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객기 전세라도 냈나요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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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뀌면 세상이 바뀝니다]
[11월의 주제는 ‘공공 에티켓’]<226>남 배려 않는 꼴불견 승객

이달 초 비행기에 탄 직장인 박모 씨(26·여)는 생애 첫 싱가포르 여행에 대한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설렘도 잠시. 갑자기 누군가 옆구리를 쿡 찔렀다. 바로 옆 창가 쪽 좌석에 앉아있던 한국인 아주머니였다. 안전벨트 표시등이 켜져 있었지만 이 승객은 통로 쪽에 앉은 박 씨에게 빨리 나가라는 눈총을 줬다. 마지못해 박 씨가 일어나자 이 승객은 승무원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선반에서 짐을 꺼내고 서둘러 출구로 향했다. 이미 출구에는 내릴 준비를 마친 다른 한국인 승객이 무리지어 있었다. 박 씨는 “순서대로 나가면 서로 얼굴 붉힐 일 없을 텐데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외국인들이 못마땅하게 쳐다보는데 같은 한국인으로서 민망했다”고 말했다.

해외 여행객이 빠르게 늘고 있지만 비행기나 공항 이용 에티켓 수준은 여전히 후진적이라는 목소리가 크다. 기내에서 조금이라도 먼저 내리려고 안전규정을 무시하는 사람 중엔 유독 한국인이 많다. 몸에 밴 ‘빨리 빨리’ 문화에 ‘나만 빨리 내리면 된다’는 이기심이 더해진 결과다.

내 시간은 1초도 아까워하면서 남의 시간은 배려하지 않는 꼴불견 승객도 적지 않다. 이달 중순 미국 출장길에 오른 직장인 김모 씨(27)는 비행기 출발시간 1시간 전에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탑승수속을 마치기에도 빠듯했지만 김 씨는 전혀 서둘지 않았다. 출장 준비물을 사고 은행 창구에서 환전하고 출발 15분 전에야 발권 창구로 갔다. 그의 ‘노림수’대로 항공사 직원은 김 씨의 모든 탑승수속 업무를 속전속결로 처리해줬다. 출국심사대를 지난 그는 자신을 찾는 안내방송이 나오는데도 불구하고 먼저 인터넷으로 구입한 면세품을 찾은 뒤 탑승 게이트로 향했다. 늦어도 출발 10분 전에 모든 탑승을 마무리해야 하지만 김 씨는 출발 2분 전에야 비행기에 탔다. 국내 항공사에 근무하는 승무원 이모 씨(29)는 “실제 김 씨처럼 항공사의 배려를 악용하는 얌체족 때문에 비행기 출발시간이 지연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비행기는 이륙하는 순간부터 공동 운명체다. 이동시간이 길고 실내 공간도 비좁아 사소한 민폐도 남에게 큰 불편이나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 국내 한 항공사 관계자는 “비행기 출발이 늦어지면 다음 항공편을 준비하는 시간이 부족하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환승 시간이 빠듯한 승객은 비행기를 놓칠 수도 있고 목적지 공항의 거부로 다른 공항에 착륙해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호경 기자 whalefisher@donga.com
#배려#여객기#승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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