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죽음 앞둔 젊은 의사가 만난 삶과 희망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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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이 바람 될 때/폴 칼라니티 지음/이종인 옮김/284쪽·1만4000원·흐름출판

저자와 아내 루시, 딸 케이디. 저자는 폐암 말기 진단을 받고도 이전처럼 의사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갔다. ⓒSuszi Lurie McFadden
저자와 아내 루시, 딸 케이디. 저자는 폐암 말기 진단을 받고도 이전처럼 의사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갔다. ⓒSuszi Lurie McFadden
매일 14시간 환자를 돌보고, 36시간 동안 이어지는 수술을 해내며 신경외과 레지던트 생활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여러 대학에서 교수 자리를 제안했고, 내과의사인 아내와 아이도 갖기로 했다. 갈망하던 목표가 눈앞에 다가왔지만 손에 쥘 수는 없었다. 순항하던 인생을 폐암 4기 판정이 순식간에 뒤흔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때 36세였다. 지난해 38세로 세상을 떠난 저자의 에세이는 삶에 대한 진지하고 깊이 있는 성찰을 담고 있다.

스탠퍼드대에서 영문학과 생물학을 전공하고 영문학 석사 학위를 받은 저자는 인생의 의미를 고민하던 문학도였다. 의학은 인간의 영적, 생리적 측면을 파고들다 만난 지점이었다. 예일대 의과대학원을 마친 후 스탠퍼드대병원에서 레지던트 생활을 시작했다. 생각과 감정을 지배하는 뇌에 매료돼 주저 없이 신경외과에 지원했다. ‘죽음을 뒤쫓아 붙잡고 똑바로 마주보고 싶다’는 의미도 있었다.

해부용 시신의 위에서 채 소화되지 않은 모르핀 두 알을 보며 고통 속에 약병을 더듬었을 생전 모습을 떠올린다. 환자를 처리해야 할 문제가 아닌 한 ‘인간’으로 대하려 애쓰는 저자의 노력은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폐암 말기 진단을 받은 그는 남은 시간이 석 달이라면 가족과 함께 보내고, 1년이라면 책을 쓰고, 10년이라면 병원으로 복귀하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얼마의 시간이 남았는지는 가늠할 수 없었다. 그는 죽는 날을 기다리는 대신 정상적으로 살아가기로 다짐한다.

폐암 치료를 받기 전 아내와 상의해 정자은행에 정자를 보관하고, 통증이 진정되자 병원에 복귀해 수술도 한다. 딸 케이디가 태어나 자라는 모습을 보며 말한다. “평생 느껴보지 못한 기쁨을 맛봤다. 이제 더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만족하며 편히 쉴 수 있게 됐다.”

갈라진 손가락 끝으로 어마어마한 통증을 참아가며 글을 썼지만 그는 책을 매듭짓지 못하고 아내와 8개월 된 딸을 두고 떠났다. 짧지만 놀라울 정도로 충만하고 한 인간으로, 의사로 따뜻함을 잃지 않았던 그의 삶을 알게 된 건 축복이다. 아내 루시는 “그가 희망한 것은 목적과 의미로 가득한 날들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희망을 이뤄냈다. 원제는 ‘When Breath Becomes Air’.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숨결이 바람 될 때#폴 칼라니티#when breath becomes a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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