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비판한 송민순에 “×자식”… 1만4000개 악성 댓글 폭탄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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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넘은 ‘디지털 테러’


“댓글 (공격) 지원 요청한다.”

21일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팬클럽인 온라인 카페 ‘문팬’에는 이런 제목이 떴다. 글은 없이 문 후보와 관련된 기사 링크만 첨부했다. 2007년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표결 직전 대통령비서실장이던 문 후보가 북한에 의견을 물어봤다는 것을 입증할 메모를 송민순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이 공개했다는 기사다.

이 ‘공격 지시’의 파괴력은 상당했다. 링크와 연결된 포털 사이트 뉴스에는 12시간 만에 댓글 1만4000여 개가 달렸다. “폭로하면 저쪽(반문재인 측)에서 한자리 준다고 하느냐”, “×자식이다”같이 송 전 장관을 비난하거나 인신공격하는 댓글이 많았다. 이 카페에는 전날에도 이 같은 지시 글이 10개나 올라왔다. 문 후보에 대해 ‘악플’이 많이 달린 기사 사이트로 가서 반박 댓글을 달라는 것이다.



○ 선거 훌리건의 ‘댓글 전쟁’

진실 여부와는 상관없이 지지 후보에게 부정적인 인물과 기사를 온라인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무차별로 비난하고 조롱하는 ‘디지털 테러’가 기승이다. 아이돌 팬클럽처럼 특정 후보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정치인 팬덤 현상에 휩쓸린 누리꾼, 이른바 선거 훌리건이 주도한다. ‘넷심(net+心·인터넷 여론)’이 오염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2년 4월 30일 이후 사실상 방치된 송 전 장관의 블로그는 이날 선거 훌리건의 습격 대상이 됐다. 새로 등록된 댓글을 알리는 ‘N’ 표시가 달린 글이 유독 많았다. “곱게 늙다 죽어라, 추하다” “곱게 나이 들기 참 어려운 건가…” 같은 악성 댓글로 송 전 장관을 비난한 것이다.

지지 후보가 다른 선거 훌리건끼리 대결도 벌어진다. 11일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의 팬클럽 ‘안국모(안철수와 국민의당 지지자 모임)’에는 한 회원이 ‘댓글 전쟁’이라는 글을 올렸다. 이 회원은 “지금 SNS에 문재인 후보 지지자들이 미쳐 날뛰고 있다”며 “해당 기사로 들어가 ‘비공감’을 누르자”고 제안했다. 다른 후보 진영에 뒤질 수 없다며 수시로 ‘출동할 기사’를 올리는 전용 게시판을 만들자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지지 후보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향한 스마트폰 문자 테러도 빈번하다. 19일 2차 TV토론에서 문 후보와 각을 세운 정의당 심상정 후보나, 안 후보 지지를 선언해 SNS상에서 ‘적폐 가수’ 논란에 휩싸인 가수 전인권 씨뿐만이 아니다. 같은 당 정치인도 예외가 아니다. 문 후보 캠프 임종석 대선후보 비서실장은 페이스북을 통해 “문 후보를 지지하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남긴 상처를 돌아봐야 할 때”라며 극성 지지자들에게 자제를 당부했다. 그러나 임 실장도 ‘당신이 뭔데 해라, 하지 마라 하느냐’ 같은 문자 폭탄에 시달렸다.

○ 대선 후보들도 난감해

이들 선거 훌리건은 스스로를 지지 후보의 호위 세력으로 자처한다. 문 후보 지지자들은 “5월 9일 대선 이후에는 문빠, 문베충(이상 문재인 극성 지지자를 비하하는 표현)이 아니라 달빛기사단(문 후보의 성인 ‘문’을 영어로 달을 뜻하는 ‘문·moon’으로 칭해 붙인 이름)이라 불리게 될 것”이라고 서로를 격려한다. 대(對)테러 팀을 다룬 일본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에서 따온 ‘문각기동대’라고도 한다. 이들은 엠엘비파크, 뽐뿌, 오늘의 유머, 클리앙, 루리웹 같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활동한다. 문 후보 관련 기사가 나오면 “댓글을 달러 가자”며 선동한다는 의혹도 받는다.

산전수전 다 겪은 정치인들도 디지털 테러에는 질색한다. 친문(친문재인) 패권주의를 비판하며 당을 떠난 김종인 전 민주당 대표는 문 후보 측 지지층을 두고 “히틀러 추종자들을 연상시킨다”고 꼬집었다.

지난달 28일 문 후보 캠프에서는 선거 훌리건들의 지나친 행태에 제동을 걸 대책을 논의하는 회의가 열렸다. 상대 후보에 대한 지나친 비판이 오히려 부메랑으로 되돌아올까 우려해서였다. 문 후보 측은 “문 후보가 비방을 자제해 달라고 직접 요청했지만 자발적 지지 단체의 행동은 일일이 통제할 수 없는 지경”이라며 “상대 후보에 대한 과도한 비판이 여러 형태의 ‘폭력’으로 번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안 후보 측 관계자도 “지지자 관리에 예전보다 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통제가 안 돼 곤혹스러울 때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찰은 욕설이나 인신공격 등 구체적인 명예훼손이 발생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처벌하기 쉽지 않다는 반응이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자들이 명예훼손으로 고소하지 않는 이상 손쓸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치인 팬덤 현상이 극심해지면서 다른 후보를 공격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진단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정치학)는 “반대편을 계속해서 공격하는 분위기가 만연할수록 정치적 입장이 극단으로 쏠려 사회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조윤경 yunique@donga.com·이호재·박성진 기자
#송민순#문재인#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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