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정계 복귀, 냉정과 열정 사이

  • 주간동아
  • 입력 2016년 7월 23일 2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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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더민주) 손학규 전 상임고문의 정계 복귀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7월 16일 손 전 고문은 팬클럽 ‘손학규를 사랑하는 모임’(손사모)의 전국 시도 대표 50여 명과 오찬 회동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정계 복귀 요청을 받은 손 전 고문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민초들 아픔을 더는 방치할 수 없다. 산속 기거를 마치고 현실 정치에 적극 참여하겠다.” 정계 복귀 시점만 남은 것이다. 예상 시점은 8월 말 또는 9월 초. 더민주와 새누리당의 전당대회가 끝날 시점이다. 그 전에 책을 낼 것으로 알려졌다. 정계 은퇴 후 전남 강진 토굴에서 1년가량 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보낸 결과물이다. 우리나라의 어느 부분이 병들었는지 진단하고 어떻게 처방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토대로 국가 재정비와 개조의 방법론적 통찰을 담은, 대한민국 대개조론이라고 한다. ‘저녁이 있는 삶’ 개정판이다.

손 전 고문의 하산이 임박하자 정치권의 구애전도 더욱 뜨거워졌다. 더민주에서는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누구보다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고 지금도 가장 열정적이다. 5월 18일 광주에서 손 전 고문과 만난 자리에서 서울에 빨리 올라오라고 요청해 “이제 올라가야죠”라는 정계 복귀 시사 발언을 최초로 이끌어낸 그다. 김 대표는 7월 17일에도 “정치를 할 생각이면 시기적으로 지금 외에 언제 다른 때 기회가 있겠느냐”며 “손 전 고문이 빨리 결심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았다.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왼쪽)와 손학규 전 상임고문이 6월 23일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열린 광주세계웹콘텐츠페스티벌 개막식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동아일보]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왼쪽)와 손학규 전 상임고문이 6월 23일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열린 광주세계웹콘텐츠페스티벌 개막식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동아일보]

뜨거운 구애 vs 더 뜨거운 구애

김 대표는 왜 손 전 고문의 정계복귀를 원하는 것일까. 5가지 판단이 작용한 까닭이 아닐까 추정해본다. ①문재인 전 대표만으로는 대통령선거(대선) 당내 경선 또는 범야권 경선 흥행이 힘들다. ②문 전 대표가 의외의 악재로 중도 탈락할 경우에 대비한 대안이 필요하다. ③문 전 대표로는 대선 본선에서 이길 수 없다. ④자신이 직접 대권주자로 나설 경우 반문재인 전선을 형성하는 데 필요하다. ⑤이원집정부제 또는 내각제 개헌을 한 뒤 자신이 실세 국무총리로 가는 시나리오에 동조해줄 유력 대권주자가 필요하다.

김 대표는 ‘손학규 대통령-김종인 총리’ 러닝메이트 구도로 개헌 정국도 돌파하고 대선 본선에도 임하려는 구상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설령 개헌이 힘들더라도 손학규-김종인 구도라면 문 전 대표를 견제하기에 충분하다. 당내 또는 범야권 경선에 직접 나설 경우 자신이건, 손 전 고문이건 문 전 대표를 이길 가능성도 지금보다 높아진다. 김 대표는 7월 17일에도 재차 “안 한다고 몇 번을 얘기했다”며 킹메이커 노릇에 거부 의사를 드러냈다.

김 대표만큼이나, 어쩌면 최근에는 더 강렬하게 구애전을 펼치는 이는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 겸 원내대표일 것이다. 박 위원장은 이미 총선 직전부터 손 전 고문의 합류를 요청했다. 안철수 전 상임공동대표가 사퇴한 이후에는 거의 필사적이다. 안 전 대표 사퇴 직후인 6월 30일 박 위원장은 “당으로 들어와 활동도 하고 안 전 대표와 경쟁도 하는 구도가 만들어지도록 노력하겠다”며 다시 공개 구애를 했다. 물론 더민주행을 견제하는 발언도 빼놓지 않는다. 박 위원장은 7월 19일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이렇게 재차 언급했다. “손 전 대표가 더민주를 선택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과거 친노(친노무현)에게 어떻게 당했나. 모바일투표에서 어떻게 당했나. 같은 실수를 안 하리라고 본다.” 김 대표와 달리 박 위원장은 손 전 고문을 당으로 영입하려는 의지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박 위원장은 왜 이토록 간절하게 손 전 고문 영입을 원하는 것일까. 김 대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5가지 판단을 기준으로 추정해본다. ①안철수 전 대표만으로는 대선 당내 경선 또는 범야권 경선 흥행이 힘들다. ②안 전 대표가 의외의 악재로 중도 탈락할 경우에 대비한 대안이 필요하다.

③안 전 대표만으로는 대선 본선에서 이길 수 없다. 무엇보다 국민의당은 38석의 소수 정당이다. ④자신이 직접 대권주자로 나설 경우 반안철수 전선, 더 나아가 반문재인 전선을 형성하는 데 필요하다. ⑤이원집정부제 또는 내각제 개헌을 한 뒤 자신이 실세 국무총리로 가는 시나리오에 동조해줄 유력 대권주자가 필요하다.

박 위원장은 일단 국민의당이라는 틀을 깨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는 듯하다. 국민의당은 안 전 대표의 당이기도 하지만, 자신을 포함한 호남 출신 국회의원들의 당이기도 하다. 호남 맹주로서 궁극적으로 대권주자로 나서는 것을 목표로 하는 박 위원장이다. 정계 개편에 뛰어들더라도 일단 호남을 잡고 넘보겠다는 계산인 것으로 보인다.

더민주에서는 우상호 원내대표도 손 전 고문의 정계 복귀에 적극적이다. 심지어 “나라도 나서서 복귀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라고 언급했다. 김 대표와 달리 “당연히 더민주와 함께할 것”이라며 더민주 영입에도 적극적이다. “더민주 당적을 가진 분에게 탈당을 권유해 자기 당으로 오라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라며 국민의당행에 대한 견제도 잊지 않았다.

문 전 대표는 어떻게 생각할까. 역시 말이 없다. 이로써 한 가지는 분명해진다. 적극 환영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문 전 대표의 측근으로 떠오른 고(故) 김대중 대통령의 삼남 김홍걸 전 더민주 국민통합위원장의 반응에서도 확인이 가능하다. 김 전 위원장은 5월 30일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이미 선거로 국민이 새판을 짜놓았는데 거기서 또 무슨 새판을 짠다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고 지적했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과 손 전 고문의 제4지대 신당 창당설이 불거졌을 때다. 이후 6월 30일에는 손 전 고문의 복귀가 특별히 나쁠 건 없다는 정도의 발언을 내놓기도 했다. 환영하지 않을뿐더러 들어오더라도 결정적 변수가 되지는 않을 것이란 지적이다.

정계 은퇴 후 전남 강진 백련사 뒤 토굴(위)에서 지낸 손학규 전 상임고문. [동아일보] [동아일보]
정계 은퇴 후 전남 강진 백련사 뒤 토굴(위)에서 지낸 손학규 전 상임고문. [동아일보] [동아일보]

떨떠름한 문재인, 더 떨떠름한 안철수

안 전 대표는 손 전 고문의 입당을 환영한다고 말한다. 4월 총선 당시 “국민의당에 꼭 필요한 인물이고 지향점이 같다고 할 수 있다”며 여러 차례 구애한 바 있다. 대표 사퇴 직전인 6월에도 언론과 잇따른 인터뷰에서 “우리나라를 정말로 변화시키고 통합하려는 사람들이 모여 치열하게 경쟁하고 국민으로부터 선택받는 플랫폼 정당이 될 것”이라 말하고 “그런 능력을 가진 분들이 함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라며 거듭 손 전 고문의 합류를 요청한 바 있다.

박지원 위원장 역시 손 전 고문 영입과 관련한 질문이 나올 때마다 안 전 대표도 원한다는 말을 빼놓지 않는다. 더욱이 안 전 대표의 최측근인 국민의당 김성식 정책위원회 의장 역시 7월 1일 “안철수 대표도 우리 당에 좋은 분이 함께한다면 좋아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안 전 대표의 환영 의사를 확인해줬다.

하지만 안 전 대표의 환영 의사 역시 문 전 대표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전제조건이 달린 것으로 봐야 한다. 당내에서 경선을 치를 경우 페이스메이커 구실에 머문다는 전제다. 다시 말해 흥행에 도움을 주는 수준에서만 나섰으면 하는 것이다. 실제로 손 전 고문이 합류하는 쪽이 범야권 대권 경선 과정에서 흥행몰이를 할 개연성이 높다. 손 전 고문 정도의 거물 정치인이 빠진다면 친노·친문 세력 일색이라, 문 전 대표의 압승이 예상되는 더민주의 당내 경선도, 사실상 안철수의 인기로 창당해 안 전 대표의 압승이 예상되는 국민의당의 당내 경선도 김빠진 맥주가 될 공산이 크다.

더민주 김종인 대표와 우상호 원내대표, 그리고 국민의당 박지원 위원장 겸 원내대표의 뜨거운 구애에도 민심은 아직 냉랭하다는 것이 변수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이 7월 12일부터 사흘간 전국 성인 1004명을 대상으로 휴대전화 임의걸기(RDD·집전화 RDD 보완) 방식으로 조사한 결과, 손 전 고문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27%), 문 전 대표(16%), 안 전 대표(11%), 박원순 서울시장(6%)에 이어 5위였다.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과 함께 4%를 기록했다.

지난달 같은 조사와 비교할 때 1%p 상승했고 순위도 한 단계 올랐다. 정계 복귀 이후에는 좀 더 상승할 개연성이 높다. 하지만 아직 판세를 뒤흔들 정도는 아니다. 더민주나 국민의당에 합류하지 않고 정계 개편을 이끌어내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민심이 왜 냉랭할까. 첫째, 정계 복귀 명분이 여전히 약하다. 정치인 손학규를 그만큼 대한민국 사회가 원하느냐는 것이다. 손 전 고문도 내년이면 70세다. 반 총장도 일흔을 넘은 것이 악재다. 그나마 반 총장은 경력이라도 화려하다. 반면 한나라당 탈당 이후 손 전 고문은 야권 내에서 구원투수 노릇에 머물렀을 뿐이다. 둘째, 조직 곧 세력도 약하다. 정치권 경력에 비해 손 전 고문은 조직이 취약한 편이다. 아는 사람은 많은데 동지가 별로 없다. 조직 측면에서 외연 확장에 애로를 겪는 이유다. 셋째, 결국 반사이익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대중적 인기도 예전 같지 않은 상황에서 조직마저 취약하다 보니 독자적으로 세력을 키워나가는 데 한계가 있다.

그래도 제4지대에 머물며 독자 행보를 이어가면서 정계 개편을 시도할 것인지, 아니면 일단 더민주나 국민의당으로 들어가 세력을 키워나갈 것이지 선택은 전적으로 손 전 고문의 몫이다. 만약에 오롯이 혼자 힘으로 판을 흔들어 정계 개편을 이끌어낼 수 있다면 손 전 고문은 여야를 아우르는 통합형 리더로 급부상하면서 대권까지 거머쥘 수 있을 것이다. 역시 1년여 동안의 칩거로 얼마나 많은 내공을 쌓았는지가 관건이라고 본다.

이종훈 시사평론가·정치학 박사 rheehoon@naver.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2016년 7월 27일자 104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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