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 진료?… 우린 의사-환자가 반상회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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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은평구 의료협동조합 ‘살림의원’… 환자이자 조합원인 1800명이 투자
4년전 출범… 의사 2명-간호사 4명… 암-탈모 등 질환별로 정기적 모임
정보 교환하며 의료진 관리 받아

서울 은평구 주민들이 직접 의료협동조합을 통해 만든 ‘살림의원’에 둘러앉아 병원의 운영 방향과 자신들의 질환 경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 병원은 ‘3분 진료’ 관행을 벗고 의사와 주민이 서로 자유롭게 질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유명하다.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제공
서울 은평구 주민들이 직접 의료협동조합을 통해 만든 ‘살림의원’에 둘러앉아 병원의 운영 방향과 자신들의 질환 경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 병원은 ‘3분 진료’ 관행을 벗고 의사와 주민이 서로 자유롭게 질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유명하다.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제공
“자, 지난달엔 무슨 갑(甲)질을 했는지 말해 봅시다.”

서울 은평구의 한 건물 3층에서 의사가 말을 꺼내자 둥글게 모여 앉아있던 환자 중 한 명이 입을 열었다. “저는 오랜만에 미역국을 끓여 먹었어요.” 다른 환자들이 모두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부조리극의 일부 같은 이 모습은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살림의원’에서 열린 갑상샘 질환 환자들의 반상회인 ‘갑들의 모임’의 한 장면이다. 의사와 환자들이 두 달에 한 번꼴로 둘러앉아 ‘못 본 새 어떤 갑질을 했느냐’는 인사로 시작하는 이 모임에선 질환과 관련된 노하우가 수다처럼 자유롭게 오간다.

살림의원은 은평구 주민과 의사가 2012년 함께 만든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 운영하는 동네병원. 환자가 곧 병원의 투자자인 셈이다. 의사 2명과 간호사 4명으로 구성된 작은 가정의원이지만 최근 조합원이 1800명을 돌파했다. 의사와 환자가 ‘30분 대기, 3분 진료’라는 말로 대표되는 위계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질환별 반상회에서 자유롭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차별화된 시스템을 갖춘 덕이다.

조합원 중 상당수는 ‘갱년기 모임’ ‘탈모 모임’ 등 자신의 상태에 맞는 반상회에 참여해 서로의 식습관과 생활습관을 체크해주고 동석한 의사나 간호사로부터 조언도 듣는다. ‘갑들의 모임’에 2년째 참여하는 한 조합원은 “암 환자가 대다수라 분위기가 어두울 줄 알았는데, 환자들이 직접 재료를 챙겨와 회복에 좋다는 음식을 그 자리에서 만들어 먹기도 하고 틀린 부분은 동석한 의사가 바로잡아 주기도 하니 재밌다”고 말했다.

환자들이 의사를 ‘옆집 이웃’처럼 편하게 생각한다는 점도 장점이다. 가족에게 응급 상황이 생기면 곧장 휴대전화에 입력된 의사의 번호를 눌러 조언을 듣는 일도 많다. 지난해 박모 씨(49·여)의 남편이 머리가 아프다며 갑자기 드러누웠을 때도 마찬가지다. 박 씨는 ‘시간이 지나면 낫겠지’라고 생각하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치의에게 전화를 걸었고, “뇌출혈 초기 증상일 수 있다”는 조언을 듣고 서둘러 대형병원 응급실로 간 덕에 상태가 악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모든 의료협동조합이 살림의원처럼 제대로 굴러가는 건 아니다. 사무장이 의사를 고용하거나 명의를 빌려 운영하는 ‘사무장 병원’을 개설하는 편법 루트로 악용하는 사례가 많고, 취지대로 운영하려 해도 만성 적자에 시달릴 때도 많다. 하지만 살림의원은 다음 달 치과 의사 1명과 치위생사 4명을 새로 들여 ‘살림치과’를 만들 예정이다. 이를 위해 주민들이 모은 출자금도 최근 9억 원을 넘었다. 모금과 조합 관리를 전담하는 유여원 경영이사(34·여)는 최근 SK가 후원하는 KAIST의 ‘사회적 기업가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밟는 등 전문 경영 노하우를 쌓아가고 있다. 유 이사는 “누구나 평등하게 건강할 권리를 누리면서 살 수 있도록 돕는 게 조합의 목표”라고 말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의료협동조합#살림의원#환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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