로 정리된다.

[1단계] 멈추다 : 자기 중독 끊어내기
[2단계] 바라보다 : 삶의 부정적인 면 인정하기
[3단계] 거절하다 : '아니요'라고 말하기
[4단계] 참다 : 감정 다스리기
[5단계] 홀로 서다 : 코치와 헤어지기
[6단계] 읽다 : 소설 읽기
[7단계] 돌아보다 : 의미 있는 일을 반복하기

위와 같은 그의 해법에는 올바른 이성과 윤리를 중요시하는 스토아학파의 사상이 자리잡고 있다. 유동성과 변화, 자기계발 만을 줄기차게 요구하는 지금의 가속화 문화에 '자기절제'라는 스토아 철학적 성찰을 전면으로 내세우며 대안을 제시한다.

이 책은 요즘처럼 뿌리 내리는 삶 또는 안정적인 삶이 어려운 유동적인 삶 속에서, 무조건 많이 하고 더 잘해야 하고 오래 해야 하는 가속화 문화에 갇혀 "운명과 성공의 책임은 전적으로 부족한 당신의 잘못이다"라는 말로 희생 당하고 상처받는 개인들을 위해 쓰였다. 모든 것에 '쓸모'라는 잣대를 들이대는 요즘, 그리고 자기계발 중독에 빠져있는 현대인들에게 존재 자체의 고결함과, 부정적일지라도 있는 그대로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현실수용을 통해 진정한 행복을 찾기를 바라고 있다. 채워지지 않을 내면에 몰두하기보다는 시선을 돌려 자신을 둘러싼 세상으로부터 의미를 끌어내는 것에 집중하자고 말이다.

지난 여러 해 동안 학술서와 논문을 쓰고 엮었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심각한 글을 쓰는 일에 지쳐서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는 저자의 말처럼, 무엇보다도 이 책의 가장 큰 매력과 가치는 인간다움과 삶의 태도를 관통하는 진중한 주제를 쉽고 자연스럽게 잘 풀어나가는 탁월한 스토리텔링 능력에 있다. 필독 권장!

글 / 오서현 (oh-koob@naver.com)

(출처=IT동아)
(출처=IT동아)

국내 대형서점 최연소 점장 출신으로 오랫동안 현장에서 책과 독자를 직접 만났다. 예리한 시선과 안목으로 책을 통한 다양한 기획과 진열로 주목 받아 이젠 자타공인 서적 전문가가 됐다. 북마스터로서 책으로 표출된 저자의 메세지를 독자에게 전달하려 노력하고 있다. 최근 '오쿱[Oh!kooB]'이라는 개인 브랜드를 내걸고 책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관계를 연결하려 한다(www.ohkoob.com). 새로운 형태의 '북네트워크'를 꿈꾸며 북TV, 팟캐스트, 서평, 북콘서트MC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있다.

동아닷컴 IT전문 이문규 기자 munc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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