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과학기술 연구기관, 사업성도 검증 안하고 난립… 지방분원 신설 사실상 불허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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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출연 과학기술 연구기관 지방분원 재정비

앞으로 과학기술 관련 정부출연 연구기관(출연연)의 지방분원 설치가 최소화된다. 기존에 설치된 지방분원에 대해서도 타당성을 검토해 통폐합을 추진한다. 지방분원의 난립으로 국가 재정이 악화되자 정부가 출연연의 지방분원에 대한 재정비에 나선 것이다.

4일 기획재정부와 미래창조과학부에 따르면 정부는 최근 ‘연구기관의 본원 외 조직 설치·운영지침’을 개정해 한국과학기술연구원, 한국전자통신연구원, 한국천문연구원 등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소관 25개 출연연이 앞으로 지방분원을 만들 경우 타당성 조사에 앞서 분원 설치의 필요성을 입증하는 시범사업을 최소 30개월 이상 의무적으로 실시하도록 했다. 실증 연구 결과가 있어야 설립을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기존에는 연구계획서만 평가해 지방분원을 쉽게 세울 수 있었다.

지방분원의 신규 설치를 명시적으로 금지하지는 않았지만 과학기술계는 앞으로 지방분원의 추가 설치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30개월간의 시범사업을 거쳐 분원 설치를 추진할 만한 여력이 있는 출연연이 없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사실상 추가적인 지방분원 설치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설령 특정 출연연이 시범사업을 30개월 이상 실시한다고 하더라도 ‘강화된 타당성 조사’라는 산을 넘어야 한다. 지금까지는 출연연들이 지방분원을 유치하려는 지방자치단체 산하의 연구기관에 타당성 조사를 주로 맡겼다. 이 때문에 조사 결과의 신빙성을 놓고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정부는 타당성 조사의 전문성과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조사기관을 한국개발연구원(KDI)으로 일원화했다.

이번에 정부가 지침 개정안을 마련한 것은 2000년대 들어 출연연들이 지자체와 연계해 면밀한 조사와 연차별 투자계획도 없이 지방분원을 추진해왔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예산 낭비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정부는 보고 있다. 기재부에 따르면 전체 62개 지방분원 중 최근 10년간(2005∼2014년) 83.9%(52개)가 만들어졌다. 지금도 각 지자체가 지역구 정치인을 등에 업고 출연연의 지방분원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문제는 상당수 지방분원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지자체들이 성과를 올리기 위해 분원을 일단 유치만 해놓고 비용의 상당 부분을 중앙정부에 떠넘기고 있으며 인력도 제대로 확충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가 매년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2000억 원 이상이다. 이처럼 무리하게 분원을 만들어 기능을 쪼개다 보니 연구의 효율성도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앞으로 지자체와 출연연의 비용 부담을 대폭 늘려 ‘수익자 비용부담 원칙’을 강화할 방침이다. 지자체와 연구기관의 지방분원 건축비 부담을 기존 40%에서 60% 이상으로 확대하는 한편 본원의 정규직 인력활용 비율을 50%에서 60% 이상으로 상향 조정했다. 연구개발비 및 운영비도 지자체가 50% 이상을 부담하도록 했다. 또 설립된 지 5년 이상 된 지방분원들을 대상으로 종합평가를 실시해 부실 지방분원에 대해 기능 조정, 통폐합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다만 각 지자체의 반발이 거센 탓에 시행 과정에서 난항이 예상된다.

기재부 관계자는 “지방분원 설치처럼 국가 전체의 재정건전성을 무시하고 지역의 이익만 극대화하는 행위에 대해 강력한 조치를 취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세종=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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