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폰 유인… 어르신 울리는 ‘요금폭탄’ 사기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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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형-알뜰폰을 새 제품으로 속여… 단말기값 빼가고 요금 2, 3배 부과
해약하려 하면 “위약금 내라” 횡포

폴더폰을 사용하던 이양구 씨(71)는 지난해 서울 강서구 방화동의 이동통신사 직영점을 찾았다가 계획에도 없던 스마트폰 교체를 했다. “문자메시지밖에 보낼 줄 모른다”며 폴더폰을 계속 쓰겠다고 했지만 직원들은 “스마트폰을 사는 게 훨씬 이득이 많다”며 이 씨에게 스마트폰 사용을 강하게 권유했다. 이 씨는 내용도 잘 모르고 직원이 내민 태블릿 PC 전자문서 여기저기에 사인도 했다.

그런데 몇 개월 뒤 자동이체로 설정해 놓았던 통장을 확인하면서부터 문제가 생겼다. 2년 약정이면 기계 값이 무료라고 했지만 이미 매월 2만∼3만 원씩 기계 값이 추가로 나가고 있었고, 요금도 4만∼5만 원씩 꾸준히 나갔다. 이 씨가 직영점을 다시 찾았지만 직원은 이미 그만둔 뒤였다. 이동통신사 측은 “당신이 한 계약이고 사인도 있어 어쩔 수 없다”며 나머지 기계 값 30만 원을 완납해야 한다고 했다.

스마트폰 시세나 물정에 어두운 노인들에게 사기성 계약을 강요하는 일부 휴대전화 직영·대리점이 늘어나고 있다. 가장 빈번한 사례는 소규모 통신사들이 통신망을 임대해 쓰는 알뜰폰임을 알리지 않는 것. 알뜰폰은 대기업 통신사보다 서비스가 제한돼 있고 통신요금도 저렴하지만 노인들에게 이런 사실을 감추고 제값을 받는 것이다. 성능이 떨어지는 구형 스마트폰을 최신 기종으로 속여 팔기도 한다. 소비자원에 따르면 2012년 연간 185건이던 알뜰폰 관련 상담문의는 2013년 372건, 2014년 1100건에 이르렀다. 소비자원은 “상담자 중 대부분은 60대 이상 고령층”이라고 밝혔다.

한국갤럽의 월별 조사에 따르면 2012년 13%에 불과하던 60대 이상의 사용률이 2015년 49%로 급증했다. 새로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환경에 도전해보고 싶은 노년층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판매자 입장에서는 노년층들이 마지막 남은 ‘잠재적 수요층’인 셈이다. 20∼30대는 이미 90% 이상 스마트폰을 쓰고 있는 데다 인터넷으로 가격비교까지 세세히 하고 찾아온다. 반면 노인들은 각 모델의 시세도 잘 모르고 복잡한 부가서비스도 직원이 시키는 대로 사인을 하는 경우가 많다.

정(情)이 많아 거절을 잘 하지 못하는 노인들의 ‘약한 마음’을 악용해 돈을 버는 사례도 있다. 정분례(가명·72) 씨는 “남편이 귀가 잘 안 들리고 인지력이 많이 떨어졌는데 텔레마케터가 ‘공짜폰이니 한번 써보시라’며 집요하게 주소를 물어봐 결국 알려줬고 스마트폰이 집으로 도착했다”고 주장했다. 택배로 휴대전화를 먼저 보낸 후에 텔레마케터가 비싼 요금제로 가입을 유도하는 경우가 많다.

소비자단체 컨슈머워치 운영위원인 김정호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는 “금융상품의 불완전판매처럼 노령 소비자들이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스마트폰에 가입했다면 이 역시 사후에 구제할 수 있도록 정부 개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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