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시, 잘못했다는 한마디 없어… 억만금 줘도 용서못해”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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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전 손녀 잃은 할머니, 옥시대표의 떠밀린 사과에 분노

“사과의 진정성을 논할 시기는 이미 오래전에 지난 것 같아요. 보상금이 아무리 많다 해도 피해자들의 고통과 상처가 회복되진 않을 
겁니다.” 옥시레킷벤키저의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하고 2010년 6월 첫 손녀를 잃은 송유선 씨가 2일 옥시의 기자회견이 열린 직후
 서울 강북구 수유동 자택에서 손녀의 사진을 어루만지고 있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사과의 진정성을 논할 시기는 이미 오래전에 지난 것 같아요. 보상금이 아무리 많다 해도 피해자들의 고통과 상처가 회복되진 않을 겁니다.” 옥시레킷벤키저의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하고 2010년 6월 첫 손녀를 잃은 송유선 씨가 2일 옥시의 기자회견이 열린 직후 서울 강북구 수유동 자택에서 손녀의 사진을 어루만지고 있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할마 함마!” 부르며 계단을 아장아장 오르던 소원이(가명·당시 15개월)는 며칠째 힘이 없었다. 겨울부터 기침을 넉 달째 달고 살던 2010년 5월, 용하다는 한의원에도 가보고 좋다는 약도 써봤는데 도통 낫질 않았다. 동네병원들을 다녀 봐도 곧 나을 거라며 돌려보내기 일쑤였다. 쉰하나에 얻은 예쁜 우리 첫 손녀딸, 이 따뜻한 봄에 감기가 지독히 오래도 간다 생각했다.

“여보 여보, 얘 왜 이래?” 낮잠을 청하려고 잠깐 누운 일요일, 걸음마를 갓 뗀 아이가 내 옆에 와 픽 쓰러졌다. 축 늘어진 아이를 남편이 둘러업고 인근 고려대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심한 폐렴인데 원인을 모르겠다는 의사 말에 발을 동동 굴렀다. 아기는 아파서 울다가 숨을 잘 쉬지 못해서 맥없이 콜록대고 삑삑 소리 내다 눈을 감곤 했다. 그래도 대학병원에 왔으니 시간이 해결해 주리라 믿었는데 상태가 더 나빠진 소원이는 일주일 만에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오전, 오후에 한 번씩 면회가 가능한 중환자실. 소원이 작은 머리에 알 수 없는 기계들이 얽히고설켜 꽂혀 있었고 눈동자는 풀려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며느리가 울다 까무러쳤다. 엄마도 없이 얼마나 외롭고 두려웠을까 생각하니 다리에 힘이 풀렸다. 소원이에게 생전 듣도 보도 못한 폐섬유화 진단이 내려졌다. 폐가 딱딱하게 굳는 거란다. 의사들은 “잘 버티고 있고 좋아지고 있다”며 어깨를 두드렸지만 언젠가부터 소원이는 계속 눈을 감고 있었다. 아프다고 울기라도 했으면, 함마 소리 한 번만 더 해줬으면….

2010년 6월 6일. 손녀딸 좀 살려달라고 절에서 불공을 드리다 연락을 받고 병원에 급히 도착했다. 차갑게 식은 소원이를 품에 안는데 가슴에 울컥울컥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할미가 죄를 많이 졌나 보구나. 손녀가 재가 되어 담긴 작은 항아리를 보고 하염없이 울었다.

이듬해 소원이와 비슷한 사례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환경보건시민센터에 연락했고 그곳에서 다른 피해자 가족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던 2011년 8월, 뉴스를 보며 식사를 하던 온 가족이 숟가락을 내려놓고 아무 말도 못했다. 질병관리본부에서 “폐 손상의 원인은 가습기 살균제”라고 말하던 순간이었다. 아기들이 감기에 취약한 겨울철, 남편과 함께 마트에서 옥시레킷벤키저의 가습기 살균제를 집어 든 기억이 났다. ‘살균 99.9% 아이에게도 안심, 인체에 안전한 성분을 사용해 안심하고 쓸 수 있습니다.’ 더 깨끗하게 편히 자라고 소원이 머리맡에 가습기를 잘 쐴 수 있도록 가까이 댔던 적도 있었다. 손수 독약을 골라 샀다는 사실에 가슴을 쳤고 그 길로 광화문에서 피켓 시위에 나서고 국회를 찾아가 호소했다.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던 때였다. 옥시는 철옹성처럼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6년이 지났지만 가슴에 묻은 손녀를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쏟아진다. 아들 내외는 달라질 게 없다며 그만하란다. 그런데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검찰이 제조업체를 처벌하겠다고 수사를 하고, 언론은 연일 옥시의 만행을 폭로하며, 시민들도 옥시 불매운동에 나섰다. 그래서일까. 지난해 5월 피해자 가족들이 영국 버크셔 본사를 찾아갔을 때도 문전박대하던 옥시가 사과 발표를 했다. 늦어도 너무 늦은 사과, 여기저기에 등 떠밀린 사과는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아타울라시드 사프달 대표가 고개를 숙인다. 포괄적인 보상안을 내놓겠다는 말만큼이나 포괄적이고 실체가 없는 사과에 속에서 천불이 난다. 우리가 듣고 싶던 ‘잘못했습니다’는 어디로 간 걸까. 보고서 조작, 증거 은폐 등 각종 의혹을 받는 기업이 독립적인 전문가 패널을 만든다면 누가 믿겠는가. 소원이를 잃은 우리도, 폐질환을 앓으며 힘겹게 살아가는 피해자 모두 옥시의 행동 하나하나에 상처가 덧난다. 옥시가 단 한 번이라도, 내 가족이 쓴다고 생각하고 만들었다면 달라지지 않았을까. 100억 원이 아니라 억만금을 준다 해도 이 사과는 안 받고 못 받는다. 들고 있던 소원이 사진이 다시 흐릿해진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 이 기사는 서울 강북구 수유동의 송유선 씨(58·여)를 인터뷰한 내용을 송 씨의 시점에서 재구성한 것입니다.
#옥시#가습기#살균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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