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서영아]팩트와 낭설 속에서… 일본 언론의 비결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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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아 도쿄 특파원
서영아 도쿄 특파원
말레이시아발 김정남 피살 소식으로 근 2주간 전 세계가 들썩였다. ‘독침설’ ‘북한 여공작원 소행설’ 등 정보의 교착(交錯)과 오보의 난무. 팩트와 낭설을 분간할 수 없는 혼란 속에서 현장 기자와 독자 모두 힘든 시간을 보냈다. 사건은 드라마틱했고 관련 정보는 오리무중이니 어쩔 수 없는 요소도 있었다.

이 와중에 일본 후지TV가 19일 밤 단독 보도한 김정남 피습 순간을 담은 폐쇄회로(CC)TV 영상은 압권이었다. 상당한 돈을 썼으리라고 짐작했는데, 며칠 지나니 사연이 흘러나왔다. 현지 브로커가 일본 방송사들에 500만 엔(약 5000만 원)에 팔겠다고 제안을 했고 이 중 가장 용감한 후지TV가 가장 먼저 구매에 나섰다는 거다. ‘용감하다’고 한 이유는 영상 유출 자체가 불법일 수 있어서다. 그 며칠 전에는 TBS가 실행범인 베트남 여성 도안티흐엉의 호텔 로비 CCTV 영상을 단독 보도하기도 했다.

“일본의 취재력이 대단하다”는 말을 종종 듣게 되는데, 내 생각은 조금 복잡하다. 가령 왜 브로커들이 한국 언론에는 동영상 판매를 제안하지 않았을까?

2007년 7월 아프가니스탄에서 모 교회 신도 등 한국인 23명이 탈레반에 납치된 사건이 있었다. 당시 일본 언론의 힘이 더욱 빛났다. 우리 정부가 한국 언론인의 현지 입국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당시 억류자 중 2명이 살해되고 40여 일을 끈 협상 끝에 21명이 풀려났다. 그 40여 일간 한국 언론은 외신과 일본 언론에 거의 의존해야 했다. 일본 기자들은 아프가니스탄 호텔방에 숨어 현지 취재원을 통해 취재한 탈레반과 아프간 정부의 협상 관련 기사들을 매일 송고했다.

결론은 이건 일본의 국력이라는 것이다. 일본 유수의 신문사들은 대개 특파원 50∼60명이 세계 각지에 진을 치고 있다. 특파원마다 현지 취재보조원과 통신원을 고용하니 취재의 손발은 몇 배로 늘어난다. 특파원을 두지 않은 지역에도 현지 통신원을 고용해 정기적으로 관리한다. 특파원은 2, 3년마다 바뀌지만 현지 보조원들은 터줏대감이니 특종을 물어오는 경우도 많다.

일본 언론도 말레이시아에 상근 특파원이 있는 곳은 거의 없었던 듯하다. 다만 현지 통신원들은 있었다. 사건이 터진 뒤 싱가포르, 태국에서 특파원들이 날아가 그들의 도움을 받으며 취재했다. 일본 방송사들이 좋은 동영상이 있으면 앞다퉈 산다는 것도 익히 알려져 있다. 결국 평소에 쳐 놓은 그물망이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한국 언론도 발 빠르게 현지에 기자들을 보냈다. 하지만 이 인력이 ‘맨땅에 헤딩’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독자들은 ‘한국도 일본 언론사들처럼 하면 되지 않냐’고 묻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갈수록 언론사의 힘은 독자와 국가에서 나온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동아일보 도쿄지사가 입주해 있는 아사히신문의 경우 종이신문 판매부수는 근래 많이 줄었다 해도 650만 부다. 독자들이 월 4000엔(약 4만 원)의 구독료를 꼬박꼬박 낸다. 650만 독자의 눈길을 잡기 위해 기업들이 내는 광고비도 규모가 다르다. 인터넷 판도 유료 독자가 돼야 제대로 기사들을 읽을 수 있다. 사회 전반에 콘텐츠는 공짜가 아니라는 의식과 저작권에 대한 집착과 존중이 남다르다.

이런 여건하에서 사람과 취재망에 대한 투자를 제대로 하고 취재에 대한 엄격성도 추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결국 이건 일본의 국력이 아닐까. 쓰다 보니 푸념처럼 돼버렸지만 열악한 환경에서 고군분투하는 한국의 언론, 현장에서 애쓰는 한국 기자들에게 우리 독자들도 좀 더 힘을 실어주시길 바란다.
 
서영아 도쿄 특파원 sya@donga.com
#김정남 피살#일본 취재력#한국 언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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