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달픈 노년… 빈곤층 늘고 학대까지 급증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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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세 이상 기초수급자 40만명 돌파… 노인학대 건수 10년새 67.9% 늘어

 아내와 사별한 후 홀로 사는 A 씨(66)는 일정한 벌이 없이 35만 원 남짓한 국민기초생활보장 급여에 의지해 살아가고 있다. 한 달 동안 부지런히 폐지를 모아 고물상에 팔아도 손에 쥐는 돈은 5만 원 남짓에 불과하다. 그나마 최근 폐지 가격이 떨어져 월세와 밥값을 제하면 남는 돈이 거의 없다.

 정부로부터 생계지원금을 받는 기초생활수급자 가운데 A 씨 같은 65세 이상 고령자가 처음으로 40만 명을 돌파했다. 가뜩이나 힘든 노년의 삶이 빈곤 문제로 더 고달파지고 있는 것이다. 통계청이 29일 발표한 ‘2016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기초생활수급자 155만4000명 가운데 65세 이상 고령자는 41만9000명(27.0%)으로 전년보다 4만 명 늘었다. 고령의 기초생활수급자는 2011년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고령 기초생활수급자가 증가한 것은 급격한 고령화로 노인 인구가 증가한 데다 노인 빈곤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노인 빈곤을 더는 가족에게만 맡겨서는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런 생각은 노인들 사이에서도 확산되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 10년간 고령자의 의식 변화를 분석한 결과 ‘부모 부양을 가족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비중은 2006년 67.3%에서 2014년 34.1%로 크게 줄었다. 반면 같은 기간 동안 ‘부모 스스로가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은 13.7%에서 23.8%로 늘었다. 경기 침체로 자녀들의 형편이 어려워진 데다 최근 10년(2006∼2015년) 사이 노인 학대가 67.9%나 증가할 정도로 가족 붕괴 현상이 심화된 탓이다. 실제 중앙노인보호전문기관이 이날 발표한 ‘2015 노인 학대 현황’에 따르면 학대 가해자 3명 중 2명(66.5%)이 아들, 딸, 며느리 등 친족이었다.

▼ 생활고에 일터 못떠나는 고령층… 60∼64세 고용률, 20대 뛰어넘어 ▼
 
한 노인이 29일 서울 종로구 종묘공원의 의자에 혼자 앉아 생각에 잠겨 있다. 정부에 따르면 빈곤으로 힘든 노년을 보내는 고령자가 갈수록 늘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한 노인이 29일 서울 종로구 종묘공원의 의자에 혼자 앉아 생각에 잠겨 있다. 정부에 따르면 빈곤으로 힘든 노년을 보내는 고령자가 갈수록 늘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한국의 노인들은 자녀의 부모 부양이 줄어들고 연금제도가 제대로 성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은퇴와 배우자 사별 등으로 가난에 직면하는 사례가 많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같은 연령대 소득 중간값의 50% 이하 비중)은 49.6%로 OECD 회원국 평균(12.6%)의 4배에 이른다. 특히 전체 노인 가구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홀몸노인의 빈곤이 심각한 상태다. 한국노동연구원이 통계청의 자료로 분석한 결과 지난해 60세 이상 1인 가구의 상대적 빈곤율은 67.1%로 조사됐다.

 이를 반영하듯 지난해 고령자 10명 중 6명(58.5%)은 생활비를 본인이나 배우자가 직접 마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당수 고령자는 여전히 일터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60∼64세 인구 고용률은 59.4%로 20대 고용률(57.9%)을 뛰어넘었다. 65세 이상 고령자 고용률은 30.6%였고, 남성 고령자의 고용률은 41.1%였다. 문제는 고령자가 일을 하더라도 대부분 양질의 일자리가 아니어서 빈곤 탈출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14년 기준으로 60세 이상 1인 가구 취업자 중 71.5%가 단순노무 종사자였다.

 현재의 연금제도가 노인들에게 기댈 만한 언덕이 되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2016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사학연금 등 각종 공적연금을 받아 생계를 꾸려나가는 이들도 있지만 퇴직 공무원이나 군인을 제외하고는 수령액이 많지 않아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실제로 지난 1년간 고령층(55∼79세) 인구의 49.5%는 월 10만∼25만 원의 연금만 받는 데 그쳤다.

 열악한 일자리와 낮은 연금으로 인해 노인들에게 장수(長壽)는 ‘축복’이 아니라 ‘저주’가 될 가능성이 크다. 2014년 기준으로 65세 이상 고령자의 기대여명(고령자가 앞으로 더 살 수 있는 기간)은 20.9세다. 앞으로 20년 이상을 더 살 수 있게 됐지만 절반 이상의 고령자(53.1%)는 자신의 남은 생에 대한 준비를 하지 않고 있다. ‘노후 준비 능력이 없다’는 응답은 2005년 43.2%에서 2015년 56.3%로 크게 늘었다.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현재 추세가 계속된다면 베이비붐 세대가 80∼90세가 될 때까지 노인빈곤 문제는 해결되기 어렵다”며 “연금 부문을 강화하고 40대 후반이나 50대 초반에 조기 퇴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사회적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종=손영일 scud2007@donga.com / 임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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