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이슈]‘새만금베이거스’ 놓고… 전북-강원은 지금 카지노 전쟁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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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내국인 카지노’ 충돌

국민의당 김관영 의원이 주도하는 제2 내국인 카지노를 포함한 새만금 복합리조트는 과연 싱가포르의 마리나베이샌즈(위 사진) 같은 성공작이 될 수 있을까. 아니면 자동차, 휴대전화, 귀금속 등 무엇이든지 맡기고 도박 자금을 얻으려는 ‘카지노 폐인’이 끊이지 않는 정선 강원랜드(아래 사진)의 전철을 밟을까. 김관영 의원실 제공·동아일보DB
국민의당 김관영 의원이 주도하는 제2 내국인 카지노를 포함한 새만금 복합리조트는 과연 싱가포르의 마리나베이샌즈(위 사진) 같은 성공작이 될 수 있을까. 아니면 자동차, 휴대전화, 귀금속 등 무엇이든지 맡기고 도박 자금을 얻으려는 ‘카지노 폐인’이 끊이지 않는 정선 강원랜드(아래 사진)의 전철을 밟을까. 김관영 의원실 제공·동아일보DB
 지난달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507호실에서 큰 소리가 새나왔다.

 “또 다른 내국인 카지노는 안 됩니다.” 이 방은 국민의당 전북 군산의 김관영 의원실. 김 의원 앞에는 강원 폐광지역 진폐증 피해자 단체에서 나온 10여 명이 앉거나 서 있었다. 이들 ‘강원도 옛 광원들’은 김 의원이 대표 발의한 ‘새만금사업 추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하 새만금특별법) 개정안의 한 조항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새만금사업 지역에 내국인이 출입할 수 있는 카지노 설치를 허용하는 63조 11항이었다. 현재 내국인이 합법적으로 드나들 수 있는 카지노는 강원 정선의 강원랜드뿐이다. 새만금특별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 새만금에 제2의 내국인 카지노가 생기면 강원랜드의 ‘독점적 지위’는 사라지고 말 것이라는 우려가 이들을 움직인 것이다. 이들은 생존권 문제라고 했다.

새만금에서 벅시 시걸을 꿈꾸다

 1940년대 초 오두막 같은 술집이나, 객실이 몇 개 안 되는 투박한 모텔밖에 없던 미국 남서부의 황량한 사막에 카지노가 등장했다. 러시아계 유대인 이민자의 아들이었던 벅시 시걸은 ‘검은돈’을 끌어들여 1946년 도박장이 갖춰진 ‘플라밍고 호텔’을 지었다. 환락의 도시 라스베이거스의 시작이었다.

 사막은 아니지만 바다를 막아 인공적 지평선이 만들어질 정도로 넓은, 그러나 질퍽한 땅. 새만금에서 김 의원은 복합리조트(IR·Intergrated Resorts) 건설을 꿈꾸고 있다.

 복합리조트는 호텔, 쇼핑센터·컨벤션센터·공연장, 박물관, 레스토랑, 카지노가 집약돼 비즈니스와 레저, 엔터테인먼트, 관광을 한곳에서 다 누릴 수 있도록 하는 융합레저관광시설이다. 현 정부가 중점 육성산업으로 분류한 마이스(MICE) 산업의 핵심 인프라이기도 하다. 마이스는 기업회의(Meeting), 보상관광(Incentive), 컨벤션(Convention), 전시회(Exhibition)의 첫 글자를 합친 말로 국제적 규모의 회의, 전시회 관련 산업을 뜻한다. 2010년 개장한 싱가포르 마리나베이샌즈가 대표적이다.

 김 의원은 온통 카지노에 관심이 쏠리는 것이 아쉽다고 했다. “새만금에 복합리조트가 들어서면 향후 5년간 23조5000억 원의 경제생산이 유발되고, 생기는 부가가치만 8조9000억 원입니다. 또 일자리가 23만 개 생깁니다. 복합리조트에 상시 고용되는 사람만 3만5000명입니다.”

 김 의원은 말을 이어갔다. “싱가포르 마리나베이샌즈에 있는 호텔은 객실만 2500개가 넘습니다. 이런 호텔이 새만금에 들어선다고 상상해 보세요. 여기서 사용하는 침대시트와 수건을 세탁하려면 거대한 세탁공장이 필요하겠지요. 각 객실에 꽂을 꽃을 생각하면 화훼단지가 들어서야 합니다. 복합리조트 운영에 필요한 여러 전문·기능직 일자리를 위한 각종 학교, 학원이 들어섭니다. 복합리조트뿐만 아니라 주변·배후지역이 같이 발전할 수 있습니다.”

 마리나베이샌즈의 연면적 3%만을 차지하는 카지노는 전체 매출의 80% 이상을 차지한다. 새만금특별법 개정안에 불만인 사람들이 복합리조트보다 카지노에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이유다. 복합리조트에 투자하려는 사업가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것도 사실 내국인 카지노다.

 김 의원은 “세계 대규모 복합리조트에 내국인 출입을 불허하고 투자가 성공한 사례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복합리조트가 단지 카지노에 불과하다는 것은 오해”라며 “카지노의 수익으로 복합리조트의 여러 다른 프로젝트를 재정적으로 뒷받침하면 그 열매가 경제성장”이라고 강조했다.

“카지노는 일확천금 한탕주의”

 김 의원의 바람과는 달리 새만금특별법 개정안 문제는 ‘카지노 전쟁’으로 규정되어 가고 있다. 이 전쟁은 강원랜드가 있는 강원 대 전북의 지역 대결과, 내국인 카지노에 대한 찬반 대결 양상을 띠고 있다.

 일부 언론은 김 의원과 새누리당 염동열 의원(태백-횡성-영월-평창-정선)이 충돌했다고 표현했다. 염 의원은 8월 22일 국회에서 ‘새만금 내국인 카지노 설치의 문제점’을 주제로 긴급 세미나를 열었다. 김 의원이 새만금특별법 개정안을 낸 지 닷새 만이었다. 이 세미나에서 염 의원과 참석자들은 새만금 카지노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염 의원으로서는 지리적 접근성이 정선보다 좋은 새만금에 내국인 카지노가 생기면 강원랜드의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이는 지역경제의 침체로 연결될 확률이 높다는 생각에 필사적이다. 강원랜드의 매출 감소는 인력 채용 및 카지노 수익금 배분 감소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제주도와 인천에 외국인 전용 카지노를 포함한 복합리조트가 앞으로 6곳이 더 들어서는데 새만금 복합리조트에 외국인 손님이 오겠느냐며 수익성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김 의원은 “제주와 인천의 복합리조트는 투자 규모가 1조5000억 원에 불과하지만 새만금은 10조 원 이상이 투자될 것으로 본다”며 “규모와 경쟁력에서 문화시설과 공연장, 전시시설을 갖춘 새만금이 월등하다”고 주장했다. 단적으로 MICE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인센티브 관광인데 중국에서 2000∼3000명이 한국에 올 때 이들을 한꺼번에 수용해 문화공연 등을 향유하도록 만들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카지노 폐해론도 다시 불붙고 있다. 특히 새만금이 있는 전북의 시민단체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전북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지난달 20일 전북도의회에서 ‘새만금 내국인 카지노 약인가, 독인가?’라는 주제의 토론회를 열어 카지노는 약이 아니라 독이라고 강조했다. 카지노의 부작용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카지노로 얻을 경제적 효과보다 크다는 것이다. 전종설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연구팀이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의 용역을 받아 2010년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09년 카지노, 경마, 복권 등 전체 사행산업의 매출 규모는 16조5337억 원이지만 도박 중독자들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은 78조2358억 원으로 추정된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에 따르면 2014년 도박 중독 유병률(해당 지역 인구 대비 도박 중독자 수)은 5.4%로 주요 국가의 2배 이상이었다.

 김 의원은 “전북 민심은 8 대 2로 새만금 복합리조트에 찬성”이라면서 “학계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도박중독자 가운데 치료를 요하는 ‘병적 도박자’ 비율은 0.9∼1.6%로 다른 나라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130 대 4’

 “이게 다 강원랜드 때문이다.”

 김 의원은 내국인 카지노 반대론이 힘을 얻는 이유를 이렇게 주장했다. 2000년 강원랜드 개장 때부터 카지노에 대한 규제, 감독, 관리를 철저히 하지 못했고 도박중독 예방과 치유에도 신경을 제대로 쓰지 못했다는 것이다. 돈 잃고 패가망신하며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자 ‘강원랜드의 폐해’가 ‘카지노의 폐해’와 동일시됐다는 얘기다.

 실제 1995년 내국인 카지노를 허용하는 내용의 ‘폐광지역 개발지원에 관한 특별법’(이하 폐특법)을 마련했을 때 카지노 관련 규정은 1개 조문에 불과했다. 내국인이 카지노를 출입하게 하면서도 그 통제장치로 ‘문광부 장관이 필요한 경우 내국인 출입제한 등을’ 훈령으로 두도록 위임해 둔 것이 전부였다.

 싱가포르는 카지노의 실효적인 규제를 위해 독자적인 ‘카지노관리법’을 제정했고 이에 따라 카지노감독위원회를 설치했다. 이 위원회가 카지노 인허가권을 가지며 경찰, 회계사, 변호사 같은 조직 내 전문 인력에게 카지노 관리 및 감독을 위한 사법 권한까지 부여했다. 이런 인원만 130명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카지노 관련 독립법은 없고 관광진흥법과 폐특법으로 분산돼 있다. 총리실 산하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가 있으나 실질적인 카지노 감독 기능은 부실하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강원랜드를 비롯해 전국의 외국인 전용 카지노 16곳에 대한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인원은 4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김 의원은 “카지노는 피해야 하고 두려워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관리하고 개방해야 하는 대상”이라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감독 인원을 현재 4명에서 100명 이상으로 두는 카지노 감독청을 신설하고 내국인 출입을 엄격히 제한하며, 현재 1회 9000원인 강원랜드 입장료보다 월등히 많은 1회 5만∼10만 원으로 하는 등 엄격한 규제책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카지노 감독과 규제를 위한 특별법’(가칭)을 준비해 곧 발의할 예정이다.

싱가포르 리셴룽 총리의 ‘설득’

 싱가포르 리셴룽(李顯龍) 총리는 2005년 4월 18일 싱가포르 의사당을 찾았다. 그의 손에는 A4용지 27장 분량의 ‘복합리조트 개발 제안’이라는 연설문이 들려 있었다. 복합리조트 사업이 왜 필요하며, 결정에 이르기까지 정부가 어떤 노력과 과정을 거쳤는지 상세히 피력했다. 그는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카지노는 안 된다”던 자신의 아버지 리콴유(李光耀) 전 싱가포르 총리를 설득했고, 이제 마지막 작업으로 의원들의 동의를 구하려는 것이었다.

 리 총리는 자신도 2002년 싱가포르 경제성장의 신전략을 모색하는 ‘경제심의위원회’ 의장이었을 때 “게임에 대한 접근이 더 용이해져서 도박을 한층 더 조장하게 되고 게임중독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다”며 카지노를 반대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리 총리는 그럼에도 다른 글로벌 도시에 비해 뒤처지는 싱가포르 경제의 활성화를 위해 “카지노가 아닌 복합리조트”를 선택했다고 밝혔다. 리 총리는 카지노가 싱가포르 사회에 끼치는 악영향과 마이너스 요인들을 상세히 나열한 뒤 그럼에도 복합리조트 추진을 결정했다며 이렇게 표현했다. “덩샤오핑(鄧小平)이 말했듯이 ‘창문을 열어 신선한 공기를 호흡하는 동시에 파리 같은 곤충들과도 싸워야’ 합니다.”

 싱가포르의 사례에서 보듯이 새만금 내국인 카지노 문제도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기 위한 노력이 더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의원은 이를 인정하면서도 “사회적 합의까지 이르기에는 너무 힘들다”면서 “저성장 경제를 극복하기 위해 역발상과도 같은 복합리조트 건립에 나설 최적의 시간이 지금”이라고 말했다. 지금이 최적인 이유 중 하나로 중화권 카지노가 흔들리고 있다고 김 의원은 지적했다. 2013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반부패 규제 강화 정책 이후 마카오 카지노 사업은 위축되고 있다. 2014, 2015년 연간 매출 증가율은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마카오 카지노 매출의 50%를 차지한다는 중국 부유층이 세무조사를 우려해 마카오 방문을 기피하고 있다. 이들이 자주 찾는 싱가포르도 최근 비슷한 타격을 받고 있다고 한다.

 마카오와 싱가포르에서 이탈한 중국 부유층의 카지노 수요는 약 12조6000억 원에 이른다고 한 민간연구소는 분석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은 카지노를 포함한 복합리조트를 도쿄 올림픽이 열리는 2020년까지 건립하기 위해 카지노 합법화를 추진하고 있다. 아직 합법화 여부는 불투명하지만 중국 관광객 1억 명을 일본에 빼앗길 수 있다는 시각도 없지 않다.

법 통과 가능할까

 현재 김 의원이 발의한 새만금특별법 개정안은 상임위인 국토교통위원회에 부의(附議)돼 있다. 국토위와 법제사법위원회를 넘어 본회의까지 통과되려면 갈 길이 멀다.

 상임위 법안 통과에는 해당 부처인 문체부의 동의가 중요하다. 하지만 8월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 나온 김종덕 당시 문체부 장관은 “내국인 카지노 추가 허용을 반대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현재까지 알려진 문체부의 공식 입장도 내국인 카지노를 또 허용하는 것에 부정적이다.

 여기에다 ‘내국인 카지노는 좋은데 왜 새만금이어야 하느냐’는 다른 지역의 불만이 작지 않다. 이를 설득하려는 김 의원의 논지도 아직은 불충분한 듯하다. 김 의원은 “복합리조트 수익금 일부를 강원랜드와 강원도에 최우선적으로 배려하고 나머지를 다른 시도에 균등 배분하는 상생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다른 지역이 만족할지는 미지수다.

 플라밍고 호텔 개장 이후 벅시 시걸은 세상을 떠났지만 라스베이거스는 70년 후인 지금까지도 여전히 휘황찬란하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새만금베이거스#카지노#김관영#강원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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