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法 28일부터 시행… 정관가-업계 표정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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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들, 외국인환자 예외적용 고심… 경찰 ‘로비용 安家’ 첩보에 촉각

 “외국인 환자를 유치하라고 할 때는 언제고 김영란법 위반이라니 난감합니다. 일주일이면 귀국할 환자에게 ‘수술받으려면 두 달은 기다려야 한다’고 할 수도 없고….”

 26일 만난 서울의 한 대형 병원 관계자는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시행 이후 외국인 환자 유치에 차질이 생길까 우려했다. 외국인 환자는 국내 체류 기간이 짧고 중증(重症)인 경우가 많아 병·의원이 각국 대사관 등의 부탁을 받아 진료·수술 예약을 앞당겨 주는 일이 잦았다. 하지만 국·공립병원이나 사립학교가 운영하는 의료기관이 특정 환자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것은 김영란법 위반이다.

 28일 시행되는 김영란법을 앞두고 법을 지켜야 할 대상인 관가와 교직 사회, 관련 업계의 준비도 각양각색이다. 새로운 법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아직까지 고민만 하거나 방관하는 조직이 있는가 하면 재치 있게 준비하는 곳도 있다.
○ 병원과 대학가도 ‘청탁 주의보’에 혼란

 대형 병원과 대학은 아직도 혼란스럽다. 국·공립병원과 사립학교 의료기관은 뒤늦게 ‘외국인 환자’ 고민에 빠졌다. 서울대병원 국제진료센터는 ‘외국인 환자는 중증도와 체류 기간을 감안해 진료 예약을 변경할 수 있다’는 등의 내용을 내규에 넣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법 취지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 안에서 내규에 예외 조항을 두면 과태료가 부과되지 않는다는 국민권익위원회의 해석 때문이다.

 대학에서는 4학년 2학기에 재학하며 취업을 준비 중인 예비 졸업생들이 가장 큰 혼란에 빠졌다. 전에는 학기 중 기업 면접 일정 등이 잡혀 수업에 들어가지 못하더라도 교수에게 부탁해 출석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김영란법 아래에선 이것도 부정 청탁으로 간주된다. 하반기 기업 공채를 준비 중인 서울 지역 사립대 학생 박모 씨(26)는 “면접 등 실무평가 때문에 결석이 불가피한데 김영란법 때문에 취업해도 졸업을 못 한다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한 국립대 교수는 “취업계를 내면 출석을 인정해 주는 것을 학칙에 넣는 것을 고려 중이지만 근본적으로 기업의 채용 시기를 방학 때로 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 창조·동면·꼼수형… 각양각색 대응

 법적으로 허용되는 방법을 최대한 활용해 법 시행 후 예상되는 변화와 제약을 극복하려는 ‘창조형’이 눈에 띈다. 사법부의 대외 협력을 담당하는 법원행정처는 서울중앙지법이 최근 개조한 구내식당을 ‘소통 창구’로 활용하기로 했다. 김영란법이 정한 식사비 한도(3만 원 이하)에 맞는 값싼 식단도 마련하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에서 5년간 한정식 식당을 운영하던 문모 씨(51)는 이달 1일부터 냉면집으로 간판을 바꿨다. 1인당 평균 6만 원대였던 한정식 대신 1만 원대 메뉴로 수익은 확연히 줄었지만 주 고객층인 인근 공무원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기업 홍보팀 직원들도 법 안에서 살길을 찾고 있다. 대기업 홍보 업무 20년 차인 A 부장은 ‘평일엔 식사 대신 티타임과 기념품, 주말엔 골프 대신 출입처 위문이나 취미생활 도우미 활동’처럼 상대방의 빈 시간을 적극 공략한다는 구상이다. 중견 건설사 홍보팀 B 과장은 최근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이 1만 원대 식당을 모아 엮은 ‘한끼 식사의 행복’이란 책을 20여 권 사서 주변에 돌렸다. 그는 “값싼 맛집 정보도 나누고 책 자체가 선물가액 한도(5만 원) 이하라 앞으로도 더 돌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공무원들은 “절대 시범 케이스에 걸리지는 말자”며 눈치를 보는 ‘동면형’이 많다. 금융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28일 이후 외부 약속은 일절 안 잡았다. 공무원이 적발 우선순위가 될 가능성이 높아 책잡힐 짓은 아예 말자는 분위기”라고 했다. 한 국책은행 홍보 담당자는 “지금 당장은 ‘안 하고 말지’가 대세지만 연말 인사 후 상견례가 걱정”이라고 푸념했다.

 김영란법의 구멍을 노리는 ‘꼼수형’도 있다. 경찰은 일부 단체가 대관(공공기관 상대) 업무용 안가(安家)를 마련해 로비용으로 쓴다는 첩보를 입수해 예의 주시하고 있다. 과거 공무원 행동강령 시행 초기 나타났던 식사 참석 인원 부풀리기, 다른 차량 이용, 가명 예약 등 전통적인 회피법도 꾸준히 거론되고 있다.

 한편 법 시행 전 추석을 치른 유통업계는 벌써 희비가 엇갈렸다. 농림축산식품부가 대형 유통업체를 대상으로 추석 전후 30일 동안 선물세트 판매 실적을 조사한 결과 한우 판매액은 작년보다 19.2% 줄었다. 상대적으로 싼 과일 선물세트는 동기 대비 1.6%가 늘었다.

전주영 aimhigh@donga.com·조건희·김현수 기자
#김영란법#부정청탁#금품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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