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를 최태민에게서 구출 해달라” 25년 전 근영·지만 씨의 탄원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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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년 10월 27일 15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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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씨를 비롯한 비선실세가 국정을 농단했다는 의혹이 정국을 뒤흔들고 있는 가운데, 최순실 씨의 아버지 최태민 씨와 박근혜 대통령의 관계를 다룬 25년 전 기사 한편이 눈길을 끈다.

박근혜 대통령이 1990년 서울 성동구 능동 어린이회관 안에 있는 재단법인 육영재단의 이사장직과 고(故) 박정희 대통령∙육영수여사 기념사업회 회장직을 맡고 있을 때 일이다.

동아일보는 1990년 11월 23일자 신문에 ‘근혜와 근영 사이 최태민씨는 누구?’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당시 기사를 원문 그대로 정리하면 내용은 이렇다. 그 해 8월 말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실에 고(故) 박정희 대통령의 유자녀 중 근영∙지만 씨의 이름으로 한 통의 통의탄원서가 날라왔다.

‘사기꾼 최태민을 엄벌해 최씨에게 포위당해있는 언니를 전직 국가원수 유족의 보호 차원에서 구출해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로부터 한달 여 후인 10월 3일, 중추절을 맞아 서울 중구 신당동 고 박 대통령의 사저에 모인 근영∙지만씨 등 가족들은 차례상을 앞에 두고 언니(근혜)의 결심을 재촉하고 있었다.

이 자리에 있던 가족 중 한 사람은 “가족들의 호소는 ‘최태민씨가 근혜씨를 등에 업고 육영재단의 운영을 전횡, 돌아가신 분들께 누를 끼치고 있으니 최씨와의 관계를 끊고 재단이사장직에서 물러 나는게 좋겠다는 것이었다”고 전했다.

이 일이 있은 후 박정희 대통령 추모 모임이라는 ‘숭모회’회원들은 “박근혜 이사장을 배후조종, 육 여사의 유업을 훼손하고 유자녀들의 사이를 이간질하는 최태민 고문을 축출하자”며 시위를 벌였다.

반면 한편에서는 ‘숭모회 등 외부세력이 근영 씨를 내세워 막대한 규모의 재단재산을 가로채려 한다’, ‘OOO이 차기 대권을 노리고 벌인 일이다’ 등 갖가지 소문이 난무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박 이사장은 기자회견을 열어 “부친에 대한 왜곡된 역사적 평가를 어느 정도 바로잡고 심신이 극도로 피로해져 좀 쉬려는데 왠 정체모를 단체가 나타나 남의 집 일을 간섭하려드는지 모르겠다”고 분노했다.

지만 씨는 당시 동아일보에 “최태민 목사라는 사람 때문에 큰누나가 욕을 먹고 돌아가신 부모님에게도 누를 끼치는 것 같아 최 씨를 큰누나로부터 떼어 놓으려고 하는데 최 씨가 반발해 생긴일”이라고 주장했다. 근영 씨 역시 “언니는 최 목사에게 철저하게 속고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최태민 씨의 집은 서울 역삼동의 뉴월드호텔 부근에 있었는데, 대지 200여 평에 건평이 70~80평에 이르며, 시가가 20억원이 넘는 대저택이었다. 최씨는 논란이 일자 부인과 함께 집을 떠난 뒤 행방을 감췄다고 신문은 기록했다.

신문은 당시 최태민 씨에 관련된 주변 증언들을 모아 다음과 같이 실었다.

▽이하는 기사 원문▽

『근혜씨와 최씨의 이상한 관계에 관한 소문의 시발은 고 육여사의 피습직후인 지난 75년 3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70년대 초 불교, 기독교, 천주교, 천도교의 교리를 합쳤다는 ‘영세교’ 교주행세를 하던 최씨가 어머니의 비명횡사로 극심한 정신적 허탈감에 빠져 있던 근혜씨에게 “꿈에 돌아가신 육여사가 나타나 근혜가 국모감이니 잘 도와주시라고 지시하셨다”는 허무맹항한 내용의 편지를 보내면서부터였다는 것이다.

이후 구국선교단 대한구국봉사단 새마음봉사단 총재등을 지내며 청와대를 자유롭게 출입하던 최씨는 근혜씨를 등에 업고 재벌들로부터 돈을 뜯고 각종 이권에 개입하는 등 비리를 저지르다 중앙정보부의 조사를 받는데까지 이르렀다는 것이 당시 일선기자로 활동했던 월간 ‘인사이드더 월드’ 발행인 손충무의 말이다.

또 최씨의 행적에 대해 비교적 소상히 알고 있는 사람들은 지난 78년 어느날 청와대에서 있었던 고 박대통령의 친국(親鞫)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당시 구국여성봉사단총재로 있던 최씨의 비리에 대한 중앙정보부의 조사보고서를 받아는 박대통령은 보고서 내용에 격분, 김재규 중정부장과 백광현 중앙정보부안전국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근혜양과 최씨를 직접 불러 신문을 했으나 근혜양이 사실과 다르다며 최씨를 적극 옹호하고 나서자 신문을 중단하고 오히려 중앙정보부의 보고서를 묵살했다는 것이다.

김재규 부장은 지난 80년 1월 항소심 공판을 앞두고 재판부에 보낸 항소이유보충서중 “구국여성봉사단과 연관한 큰영애의 문제’라는 장에서 이 문제가 10.26혁명의 동기가운데 간접적이지만 중요한 것이었다”고 기술해 놓고 있다. (중략)

지난 80년 당시 계엄합수부에서 조사한 기록에 따르면, 문제의 인물 최태민 시는 황해도 사리원 출생으로 일제때인 지난 42년 일본인의 추천에 의해 경찰에 투신, 해방직후인 지난 47년에는 인천경찰서에서 사찰주임(경위)까지 맡았던 것으로 돼있다.

그는 이후 육군헌병대 전문관, 종교단체 간부, 공화당중앙위원, 기업체사장 등으로 변신에 변신을 거듭했다. 최씨는 지난 65년 유가증권 위조혐의로 경찰의 수배를 받자 이름을 방민으로 바꾸고 ‘영세교’라는 종교단체를 만들어 교주행세를 하게 된다. (중략)

한때 육영재단에서 발간하는 ‘어깨동무’ ‘꿈나라’ ‘보물섬의’ 운영에 관여한적이 있는 한 관계자는 ” 근혜씨가 이사장이 된 뒤부터 말단직원 한 사람을 채용하는 일에도 과장, 부장급 간부들이 직접 결재서류나 메모를 들고 최씨의 집을 찾아가 ‘승인’을 받고 나서야 박 이사장의 결제 도장이 찍힐 정도였다”고 최씨의 전횡을 폭로했다. 』

신문은 이같이 전하며 말미에 “이들 세 유자녀의 일거 수 일투족은 앞으로 계속 국민의 관심대상이 될수 밖에 없을 것 같다”고 글을 맺었다.

정리=박태근 동아닷컴 기자 pt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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