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고미석]이란은 왜 한국드라마를 좋아하나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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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이란 테헤란에 출장 갔을 때 대기오염으로 악명 높은 매연을 온몸으로 느꼈다. 무역 제재로 인한 만성적 부품 부족 탓에 폐차장에 가야 할 중고 자동차들이 거리를 휘젓고 다녔다. 박물관과 현대미술관에는 페르시아의 위대한 유물이 초라한 유리 진열장 속에 웅크리고 있었다.

▷이란이 요즘 세계 경제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8000만 인구에, 천연가스 매장량 세계 2위의 자원부국이란 점에서 서방의 경제제재 해제 이후 신흥시장으로 떠올랐다. 한국 중국 일본도 앞다퉈 이란시장의 선점 경쟁에 나섰다. 올 1월 중국 시진핑 주석은 국제사회에 복귀한 이란을 공식 방문한 첫 정상이었다. 일본 아베 신조 총리도 하반기 방문을 추진하고 있다.

▷2009년 8월 이란을 찾은 배우 송일국은 현지에서 ‘주몽’의 폭발적 인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전설의 왕자’란 이름으로 소개된 ‘주몽’의 시청률이 85%, 그의 얼굴을 보겠다는 일념으로 수도에서 1500km나 떨어진 시골에서 무작경 상경한 아가씨도 있었다. 그해 이란의 한 블로거는 ‘한국 드라마 주몽은 이란의 안방 풍경을 바꿔놓았다’고 적었다. 저녁식사 후 오순도순 대화하는 모습이 사라지고 온 가족이 TV 앞에서 붙박이가 됐다는 것이다. 사극으로 불붙은 한류는 가전시장에서 한국의 독주로 이어졌다. 중산층 주부가 LG, 삼성 냉장고나 TV를 들여놓으면 이를 자랑하기 위해 손님을 부르지만 한때 유행한 소니 제품을 바꾸지 못한 집은 창피해서 아예 천으로 가려놓는다는 얘기도 나왔다.

▷이란이 우리 사극에 푹 빠진 이유는 이슬람 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 흔히 ‘한 손에는 칼, 한 손에는 꾸란’ 식으로 이슬람을 무섭게 묘사하지만 가족을 끔찍이 생각하는 삶이나 웃어른에 대한 공경, 남녀칠세부동석의 엄격한 성윤리 등은 우리 문화와 참 닮았다. 고대 페르시아 구전 서사시 ‘쿠시나메’에는 ‘신라(Silla)’를 찾아와 공주와 결혼하는 페르시아 왕자가 등장할 만큼 교류도 활발했다. 그 찬란한 문화의 제국 이란을 내일 한국의 여성 대통령이 방문한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이란#송일국#주몽#한국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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