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면데면 아버지와 아들 살갑게 만든 ‘여행의 마법’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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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일 동안 40개국 여행하고 책 펴낸 정준일-정재인 부자

예전에는 같이 있으면 어색하기만 했다는 정준일(왼쪽), 정재인 부자에게는 다정한 기운이 감돌았다. 재인씨는 “세계일주 후 아버지가 바뀌셨다. 일단 어머니에게 하던 잔소리가 많이 줄었다”며 웃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예전에는 같이 있으면 어색하기만 했다는 정준일(왼쪽), 정재인 부자에게는 다정한 기운이 감돌았다. 재인씨는 “세계일주 후 아버지가 바뀌셨다. 일단 어머니에게 하던 잔소리가 많이 줄었다”며 웃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고등학교 졸업 후 아들은 아버지와 대화한 적이 거의 없었다. 한국의 아버지와 아들이 대개 그렇듯이. 이런 두 사람이 세계일주를 떠났다. 무려 200일 동안 40개국을.

 ‘대략 난감, ‘꼰대’ 아버지와 지구 한바퀴’(북레시피)를 최근 펴낸 정준일(59), 정재인(29) 부자(父子)의 이야기다.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10일 두 사람을 만났다.

 2015년 3월 학군단(ROTC) 포병장교로 전역을 3개월 앞둔 재인 씨는 “세계여행을 같이 가자”는 아버지의 전화를 받고 고민에 빠졌다. 현대중공업에서 32년간 근무한 준일 씨는 아들이 취직하기 전이 아니면 세계여행을 할 수 없다고 여겨 명예퇴직 했다.

 “세계여행을 꿈꿨는데 어느 날 신문에서 ‘나이 들어 다리가 떨리면 아무데도 못 간다. 그러니 가슴이 떨릴 때 떠나라’는 여행작가의 글을 보고 전율했어요.”(준일 씨)

 재인 씨는 처음에 거절하려 했다.

 “학창시절, 교복바지 폭을 줄이자 가위로 잘라버렸고, 게임을 많이 한다고 망치로 휴대전화를 때려 부술 정도로 아버지는 무서웠어요. 그런 아버지와 7개월을 단둘이 보내는 건 상상이 안 되더라고요.”

 그러던 중 재인 씨는 아버지를 갑자기 잃은 후배의 이야기를 듣고 생각을 바꿨다. 2015년 7월, 영국을 시작으로 여정이 이어졌다. 테니스가 유일한 취미인 아버지가 영국에서 윔블던 테니스대회 경기를 관람하며 아이처럼 웃는 모습에 재인 씨는 마음이 찡해졌다. 준일 씨는 낯선 나라에서도 길을 척척 찾아 앞장서는 아들을 보며 뿌듯했다. 하지만 스트레스가 쌓여 갔다.

 “재인이가 지도를 볼 때 돕고 싶은 마음에 몇 마디를 하니까 ‘제가 알아서 할게요’라며 귀찮아하는 거예요.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아 너무 서운하더라고요.”(준일 씨)

 “일정 챙기고 입장권 등을 사느라 새벽 2, 3시에 잔 적이 많아요. 너무 피곤한데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아버지가 씻으라고 잔소리하니까 짜증이 솟구쳤어요.”(재인 씨)

 결국 여행 중반 무렵, 둘은 쌓인 감정을 털어놓았다. 준일 씨는 아들에게 간섭하지 않기로 했고 재인 씨는 더 자세히 설명했다. 몰랐던 사실도 알게 됐다.

 “아버지가 청력이 안 좋으신데, 소음이 심한 작업 현장에서 일하셔서 그런 거였더라고요. 마음이 아팠어요. 네팔의 히말라야에서 일출을 보고 눈물 흘리시는 아버지를 보며 당황했지만, 살면서 아버지도 울고 싶을 때가 많았을 거란 생각이 그때야 비로소 들었어요.”(재인 씨)

 준일 씨는 매일 아침, 하루 일정을 브리핑해주고 멋스러운 스카프와 셔츠를 내밀며 옷을 챙겨주는 아들의 다정함에 감탄했다. 책은 아들 편, 아버지 편으로 나눠 썼다. 같은 여행지를 각자의 시각에서 보고 느낀 점을 읽는 재미가 색다르다. 이들은 여행기를 다음 스토리펀딩에 올려 홀몸노인을 위한 후원금을 모으고 있다.

 “친구들에게 국내든 어디든 아들과 여행가라고 ‘강추’하고 있어요. 생전 전화 안 하던 재인이가 요즘은 자주 전화해 이런저런 얘기를 해요. 여행의 마법이죠.”(준일 씨)

 “아버지에게 먼저 다가가라고 말하고 싶어요. 단, 여행을 같이 간다면 무조건 많이 참으세요. 하하.”(재인 씨)

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대략 난감#꼰대#아버지와 지구 한바퀴#정준일#정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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