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성희]‘빛 공장’ 방사광가속기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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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초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가 위치한 스위스 국경지대 하늘이 보라색으로 변하고 구름에서 강한 소용돌이가 발생했다. 사람들은 CERN이 입자충돌 실험을 하다가 평행우주로 가는 출입구가 열린 것 아니냐고 수군거렸다. 이 실험을 한 곳이 거대강입자가속기(LHC·Large Hadron Collider)다. LHC는 27km에 이르는 타원형 터널의 한 지점에서 양쪽으로 2개의 양성자를 쏘아 빛의 속도로 가속시킨 뒤 충돌시켜 입자를 관찰한다. 이론상으로만 존재했던 힉스입자를 발견한 곳이 여기다.

 ▷방사광가속기도 LHC와 원리는 비슷하다. 다만 중성자를 충돌시키는 것이 아니라 전자를 빛의 속도인 30만 km까지 가속시켜 다양한 빛을 얻는 게 목적이다. 태양보다 100경(京·10의 18제곱) 배 강렬하고 파장(0.1nm·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이 짧은 이 빛을 방사광(放射光)이라고 한다. 그래서 방사광가속기는 ‘빛 공장’이라고 불린다. 빛 공장이 왜 필요할까. 아주 짧은 순간에 세포나 원자 같은 매우 작은 세계를 보기 위해서다.

 ▷1994년 준공된 포항 3세대 방사광가속기가 과학기술 발전에 가져온 성과는 헤아릴 수가 없다. 바이러스의 단백질 구조, 나노 물질이나 신약의 원자결합 상태 규명은 물론이고 초소형 로봇도 제작할 수 있다. 국내외 유명 학술지에 발표되는 연구자들의 논문이 양적 질적으로 급상승했다. 산업계의 수요도 늘어 삼성전자는 광통신 반도체 소자의 결함을 이곳에서 찾아냈다.

 ▷4세대 방사광가속기를 가진 나라는 미국 일본에 이어 우리가 세 번째다. 4세대 사업 아이디어는 포스텍에서 먼저 나왔으나 예산 배정이 지지부진한 사이에 일본에 선수를 빼앗겼다. 4세대 사업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약속했으나 지키지 못했고 이명박 정부에서 ‘형님 예산’이란 비아냥거림 속에 예산이 통과됐다. 9월 29일 사업 준공식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니 만감이 교차한다. 국가경쟁력을 주도하는 과학혁명에는 이념을 떠나 정권을 넘어서는 국가적 의지가 필요하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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