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문집 200여 권 뒤져 모은 ‘조선의 동시’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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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대회 교수, ‘내 생애 첫 번째 시’ 펴내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는 “옛 사람들은 아이들이 시로 스스로를 표현하는 것을 중요시했다”며 “섬세한 감성이 드러나는 시를 주로 골라 책에 담았다” 고 말했다. 안대회 교수 제공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는 “옛 사람들은 아이들이 시로 스스로를 표현하는 것을 중요시했다”며 “섬세한 감성이 드러나는 시를 주로 골라 책에 담았다” 고 말했다. 안대회 교수 제공
“통째로 남산을/옮기긴 어려워도/깨끗한 돌 하나는/가져가도 되겠지요/초가집 아래다/고이고이 놓아두면/흐르는 물소리/콸콸콸 들리겠죠.”

요즘 서울에 사는 아이가 쓴 동시 같지만 사실 조선 후기 사람인 김수약이 다섯 살 때 지은 시다. 요즘 동시처럼 조선 시대에도 아이들이 쓴 한시 동몽(童蒙)시가 있었다.

정갈한 한시 번역으로 정평이 난 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가 옛사람들의 동시 120여 편을 묶고 해설을 단 ‘내 생애 첫 번째 시’를 최근 냈다. 4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안 교수는 “13년 전 ‘초등학생인 자식을 위한 책을 써보라’는 권유로 집필에 착수했는데, 문집에 산발적으로 나오는 동시를 모으다 보니 이제야 책을 낸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쓴 시이지만 수준이 놀랍다. “바다가 품어서/깨끗해진 하늘의 해/꽃처럼 뱉어 놓아/일년 내내 붉구나/강 위에 가득해라/고기 잡는 어부들/석양녘 바람결에/돛단배를 멈추었네.”

조선 후기 사람인 곽시징의 딸이 일곱 살 때 지은 이 시는 어부들이 돛배를 멈추고 해를 바라보는 고향 태안 바닷가 마을의 풍경을 간결하면서도 풍부한 이미지로 그려냈다.

동시에 아이들의 때 묻지 않은 시선과 솔직함이 드러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놀기만 좋아한다고 나무라자 ‘남들이 다들 정승감이래요’라고 읊은 시, 높이 열린 복숭아를 노래한 시 등이 그렇다. 안 교수는 “옛사람들은 잘 썼든 못 썼든 아이들이 시를 통해 스스로를 표현하는 힘을 키우는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봤다”며 “요즘 교육이 배워야 할 점”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책에 실린 동시는 운자(韻字)를 맞추지 않았거나 대강만 맞춘 것들이 대부분이다. 안 교수는 “아이들이 형식에 매이지 않고 쓰고 싶은 대로 쓰도록 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금이라면 초등학생일 열세 살짜리가 소나무 아래서 술을 마시는 흥취를 노래하는 등 옛 풍경을 보여주는 시도 많다.

안 교수는 책을 펴내기 위해 옛 문집 200여 권에서 시를 골랐는데 동시가 문집 초고의 필사본에만 남아 있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안 교수는 “동시를 쓴 본인은 추억이 있어서 문집에 넣었지만 사망 뒤 문집 간행 시에는 자식이나 제자들이 간행할 때 뺐기 때문으로 보인다”라며 “남아 있는 동시는 참 귀한 것들”이라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김수약#한시#동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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