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전성철]그 많던 변호사는 다 어디로 갔을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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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철 사회부 차장
전성철 사회부 차장
박근혜 전 대통령의 법조인 선호는 유별나다. ‘성완종 리스트’ 사건으로 63일 만에 물러난 이완구 전 국무총리를 제외하면 박 전 대통령의 임기 내내 총리는 줄곧 검사 출신(정홍원-황교안)이었다. 국회 청문회 문턱을 넘지 못한 총리 후보자 3명 중에서도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과 안대희 전 대법관은 법조인이다. 박 전 대통령의 총애를 받은 까닭에 함께 기소된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우병우 전 민정수석비서관,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역시 엘리트 법률가다.

이처럼 늘 법조인들에게 둘러싸여 지내온 박 전 대통령이 형사재판 변호인 선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건 말 그대로 아이러니다. 첫 공판 준비기일이 불과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변호인단 구성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물론 가장 답답한 사람은 박 전 대통령 본인일 것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중요성이 워낙 크다 보니 법원 안팎의 관전자들조차 “이래서야 제대로 된 재판이 가능하겠느냐”고 걱정한다.



선산을 지키는 건 등 굽은 소나무뿐이라던 옛말은 박 전 대통령의 현 상황에 꼭 들어맞는다. 지난 정부에서 중용됐던 율사 가운데 박 전 대통령이 검찰·특검 수사와 헌재의 탄핵심판을 거치는 동안 전면에 나섰던 사람은 거의 없다.

국정 농단 사건 초반부터 줄곧 곁을 지키고 있는 건, 검찰에 잠시 몸담은 게 법조 경력의 사실상 전부인 ‘등 굽은 소나무’ 유영하 변호사다. 유 변호사가 현 정부에서 맡았던 공직은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뿐이다. 박 전 대통령의 인사 혜택을 받은 이들 중에서 박 전 대통령 변호에 나섰던 사람은 이동흡 변호사가 유일하다. 이 변호사는 2013년 초 헌재 소장 후보자로 지명됐지만 특정업무경비를 사적으로 유용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며 낙마한 바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는 박 전 대통령 본인의 책임이 가장 크다. 구속 기소된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과 함께 ‘문고리 3인방’으로 불린 이재만 전 총무비서관과 안봉근 전 국정홍보비서관은 지난해 국회 탄핵안 가결 이후 단 한 차례도 박 전 대통령 곁에 나타나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 곁에서 권력을 누릴 만큼 누린 최측근조차 등을 돌린 건 박 전 대통령의 리더십과 대인관계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박 전 대통령을 떠난 법조인들의 ‘의리 없음’만 탓할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에 참여했던 법조인들에게는 국정 실패를 막지 못한, 부정할 수 없는 잘못이 있다. 최순실 씨의 존재는 몰랐더라도, 최 씨가 박 전 대통령을 등에 업고 저지른 눈에 보이는 각종 불법에는 법률가로서 반대 목소리를 냈어야 했다.

그에 대한 책임은 이제라도 박 전 대통령 재판에 참여해 진실을 밝히는 데 기여하며 갚는 게 옳다. 박 전 대통령 재판은 매 순간순간이 역사가 될 것이다. 말솜씨가 부족한 박 전 대통령이 스스로 한 일을 제대로 설명조차 못 한 채 망가지는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다.

노태우 정부에서 청와대 수석비서관을 지낸 김유후 변호사, 한영석 변호사는 1995년 노 전 대통령이 비자금 사건으로 재판을 받을 때 법정에 변호인으로 나섰다. 김 변호사는 당시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노 전 대통령을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단지 법률가로서 변호할 것”이라며 변호인단에 참여했다. 한 변호사는 “내가 청와대에서 모실 때는 비자금 조성을 전혀 눈치도 못 챘다”라면서도 “내게도 잘못 모신 죄가 있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 수사 기록은 12만 쪽에 달한다. 법조인 중에도 이런 규모의 사건을 감당할 수 있는 그릇은 많지 않다. 박근혜 정부를 이끌었던 중량급 법조인들을 역사의 법정에서 보고 싶다.
 
전성철 사회부 차장 dawn@donga.com
#성완종 리스트#박근혜#정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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