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 수 없는 자와 볼 수만 있는 자는 그렇게 친구가 되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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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영화 ‘시소(SEE-SAW)’ 출연한 개그맨 이동우 씨

개그맨 이동우 씨는 시종일관 유쾌했다.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그는 기자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그는 “지금도 순간 바늘에 찔리듯 마음이 아플 때가 있지만, 내 운명이고 숙명이라 담담하게 받아들였다”고 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개그맨 이동우 씨는 시종일관 유쾌했다.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그는 기자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그는 “지금도 순간 바늘에 찔리듯 마음이 아플 때가 있지만, 내 운명이고 숙명이라 담담하게 받아들였다”고 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제 눈을 드리고 싶은데….” ‘천안 사는 30대’라고 자신을 밝힌 남성에게서 연락이 온 건 2010년이었다. 개그맨 이동우 씨(46)가 ‘망막색소변성증’ 진단을 받은 지 6년 만에 시력을 완전히 잃고 방황하던 때였다. 의학적으로 ‘안구 이식’은 불가능했다. 그래도 ‘누가 나에게 눈을 준다는 건지 만나보기나 하겠다’며 그를 찾아간 이 씨는 진짜 눈 대신 마음의 눈을 뜨게 됐다. 그 역시 온몸을 휠체어에 의지한 채 살아가는 근육병 환자였기 때문이다.》
 

 볼 수 없는 이 씨와 오직 볼 수만 있는 임재신 씨(44), 비슷한 삶의 무게를 진 두 사람은 그렇게 친구가 됐다. 다음 달 이들의 소박한 제주 여행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시소(SEE-SAW)’ 개봉을 앞두고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이 씨를 만났다. 그는 “이제 곧 천만 배우가 될지도 모르는데…” 하며 농담부터 건넸다.

 “정말 일석이조 아닌가요? 둘 다 몸이 불편해 자주 못 봤는데 영화 촬영도 하고 술도 한잔하며 오래 시간을 보낼 수 있잖아요. ‘스태프도 있는데 큰 사고야 나겠어? 이럴 때 둘이 여행이나 신나게 해보자’ 싶었던 거죠.(웃음)”

 더 이상 웃길 수 없게 돼버린 ‘시각장애 개그맨’을 사람들은 동정하곤 한다. 하지만 근황을 전하며 “눈이 안 보이니 밖에 나가는 대신 차분히 음성도서를 읽는 습관이 생겼다”며 ‘시각장애인의 장점’을 줄줄이 꼽아보는 그다.

 “옛날요? 틴틴파이브 시절 인기 정말 많았죠. 돌이켜보니 돈과 명예에 집착하던 그때가 부끄러운 건 왜일까요. 고작 3, 4시간 자면서도 나이트클럽 가서 음주가무를 즐기고 그랬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몸을 좀 아낄 걸 그랬나 봐요. 하하.”

 시력을 잃은 후 그는 더 많은 수식어를 얻었다. 2013년엔 재즈 보컬리스트로 솔로 앨범을 발매했고, 연극배우 활동은 물론이고 매니저의 권유로 철인 3종 경기까지 참가했다. 최근에는 블로그 운영에 재미를 들였는데 일상 속 ‘100인의 영웅’을 찾아 소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라고 했다.

 “새로운 일을 하는 게 늘 재밌어요. 요새 뉴스 보면 잔인하고 듣기 싫은 못된 소식만 들려오잖아요. 비록 시시한 얘기일지라도 사람들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얘기를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블로그는 시청률, 청취율 안 나와도 상관없잖아요.”

 영화에 출연하는 것도 그런 바람에서라고 했다. “영화 제목도 제가 지었어요. ‘시력을 잃고 비로소 보게 된 세상’이란 의미죠. 사실 어마어마한 철학이 담긴 영화는 아니에요. 이 영화를 보면 무조건 마음이 따뜻해질 거란 얘기도 하고 싶지 않고요. 다만 ‘사랑’이 어떤 걸까, 관객들이 잠시나마 생각해 볼 기회가 됐으면 합니다.”

 인터뷰 내내 재치 있고 유머러스한 그는 천생 개그맨이었다. 본업이던 ‘개그맨’으로서의 활동 계획을 조심스레 물었다.

 “예나 지금이나 전 ‘딴따라’예요. 광대가 외줄도 탔다가, 내려와서 광대놀이도 하는 거죠 뭐. 당연히 개그도 너무 하고 싶어요. 다만 지금은 제가 몸개그라도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다들 웃기기는커녕 불쌍하다고 눈물 흘리실걸요. 제 개그에 사람들이 편견 없이 웃을 수 있는 그날이 올 때까지 일단 기다려 보려고요. 음, 오겠죠?(웃음)”

장선희기자 sun10@donga.com

#영화 시소#이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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