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메랑 된 ‘협상의 기술’… 트럼프 허 찔렸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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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케어 무산시킨 공화 강경파, 트럼프가 쓴 ‘협상의 기술’ 활용
‘오바마 도청’ 물타기한 누네스, 발표전날 백악관 정보원 접촉 논란
트럼프 지지율 36% 역대 최저

‘협상의 귀재’로 알려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왜 공약 1호인 오바마케어 폐기를 위한 트럼프케어(AHCA·미국건강보험법) 입법에 실패했을까. 공화당 내 강경파인 ‘프리덤 코커스’ 그룹 등 의회와의 소통에 실패한 게 가장 큰 이유로 꼽히지만, 사업가 출신으로 자신이 주장해 온 ‘협상의 기술’을 무시한 게 또 다른 이유가 됐다.

27일 CNN에 따르면 트럼프케어 하원 표결을 앞둔 지난주 미 하원 건물에서는 ‘프리덤 코커스’ 소속 공화당 의원들이 대책 회의를 하고 있었다. 트럼프케어를 반대해 온 랜드 폴 공화당 상원의원도 있었는데, 그 자리에는 ‘지렛대를 활용하라(Use your leverage)’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밑에는 ‘거래를 성사시키려 필사적으로 달려드는 것이 최악의 협상 기술이다. 이럴 경우 상대방은 피 냄새를 맡게 되고, 당신은 죽게 된다’는 문구가 있었다. 출처는 다름 아닌 트럼프의 베스트셀러인 ‘협상의 기술(The Art of the Deal·1987년)’.

‘프리덤 코커스’ 의원들은 폴 의원의 갖고 온 책에서 발췌한 내용을 토대로 트럼프케어 대처 전략을 논의했다. 트럼프가 표결 전날인 23일 믹 멀베이니 백악관 예산관리국장을 의회로 보내 “더 이상 트럼프케어 협상은 없다”고 압박했지만, 의원들이 동요하지 않았다. 트럼프식 ‘협상 기술’을 익힌 덕분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트럼프는 자신이 설파한 협상 기술의 부메랑을 맞은 셈이다.


실제 워싱턴 정가에선 트럼프를 이해하기 위해 많은 의원들이 ‘협상의 기술’을 읽고 있다. 공화당 톰 콜 하원의원은 지난해 대선 직후 ‘협상의 기술’을 온라인으로 주문해 읽었다. 공화당 피터 킹 의원도 지난 주말 지역구인 뉴욕에서 행사를 마친 뒤 워싱턴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이 책을 읽었다고 CNN에 전했다.

트럼프의 지지율은 취임 후 최악으로 곤두박질치고 있다. 27일 여론조사 기관인 갤럽에 따르면 트럼프의 국정 지지도는 36%로 일주일 전보다 1%포인트 줄었다. 갤럽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취임 두 달 지지율로는 사상 최저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설상가상으로 트럼프가 제기한 ‘버락 오바마 도청 의혹’도 갈수록 꼬이고 있다. 미국 정보기관의 트럼프 인수위 정보수집 의혹을 일방적으로 발표해 ‘트럼프 하수인’이라는 비아냥을 받은 공화당 소속 데빈 누네스 하원 정보위원장이 백악관에서 관련 정보를 넘겨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CNN은 누네스가 정보기관 관련 의혹을 발표하기 하루 전인 21일 밤 백악관 내에서 ‘정보원’을 만났다고 보도했다. 누네스는 성명을 내고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 갔다”고 해명했지만 낸시 펠로시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는 “누네스 위원장이 하원 정보위가 벌이고 있는 러시아 대선 개입 의혹 조사에서 손을 떼야 한다”고 압박했다.

백악관은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민주당과의 연대를 모색하는 방안까지 검토 중이다.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트럼프케어 입법에 관여한 고위 참모들은 물론 양당의 주요 인사들로부터 전화를 받았다”며 “어떻게 하면 해법을 마련할 수 있을지, 하원에서 표결을 할 수 있을지를 논의했다”고 밝혔다.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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