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여자에게 서로는 가장 놀라운 선물… ‘캐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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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용납하지 않은 운명적 사랑… 섬세하고 치밀한 심리묘사가 압권

영화 ‘캐롤’에서 캐롤(케이트 블란쳇·왼쪽)과 테레즈(루니 마라)는 서로에게 운명처럼 빠져든다. 올댓시네마 제공
영화 ‘캐롤’에서 캐롤(케이트 블란쳇·왼쪽)과 테레즈(루니 마라)는 서로에게 운명처럼 빠져든다. 올댓시네마 제공
1952년 12월 미국 뉴욕 맨해튼. 크리스마스를 맞아 한창 바쁜 백화점 점원 테레즈(루니 마라)의 시선을 한 여자가 사로잡는다. 고급스럽게 차려입은 아름다운 여성 캐롤(케이트 블란쳇)이다. 그는 마법처럼 테레즈에게 다가와 자기 딸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을 추천해 달라고 부탁한다. 선물을 산 캐롤이 떠난 자리에는 그가 두고 간 장갑 한 켤레가 남아 있다.

4일 개봉한 영화 ‘캐롤’(18세 이상)은 레즈비언이 무엇인지조차 드러내놓고 말하기 힘들었던 시대, 세상에서 가장 약하고 고립된 두 여자가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는 얘기다.

테레즈는 사진에 재능이 있지만 자신감이 없고, 남자친구와의 관계에서도 자신을 내세우지 못한다. 캐롤은 자기 정체성을 억누른 채 살다 결국 남편에게 이혼을 고한 참이다. 그 시대, 여자와 여자가 사랑하는 것은 이중의 고난이었다. 둘은 점심을 같이 먹고, 집에 방문하고, 마침내 모든 것을 뒤로한 채 여행을 떠나지만 결국 현실의 벽에 부딪힌다.

영화는 두 사람이 호텔 커피숍에서 재회하는 장면으로 시작해 다시 그 장면으로 돌아간다. 두 사람의 감정은 “참 이상한 사람이에요, 당신.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서로 호감을 갖는 건) 마치 물리학 같은 거지. 서로 부딪히는 핀볼처럼” 같은 시적인 대사를 타고 점진적으로 증폭된다. 그리고 마지막 커피숍 장면에서 단순하지만 적확한 문장으로 폭발하며 관객을 사로잡는다.

영화 ‘태양은 가득히’의 원작 소설을 쓴 여성 스릴러 작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소설 ‘소금의 값’을 원작으로 삼아 섬세하고 치밀한 심리 묘사만으로도 긴장감 있게 결말로 나아간다.

두 배우, 케이트 블란쳇과 루니 마라가 없었다면 영화의 설득력은 한층 떨어졌을 것이다. 우아하고 저돌적이지만, 동시에 불안한 캐롤을 연기한 블란쳇의 매력은 여성이든 남성이든 누구라도 단숨에 굴복시킬 정도로 압도적이다.

미국 사실주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강렬하지만 쓸쓸한 화면, 크리스마스캐럴과 뒤섞인 우울한 피아노 선율, 시대를 반영한 의상이 한겨울의 멜로드라마를 마무리한다. ★★★★☆ (별 5개 만점)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캐롤#루니마라#케이트블란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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