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女생도들 ‘주먹’의 의미는…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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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웨스트포인트 흑인 여자 생도들이 졸업을 앞두고 단체 사진을 찍으면서 흑인 인권 투쟁을 상징하는 ‘주먹 쥔 손 들기’ 제스처를 취해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 출처 트위터
미국 웨스트포인트 흑인 여자 생도들이 졸업을 앞두고 단체 사진을 찍으면서 흑인 인권 투쟁을 상징하는 ‘주먹 쥔 손 들기’ 제스처를 취해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 출처 트위터
한 장의 단체 사진이 미국 육군사관학교인 웨스트포인트를 흔들어 놓았다.

제복 차림의 여성 생도 16명이 21일 졸업을 앞두고 학교 건물을 배경으로 찍은 기념사진이다. 문제는 사진에 찍힌 생도들이 모두 흑인이며 주먹 쥔 손을 들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에서 흑인이 주먹을 쥐고 있는 것은 ‘흑인 차별에 반대한다’는 뜻의 정치적 제스처로 해석된다. 미 국방부는 군인들이 정치적 활동을 하거나 정치적인 견해를 밝히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8일 AP통신에 따르면 이 사진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퍼져 나가면서 “흑인 생도들이 정치적 표현을 한 것 아니냐”는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주먹 쥔 손을 들고 있는 게 흑인 인권 투쟁의 상징이 된 것은 1968년 멕시코 올림픽 때 등장한 독특한 메달 세리머니가 계기가 됐다. 당시 남자 육상 200m에서 금메달과 동메달을 차지한 흑인 선수 토미 스미스와 존 칼로스는 시상식에 올라 고개를 숙인 채 검은 장갑을 낀 한쪽 주먹을 치켜들었다가 메달을 박탈당했다.

이후 많은 흑인들이 흑인 인권 옹호 투쟁을 하면서 이 세리머니를 따라 하기 시작했다. 1960, 70년대 급진적인 흑인 인권단체 블랙팬서는 검은 가죽옷에 베레모를 쓰고 주먹을 치켜들어 인사했다. 팝스타 비욘세는 올 2월 미 최대 스포츠 행사인 슈퍼볼 하프타임 쇼에서 신곡 ‘포메이션’을 부르면서 블랙팬서처럼 차려입은 흑인 백댄서들과 함께 이 인사법을 따라 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블랙팬서는 1960, 70년대 활동한 미국의 급진적인 흑인 인권운동 단체로 마틴 루서 킹 목사의 비폭력 노선 대신 맬컴 엑스의 강경 투쟁을 추종했다. 흑인 차별에 맞선다는 명분과 흑인들의 공정한 재판과 교육의 필요성을 내세웠지만 총기를 사용하는 등 지나치게 폭력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2014년 8월 미주리 주 퍼거슨 시에서 10대 흑인 소년이 백인 경찰관의 총에 맞아 사망한 뒤 벌어지고 있는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에서도 이 제스처가 등장했다.

사진에 나온 여생도들의 멘토 역할을 해온 졸업생 메리 토빈은 “졸업을 자축하기 위해 통일된 포즈로 사진을 찍었을 뿐이다. 미식축구 선수들이 승리한 뒤 헬멧을 들고 흔드는 것과 다를 게 없다”고 해명했다. 웨스트포인트는 사진 속 포즈가 정치적 견해 표현에 해당되는지 조사하고 있다.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웨스트포인트#흑인#여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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