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속서 치열한 해녀, 물밖선 경쾌하고 실리에 밝은 삶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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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문화유산 등재 ‘해녀’ 주제로 4년간 사진 찍은 박정근씨

사진작가 박정근 씨가 “해녀의 진짜 모습은 거칠고 희생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경쾌하고 실리에 밝은 것으로 보였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4년간 해녀의 실생활을 카메라에 담아 사진집 ‘잠녀(潛女)’를 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사진작가 박정근 씨가 “해녀의 진짜 모습은 거칠고 희생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경쾌하고 실리에 밝은 것으로 보였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4년간 해녀의 실생활을 카메라에 담아 사진집 ‘잠녀(潛女)’를 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해녀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강하고 거친 어머니’로 굳어져 버렸어요. 그걸 깨고 해녀의 삶 자체를 담아 보고 싶었습니다.”

 4년간의 작업 끝에 해녀를 주제로 한 사진집 ‘잠녀(潛女)’를 내고 전시회를 연 사진작가 박정근 씨(38)는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기자를 만나 이렇게 강조했다. 때마침 유네스코는 제주 해녀 문화를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선정했다. 박 씨는 “선정 시점을 의식하고 사진집을 낸 게 아닌데 시점이 절묘하게 맞물렸다”라며 “그 덕분에 주목도 더 많이 받고 인사도 많이 받고 있다”라고 웃었다.

 박사 학위 논문 주제로 제주와 연관된 것을 정하기로 하면서 박 씨는 해녀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는 “해녀라는 존재 자체가 사진작가들에게는 큰 매력이 있는 주제”라고 말했다. 육지에서는 볼 수 없는 대상, 해녀들의 독특한 행동을 보면 절로 작품으로 다뤄 보고 싶어진다고 했다.

 해녀를 주제로 정하면서 박 씨는 그동안 해녀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꾸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고 덧붙였다. 어느샌가 해녀가 희생의 아이콘이 돼 버렸는데, 거기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

 “자식들을 위해 위험하고 거친 물속에 들어가고, 나이가 들어 가고 해녀가 줄어 간다. 이런 이미지들이 해녀를 보는 선입견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자녀를 위해 희생하는 건 모든 어머니의 공통점이고 나이가 들고 인원이 줄어드는 건 농부도 마찬가지죠. 작품 활동을 하면서 해녀만이 가진 특징을 찾아보았습니다.”

 박 씨는 해녀들과 친해지기 위해 해녀 마을을 찾아가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해녀에 대한 새로운 모습을 여럿 찾아냈다. 그가 본 해녀의 삶에는 거칠고 희생적인 이미지가 아닌 경쾌하고 실리에 밝은 모습이 가득했다. 그는 “하루 일과가 끝나면 어떤 해녀는 악기나 춤을 배우러 가고 어떤 해녀는 부업으로 하는 부동산을 관리하러 간다”라고 전했다. 오히려 도심 직장인들에게서 보기 힘든 ‘저녁이 있는 삶’을 해녀들이 즐긴다는 것. 그는 또 “해녀들이 잡는 소라나 전복이 상당량 일본 등으로 수출되다 보니 해녀들은 환율에 굉장히 민감하고 그에 따라 채취량을 조절하는 능동적인 모습도 보인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물속에서의 모습은 생존 본능 그 자체였다고. 동영상 촬영을 위해 소형 카메라를 해녀의 머리에 달아 주고 찍은 영상을 보면 자신도 숨이 막힐 지경이라고 박 씨는 전했다. “해녀가 한 번 잠수하면 버틸 수 있는 시간이 2분 정도 됩니다. 그 사이에 물속으로 들어가서 소라나 전복을 찾고, 바위에 단단히 붙은 해산물을 캐낸 뒤 올라와야 하죠. 필사적으로 상품성 있는 해산물을 찾고 캐내기 위해 머리와 손이 정신없이 빠르게 움직입니다. 채취 본능과 ‘숨의 길이’를 균형 있게 조화시키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직업이 바로 해녀더군요.”

 수중 촬영이 많다 보니 우여곡절이 많았다. 스쿠버다이빙 자격증이 있는 박 씨였지만 촬영은커녕 물속 해녀들의 날렵한 움직임을 쫓아가는 것조차 버거웠다. 산소통과 카메라 방수 장비 등을 주렁주렁 달고 들어가야 했다. 물속에서 파도에 휩쓸려 부상하기도 했다. 하루 종일 사진을 찍어도 하루에 한두 장 건지기가 쉽지 않았다. 나중에는 해녀들이 박 씨에게 다가와서 “내가 어떻게 해 주면 사진 찍기 좋겠느냐”라고 물어보기도 했다고 한다.

 박 씨는 “지금까지 사진을 통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다면 ‘잠녀’는 피사체가 된 사람의 얘기를 하려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사진을 찍을수록 내 성격과 성향이 사진에 묻어나는 느낌을 받아 신기했다”라고 털어놓았다. 그는 “다음에도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진을 찍고 싶다”라고 말했다.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박정근#해녀#사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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