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브레히트 후베 “한글의 잠재력, 정작 한국인들이 몰라 안타까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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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년 한국어 연구 외길, 후베 前 獨본대학 한국어번역학과장

25일 서울 용산구 독일문화원에서 만난 알브레히트 후베 전 독일 본대학 한국어번역학과장. 40년 이상 한국어를 연구한 그는 “전생에 한국인이었던 것 같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25일 서울 용산구 독일문화원에서 만난 알브레히트 후베 전 독일 본대학 한국어번역학과장. 40년 이상 한국어를 연구한 그는 “전생에 한국인이었던 것 같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한국인들은 ‘한글’의 잠재력을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있어요.”

1972년부터 약 45년 동안 한국어 연구의 외길을 걸어온 알브레히트 후베 전 독일 본대학 한국어번역학과장(67)은 25일 기자와 만나 또렷한 한국어 발음으로 이렇게 말했다.

은퇴 후 지난해부터 서울대 독어교육과 객원교수로 일하고 있는 그는 이날 서울 용산구 독일문화원에서 한국독일동문네트워크(ADeKo) 주최로 열린 학술간담회에 참석해 디지털 시대에 한글의 활용법을 발표했다. 인터뷰에 앞서 안내원이 “커피?”라고 묻자 능숙한 한국말로 “전 믹스커피(설탕이 들어간 한국식 커피) 주세요”라며 웃는 모습이 영락없는 한국인 아저씨였다.

그가 한국어를 처음 접한 건 1972년 뮌헨 올림픽. 군대 위생병이던 그는 올림픽에 참가한 남북한 선수들을 관리하며 난생처음 한국의 존재를 알게 됐다. ‘언젠가 지구 반대편 세계를 탐험할 것’이란 꿈을 가지고 살아온 청년의 마음에 한국이 들어왔다. 그는 “당시엔 독일에 한국어학과가 없어 중국어를 전공하며 한국어를 공부해야만 했다”고 회고했다.

한국어학자로서 그가 관심을 둔 분야는 번역이었다. 석사논문은 이인직의 ‘혈의 누’를 주제로 다뤘고, 이후엔 김만중의 소설 ‘구운몽’을 번역해 독일에 내놓았다. 그는 “용모가 준수하고, 여러 여성을 만난 주인공 양소유는 007시리즈의 제임스 본드를 연상케 했다”며 “서양 독자들에게 이 캐릭터를 쉽게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 양소유와 팔선녀를 각각 제임스 본드와 본드걸로 비유했다”고 설명했다.


최근 그는 박범신 작가의 ‘고산자’를 독일어로 번역하고 있다. 후베 교수는 “소설에 나오는 한국의 지명과 관직명 등을 각주 없이 풀어내는 게 난관”이라고 말했다.

이날 학술간담회에서 그는 “디지털 시대에 한글의 확장성을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28개 자음과 모음(사라진 자모 4개 포함)을 조합해 컴퓨터에 구현할 수 있는 음절은 약 400억 개. 이를 제대로 연구하지 않는다면 한글은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강연 제목도 ‘한글, 갇혀 있는 영웅’으로 정했다.

후베 교수는 한글의 철학적 의미에 관심이 깊다. “음양오행 사상을 그대로 녹인 창제 원리를 배우기 위해 어려운 성리학까지 공부했다”며 “수많은 언어를 배웠지만 한글처럼 과학적이면서 동시에 철학을 품은 문자는 유일무이하다”고 극찬했다.

최근 정치 경제적 불안에 청년들의 입에서 ‘헬조선’ ‘불반도’라는 수식어까지 나오고 있는 한국의 상황에 대해 후베 교수는 “한국은 작은 땅이지만, 어디에서도 수입하지 않은 독창적 문자체계를 일군 나라”라며 “이처럼 훌륭한 언어를 가진 한국인들이 나라에 자부심을 잃지 않았으면 한다”고 조언했다.

김수연 기자 sykim@donga.com
#한글#알브레히트 후베#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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