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 교수 “박근혜 정부 경제성적 낙제는 아니지만 신성장 동력 못 찾아”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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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어떻게?]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 전화 인터뷰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4·13총선 때 투표를 했을까? 그는 “투표하려면 멀리 런던의 주영 한국대사관에 가야 한다”며 “지난 대선 때는 영국 거주자 중 우연히 100번째로 투표했는데, 이번에는 다른 일정 때문에 못 했다. 눈에 띄는 경제 정책도 없었다”고 말했다. 부키출판사 제공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4·13총선 때 투표를 했을까? 그는 “투표하려면 멀리 런던의 주영 한국대사관에 가야 한다”며 “지난 대선 때는 영국 거주자 중 우연히 100번째로 투표했는데, 이번에는 다른 일정 때문에 못 했다. 눈에 띄는 경제 정책도 없었다”고 말했다. 부키출판사 제공
《한국인 최초의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로 40여 개 국가에 저서가 번역된 장하준 교수(53). 한국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해 왔지만 지난해 봄부터 국내 언론에서 그의 목소리를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해외 언론과의 인터뷰가 개인 홈페이지를 통해 간간이 올라왔지만 건강이 좋지 않다는 풍문도 들렸다. 4·13총선 전 요청했던 전화 인터뷰가 3일 성사됐다.》

―근황은….

“건강은 전혀 문제없다.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쓰는 데 3년이 걸렸다. 좀 지쳤다. 한국뿐 아니라 영국 언론 기고도 중단했는데 본의 아니게 은둔하는 것처럼 됐다. 재충전하고 있다.”

―무슨 연구를 하나.

“산업구조 다각화를 위한 논문 등을 준비하고 있다. 특정 국가에 석유가 난다면 시추, 플랫폼 건설, 정제 산업뿐 아니라 고부가가치 합성섬유를 개발해 패션산업을 육성할 수도 있다. 산업을 보는 시각에 따라 갈 길이 달라진다.”

―유엔 등 국제기구와 비정부기구, 기업에 활발하게 조언하고 있다.

“현실 정책에 도움을 주고 싶어서 경제학을 시작했다. 지난달 유엔 아프리카경제위원회에 낸 200쪽짜리 보고서가 책으로 나왔다. 최근 농업, 섬유업을 바탕으로 성장한 아프리카 국가들의 산업 육성에 대한 보고서인데 반응이 좋은 것 같다.”

―취임한 지 3년 넘은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 분야 성적은…. 먼저 성장 부문.

“세계 경제가 워낙 안 좋아서, 숫자로 보이는 것만큼 나쁘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당장의 성장률이 아니라 앞날을 대비하지 못했다는 게 문제다. 한국이 1970, 80년대 다른 나라들을 밀어냈던 것처럼 중국에 밀려나고 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정부는 산업 정책을 펴면 안 된다는 잘못된 분위기가 생겨 손놓고 있었다.”

―‘창조경제’ 했지 않나.

“방향은 맞는데, 구체적인 게 없다. 창조의 대부분은 굴뚝산업이라고 폄하되는 제조업에서 일어난다. 기술혁신은 정부의 기초 연구개발(R&D) 투자와 지원에서 생긴다. 선진국은 정부 R&D 지출이 전체의 30∼70%를 차지하는데 우리는 30%가 안 된다.”

―조선, 해운 산업 구조조정이 시작됐다. 중후장대 산업 이후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하나.

“산업 내부의 업그레이드나 신산업 다각화를 안 했다. 예전에는 재벌이 자본과 경영 능력으로 ‘비관련’ 다각화를 했는데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신산업 창출이 안 되고 있다. 자본시장이 개방되고 소액주주 권한이 강화됐는데, 기업의 주인인 주주들은 주인 의식이 전혀 없다. 언제라도 팔고 나간다. 금융규제를 통해 단기 주주의 영향력을 약화시켜야 한다. 일례로 주식을 오래 보유할수록 의결권을 더 주는 제도를 만들 수 있다. 기업이 장기 안목을 갖고 투자해 다각화를 하고 신산업에 진출하는 메커니즘을 금융시장에서 만들어야 한다.”

―적은 지분으로 계열사 전체를 지배하는 재벌 구조가 강화되지 않겠나.

“기업 경영권을 보호해줄 테니 국민 경제를 위해서 뭐든지 내놓으라는 것이다. 외국에 아웃소싱을 하거나 공장을 옮길 때 제대로 검토와 허가를 받도록 한다든지. 잘못된 것을 봐주자는 게 아니라, 장기 투자와 경제 다각화를 위해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는 ‘셋업’이 필요하다.”

―정부가 노동 개혁에 나섰다.

“우리나라는 단기 근로자 비율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이고, 도리어 노동시장이 굉장히 유연해서 문제인 나라다. 지금은 기업들의 신산업 진출을 정부가 어떻게 도와주고, 그래서 어떻게 중국의 추격을 뿌리치고, 선진국을 따라잡느냐가 중요하다.”

―복지 정책은….

“너무 소극적이었다. 복지는 사실 우파 정책이다. 박 대통령은 한국 복지 발전에 초석을 놓을 수 있는 독특한 정치적 위치에 있는 분이었는데, 아까운 기회를 날렸다. 한국은 국민소득 대비 사회복지 지출이 10%가 안 된다. 하루아침에 스웨덴처럼 30%로 올릴 수도 없고, 미국 정도(20%)로 올리는 것도 어렵다. 하루라도 빨리 시작해 20∼30년을 두고 추진할 장기 프로젝트다.”

―유례없는 인구 절벽으로 부양받을 사람이 더 많아지면 지금 정도의 복지만 유지해도 지출 비율이 저절로 30%로 올라간다는 반론도 있다.

“숫자가 중요한 것은 아니고 잘 디자인해 사정에 맞게 하면 된다. 우리 자살률이 OECD 1위다. 평균의 3배이고 노인 자살률은 4배다. 복지의 필요성이 명백하다.”

―말씀을 들어도 답답함이 확 가시지 않는다.

“도깨비 방망이는 없다. 지금 손놓고 있다가 5, 10년 후 산업이 하나씩 망하면 한국은 갈 데가 없어진다.”

 
:: 장하준 교수 약력 ::
 
1990년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부 교수
1991년 영국 케임브리지대 박사(경제학)
2003년 세계적 권위의 경제학상인 뮈르달 상 수상
2005년 세계적 권위의 경제학상인 레온티예프 상 수상
2005년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
2010년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출간
2014년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출간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장하준#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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