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무능 ‘59년 양당구도’ 몰락… 39세 초보가 일궈낸 선거혁명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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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대선 5월 7일 결선투표]‘아웃사이더’ 마크롱 돌풍 왜?


부패하고 무능한 기성 정치권에 대한 유권자들의 반란이 전 지구촌을 휩쓸고 있다. 23일 프랑스 대통령 1차 투표에서 기성 공화당과 사회당의 아성이 무너지고 중도 신당 앙마르슈(전진) 에마뉘엘 마크롱 후보가 1위를 차지한 것은 지난해 영국의 브렉시트(유럽연합·EU 탈퇴) 국민투표와 미국 대선에 이은 선거혁명의 연장선에 있다. 구태한 정치권의 예상을 뛰어넘는 유권자 혁명은 다음 달 대선을 치르는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 신선한 마크롱 vs 후련한 르펜

마크롱은 앙마르슈를 통한 새로운 정치 실험으로 공화당과 사회당 구태 정치에 신물이 난 프랑스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어왔다. 전국 26만 당원이 매달 의견을 올리면 본부가 이를 공약에 반영하고 피드백을 주는 쌍방향 풀뿌리 민주주의를 진행하고 있다. 정치개혁 공약으로 하원의원 감원을 들고 나온 그는 6월 총선 후보를 시민 공모하는 풀뿌리 정치 실험도 진행 중이다. 정치에 입문한 적이 없는 ‘파리 아웃사이더’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은행가 출신에 경제장관을 지낸 마크롱이 테러보다 경제 공약에 더 치중한 점도 주효했다.

극우와 극좌 정치인들의 약진에 불안해진 중도 유권자들과 유럽 각국의 성원도 한몫을 했다. 마크롱은 11명의 프랑스 대선 후보 중 사실상 유일한 친(親)유럽연합(EU) 후보였다. 선거 이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은 노골적으로 마크롱에게 축하 의사를 밝혔다. 마크롱의 1위 소식이 전해진 이후 유로화 가치와 유럽 증시는 급등했다.

2위에 오른 극우 국민전선(FN) 마린 르펜 역시 돌풍의 바탕은 엘리트 정치에 대한 반감이었다. 르펜은 11명의 후보 중 유일하게 선거 캠프를 파리가 아닌 프랑스 북부 에냉보몽에 뒀다. 이곳은 광산과 석탄 공장이 있던 쇠락한 산업도시로 실업률이 프랑스 평균의 2배에 이르는 낙후 지역이다. 이번 대선에서 르펜은 프랑스 북부와 동부의 낙후된 지방에서 강세를 보였다.

그는 2차 결선투표 진출 직후 연설에서 “프랑스를 거만한 엘리트층으로부터 자유롭게 하겠다”고 말했다. 거대은행인 로스차일드 출신의 마크롱을 겨냥한 발언인 동시에 기성 정치를 거부하는 지지자들의 사회 변혁 소망을 반영한 말이다. 그는 반(反)EU, 이민정책을 표방했던 그는 선거 막판 이슬람국가(IS)의 테러로 순풍을 타기도 했다. 이번 1차 투표에서 르펜을 선택한 유권자 수는 690만 명. 1972년 국민전선(FN) 창당 이후 가장 많은 수다.

○ 기존 정당 부패, 무능으로 몰락

이들에게 밀린 공화당과 사회당은 그야말로 침울한 표정이다. 23일 오후 9시경, 프랑스 파리 15구와 5구에 각각 자리 잡은 공화당과 사회당 당사에는 적막함이 흘렀다.

개인 스캔들로 눈앞에서 대권을 놓친 공화당 프랑수아 피용 후보는 “모든 게 내 책임”이라고 말했고, 1969년 이후 최저 득표율의 망신을 당한 사회당 브누아 아몽 후보는 “고통스러운 결과”라며 고개를 떨궜다.

파리 거리에 붙은 공화당 피용 후보의 포스터에 쓰인 ‘의지’라는 뜻의 ‘volont´e’란 글씨는 선거가 끝난 현재 거의 예외 없이 모두 도둑질이라는 뜻의 ‘vol’로 바뀌어 있다. 가족을 보좌관으로 허위 취업시키고 기업에서 고가 정장을 받은 피용의 스캔들은 ‘기성 정치=부패’의 공식을 고착화시켰다.

사회당의 몰락 원인은 ‘무능’으로 대변된다. 두 자릿수 실업률을 해결하지 못해 한 자릿수의 지지율을 헤매는 프랑수아 올랑드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심판은 5년 만에 1위 정당을 5위로 끌어내렸다. 기본소득과 로봇세 도입 등 과격한 이념적 공약을 내걸며 극단주의와 다를 바 없는 행태를 보인 사회당 아몽 후보는 대안이 되지 못했다.

두 기성 정당을 공통적으로 관통하는 건 ‘당내 민주주의를 외면한 권력욕’이다. 두 정당 모두 경선에서 맞붙은 후보들이 패배를 승복하지 않았다. 공화당 경선에서 맞붙은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선거를 사흘 앞두고서야 마지못해 피용 지지 선언을 했다. 피용이 패해야 6월 총선에서 자신이 당내 주도권을 쥘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사회당 경선에서 결선에 올랐던 마뉘엘 발스 전 총리는 패배 이후 자당 후보 대신 마크롱 지지를 선언했다.

○ 마크롱 당선 유력

현재로서는 내달 7일로 예정된 2차 결선투표는 2002년 재판이 될 가능성이 높다. 2002년 1차 투표에서 FN 마린 르펜의 아버지 장마리 르펜 후보가 깜짝 이변을 일으키며 16.9%로 결선에 올랐지만, 2차 투표에서 얻은 득표율은 17.8%에 불과했다. 반면 1차 투표 때 19.9%를 얻어 간신히 1위를 차지한 보수 자크 시라크 후보는 결선 때 좌우 표를 싹쓸이하며 82.2%로 압승했다.

1차 투표에서 탈락한 피용과 아몽 모두 마크롱 지지를 선언했고, 올랑드 대통령 역시 투표 결과가 나온 직후 그에게 전화를 걸어 사실상 지지 의사를 밝혔다. 다급해진 르펜 측은 반(反)EU와 보호주의로 극단주의 코드를 맞춘 급진 좌파 장뤼크 멜랑숑 진영에 손을 내밀었으나 거부당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최근 몇 달간 마크롱과 르펜의 가상 대결 여론조사에서 늘 6 대 4로 마크롱이 앞서 왔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프랑스#대선#마크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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