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대통령의 위기’ 靑과 여당은 아직도 실감 못하나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27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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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누리당이 어제 ‘비선(秘線) 실세’ 최순실 씨의 국정 농단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청와대 수석 참모진과 내각의 대폭 쇄신을 박근혜 대통령에게 요구했다. 박 대통령은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심사숙고하고 있다”며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미르·K스포츠재단 관련 국정감사 증인 채택을 결사반대했던 새누리당이, 더구나 “나도 연설문 작성 때 친구에게 물어본다”며 무작정 대통령 보호에 앞장섰던 이 대표가 무슨 염치로 쇄신을 요구하고 사태 수습을 자임하는가.

 25일 박 대통령의 대(對)국민 사과가 끝나기 무섭게 최 씨의 전방위 국정 개입 의혹이 또 터져 나와 나라 전체가 거의 패닉 상태다. 새누리당이 어제 긴급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국정 쇄신 요구를 도출했다고는 하나 지도부야말로 친박(친박근혜)계가 대부분이다. 국민은 대통령의 진정성 없는 사과에 더 분노하는데 지도부는 그 사과를 받아들이면서 당 안팎의 지도부 사퇴 요구는 거부했다. 폐쇄적 국정 운영이 초래한 박 대통령의 ‘국기(國基) 문란’ 사태에 책임을 통감해야 할 친박계가 자신들만 살겠다고 청와대와 내각의 쇄신을 요구하는 형국이다.

 청와대 참모진도 아직 정신을 못 차렸다. 이원종 대통령비서실장이 어제 국회 예산결산특위에서 “국민에게 많은 아픔도 주셨지만 그에 못지않게 피해를 입고 마음 아픈 분이 대통령”이라고 말한 것은 황당하다. 그는 “어떻게 보면 좀 더 섬세하게 잘하시려고 하신 일인데 그 상대방에게 준 신뢰를 그 사람이 잘못 썼다”고도 했다. 박 대통령은 별 잘못이 없다는 투다. 사안의 심각성도 모르는 사람들이 대통령을 보좌한다며 국록을 먹고 있으니 대통령이 공사(公私) 구별을 못 하고 국기 문란 사태를 초래해도 막지 못한 것이다.

 박 대통령이 무엇을 심사숙고하는지, 또 최 씨의 ‘첨삭’을 기다리는지는 알 수 없어도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대통령 자신이 책임을 질 수 없는 것이 대통령제의 ‘한계’인 만큼 이 비서실장부터 우병우 민정수석, 안종범 정책조정수석, 그리고 최 씨와 오랜 연관이 있는 대통령비서실의 ‘문고리 3인방’부터 해임하는 것으로 국민 앞에 사죄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청와대 개편을 시작으로 최 씨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던 경제 관련 부처와 문화체육관광부 등을 중심으로 과감한 인적 쇄신을 서둘러 단행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민심을 수습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하야와 탄핵 소리가 나오는 등 대통령을 향한 비판 여론이 갈수록 들끓고 있다. 야당에선 내각 총사퇴와 거국내각까지 요구하고 있지만 국정 공백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 이번 사태의 책임은 전적으로 대통령에게 있는 만큼 다시 한번 국민 앞에 나서서 진정으로 사과하는 모습을 보이기 바란다. ‘나부터 수사하라’는 각오도 밝혀야 한다. 박 대통령이 적시에, 그리고 과감한 수습책을 내지 못하면 성난 민심이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다. 대통령의 실패는 나라의 불행이다. 국가 리더십에 공백이 생기는 최악의 사태는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대통령#최순실#청와대#새누리당#하야#탄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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