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사랑 고백하며 떠나는 ‘다저스 목소리’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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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위대한 스포츠에 대한 충성심, 80년간 단 한순간도 흔들린 적 없어”

 “80년 동안 이 게임(야구)을 사랑해왔습니다. 이 위대한 스포츠에 대한 충성심이 흔들렸던 적은 단 한순간도 없습니다.”

 백발의 노신사가 건넨 작별 인사는 사랑 고백이었다. 스물세 살에 야구 중계를 시작한 젊은이는 이제 아내의 부축을 받고 그라운드에 들어설 정도로 노쇠했다. 하지만 야구에 대한 사랑은 여전히 뜨거웠다. 쾌활한 유머 또한 예전 그대로였다. “앞으로 집은 좁아지고 약통의 크기는 커질 것”이라며 마지막까지 유쾌함을 잃지 않았다. 24일 미국 캘리포니아 주 다저스타디움에서 67년 중계생활을 마무리하는 은퇴 기념행사를 가진 ‘다저스의 목소리’ 빈 스컬리 LA 다저스 전담 캐스터(89)의 이야기다.

 박찬호나 류현진의 경기 때마다 나오던 ‘이제 다저스 야구의 시간입니다(It's time for Dodger baseball)’라는 멘트가 바로 스컬리의 목소리였다. 그는 1994년 다저스에서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박찬호의 이름을 정확히 부르기 위해 많은 연습을 했다. 그래서 현지 발음인 ‘챈’이 아닌 ‘찬’으로 부를 수 있었다. 다저스타디움 방문 때 여러 차례 스컬리를 만났다는 허구연 MBC 야구해설위원은 “(류현진 중계를 위해) ‘류’의 정확한 발음을 매번 물어볼 정도로 열정적인 캐스터였다”고 회상했다.

 1950년 브루클린 다저스 시절부터 다저스 전담 중계를 맡아온 스컬리는 살아있는 다저스의 역사이기도 하다. 전국 단위의 중계방송을 하는 국내와 달리 메이저리그에서는 지역 라디오와 지역 TV 방송사가 해당 지역을 안방으로 하는 구단의 경기를 전담 방송한다. 뉴욕 출신인 스컬리는 1958년 다저스가 LA로 연고지를 옮길 때 LA로 이사해 지금까지 다저스와 함께하고 있다. 이런 스컬리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 다저스 구단은 다저스타디움 기자실을 2001년부터 ‘빈 스컬리 프레스박스’로, 경기장 앞 도로를 올해부터 ‘빈 스컬리 애비뉴’로 부르고 있다. 1953년 스물여섯의 나이로 최연소 월드시리즈 중계 기록을 세우기도 했던 그의 은퇴 행사에는 다저스의 전설 샌디 쿠팩스, 현역 에이스 클레이턴 커쇼 등도 함께 자리를 지켰다.

 스컬리가 67년간 같은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데는 스스로의 노력이 컸지만 전통을 존중하는 메이저리그 문화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허 위원은 “메이저리그는 캐스터 외에도 전문기자, 커미셔너 등 분야별 가치에 대한 존중이 뿌리내린 곳”이라며 “스포츠가 가진 히스토리의 힘을 국내에서도 배우고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26일 경기로 안방구장 중계를 마치는 스컬리는 다음 달 3일 샌프란시스코와의 방문경기에서 67년의 중계생활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중계를 할 예정이다.
 
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빈 스컬리#다저스#중계 마침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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