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회의장이 15억원 뇌물 챙겨… 유엔 최악의 부패 스캔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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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브해 소국의 유엔주재 대사… 2013∼14년 회기 의장 맡아
마카오-中기업인 등에게 돈 받아, 美 검찰에 체포… 수사확대 가능성
反부패 개혁 이끈 潘총장도 타격

창립 70주년을 맞은 유엔에 최악의 부패 스캔들이 터졌다. 사무총장과 함께 유엔의 양대 수장으로 불리는 총회의장이 거액의 뇌물수수 혐의로 미국 검찰에 체포돼 기소된 것이다. 코피 아난 전 사무총장 임기 말에 터진 이른바 ‘석유-식량(oil-for-food) 스캔들’을 능가하는 사건이어서 유엔의 반부패 개혁을 이끌어 온 반기문 사무총장에게도 적지 않은 정치적 타격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프릿 바라라 뉴욕 남부 연방지방검찰청 검사장은 6일(현지 시간) 오전 기자회견을 갖고 제68차 유엔총회(2013∼2014년 회기) 의장을 지낸 존 애시(61)를 체포해 기소했다고 밝혔다. 그는 의장으로 활동하면서 마카오의 부동산 개발업자를 포함한 중국 기업인들로부터 130만 달러(약 15억1000만 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다.

애시 전 의장은 카리브 해 섬나라인 앤티가바부다의 전직 유엔 대사이다. 인구 10만 명이 채 되지 않는 소국(小國)이지만 애시 전 의장은 유엔 내 최대 모임인 ‘77그룹’(개발도상국 연합체)의 의장을 지내는 등 중남미 지역에서 탁월한 외교 역량을 인정받아 온 인물이다. 대륙별 순환 원칙에 따르는 총회의장 선출 때도 중남미 그룹 대표로서 만장일치의 찬성을 받았다. 그의 기소 소식을 들은 유엔 소식통들은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혔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애시 전 의장은 마카오 부동산재벌인 순키안입 그룹 회장 응랍셍(68)으로부터 50만 달러가 넘는 뇌물을 받고 그 대가로 유엔이 후원하는 수십억 달러 규모의 ‘마카오 콘퍼런스 센터’가 건립될 필요가 있다고 건의하는 문서를 유엔 사무총장실에 제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 애시 전 의장은 유엔 활동을 지원해줄 것을 요청하는 또 다른 중국 기업인들로부터도 80만 달러를 받은 혐의도 받고 있다.

공소장에 적힌 뇌물 형태는 가족여행 비용에서부터 뉴욕 자택의 사설 농구코트 건립비(3만 달러)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또 은행계좌에는 출처가 불분명한 300만 달러 이상의 돈이 예치돼 있기도 했다. 애시 전 의장은 그 돈으로 은행 대출금을 갚거나, 승용차 리스 대금(4만 달러)을 지불하거나, 롤렉스 손목시계(2개)를 사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바라라 검사장은 “애시 전 의장 이외에 관련자 5명을 기소했다”며 “이런 뇌물수수 부패가 유엔에서 상시적으로 벌어지는지를 수사 중이어서 체포 대상이 더 늘 수도 있다”고 했다. 반 총장은 이날 유엔 대변인을 통해 “충격을 받았고 깊이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반 총장은 유엔 관계자가 20만 달러의 뒷돈을 챙기는 등 부패 파문이 일었던 ‘석유-식량 스캔들’ 직후 취임해 ‘유엔 고위 당국자들의 자발적 재산신고’ 등을 유도하는 등 청렴성과 투명성을 제고하는 노력을 해 왔으나 이번 사건으로 “개혁한 것이 없다”는 비난을 들을 위기에 처했다.

뉴욕=부형권 특파원 bookum90@donga.com
#총회의장#뇌물#유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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