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비 “2016년 리우올림픽까진 골프에 전념… 아이는 그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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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년 9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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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뚜기와 함께하는 오뚜기 인생]프로골퍼 박인비

박인비 선수가 올 시즌 마지막 메이저 대회인 에비앙 챔피언십에 출전하는 각오를 밝히고 있다. 경기 때 말과 표정 변화가 없는 모습과는 달리 인터뷰에서는 밝은 표정으로 자신의 생각을 시원시원하게 털어놓았다. 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박인비 선수가 올 시즌 마지막 메이저 대회인 에비앙 챔피언십에 출전하는 각오를 밝히고 있다. 경기 때 말과 표정 변화가 없는 모습과는 달리 인터뷰에서는 밝은 표정으로 자신의 생각을 시원시원하게 털어놓았다. 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올 시즌 최대 목표였던 그랜드슬램을 이뤘기 때문에 남은 대회는 부담 없이 경기에 임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시즌 마지막 메이저 대회인 만큼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다.”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프로골프 박인비 선수(27)는 에비앙 챔피언십 출전을 앞두고 “2012년 우승했던 코스에서 열리는 만큼 그때 경험을 잘 살려 경기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 같다”고 각오를 밝혔다. 에비앙 챔피언십은 10∼13일 프랑스 에비앙 리조트 골프클럽(파 71, 6453야드)에서 열린다.

박인비가 우승 의지를 보인 에비앙 챔피언십 트로피를 차지할 경우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의 5개 메이저 대회를 석권하는 ‘슈퍼 그랜드슬램’을 이뤄 골프 역사에 또다시 이름을 남기게 된다. 박인비는 이 대회가 메이저로 승격하기 전인 2012년 에비앙 마스터스에서 우승했다. 2013년 이 대회의 승격으로 메이저 대회가 5개로 늘면서 슈퍼 그랜드슬램이라는 용어가 생겼다.

박인비는 지난달 스코틀랜드 트럼프 턴베리 리조트에서 끝난 LPGA 투어 메이저 대회인 리코 브리티시오픈 마지막 라운드에서 7타를 줄이며 극적인 역전승으로 커리어 그랜드슬램의 위업을 달성했다. 커리어 그랜드슬램은 LPGA 투어 선수가 5개 메이저 대회 가운데 4개 대회에서 우승하는 것을 말한다. 박인비의 커리어 그랜드슬램은 아시아 최초이자 LPGA 투어 역사에서도 7번째 대기록이다. 이전까지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선수는 루이즈 서그스(1957년) 미키 라이트(1962년) 팻 브래들리(1986년) 줄리 잉크스터(1999년) 캐리 웹(2001년) 안니카 소렌스탐(2003년) 등 6명이었다. 박인비는 골프 전설의 명단에 12년 만에 이름을 추가했다.

2013년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한 박인비 선수를 어머니 김성자 씨와 아버지 박건규 씨가 축하하고 있다. 동아일보DB
2013년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한 박인비 선수를 어머니 김성자 씨와 아버지 박건규 씨가 축하하고 있다. 동아일보DB
올 시즌 이미 4승을 올린 박인비는 특히 메이저 대회에 강하다. 올해 열린 4개 메이저 대회에서 6월 KPMG 위민스 PGA 챔피언십에 이어 2차례 우승했다. 박인비가 2007년 LPGA 투어에 데뷔한 이후 거둔 통산 16차례 우승 가운데 7차례 우승을 메이저 대회에서 올렸다. 박인비는 평생 노력해도 한 번 우승하기 힘든 메이저 대회에서 여러 차례 우승해 ‘메이저 사냥꾼’이란 별명을 얻었다.

박인비는 데뷔 1년 뒤인 2008년 US여자오픈에서 최연소 우승을 차지하며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US여자오픈에서 2013년 또 우승했다. 올해 위민스 PGA 챔피언십으로 명칭을 바꾼 ‘LPGA 챔피언십’에서는 2013년부터 3년 연속 우승하는 금자탑을 세웠다. 지난해까지 크라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이라는 이름으로 열린 ‘ANA 인스퍼레이션’에서도 2013년 정상에 올랐다. 그리고 브리티시오픈에서 우승하면서 마침내 커리어 그랜드슬램의 대기록을 완성했다.

―에비앙 챔피언십은 남다른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지금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가 2012년 에비앙 마스터스다. 2008년 US오픈 이후 4년 동안 LPGA 투어에서 우승을 못하는 긴 슬럼프를 이겨내고 처음 얻은 값진 결실이라 더 특별하다. 또 스윙을 교정한 후 남편(남기협·34)과 함께 대회에 다니면서 1년 만에 거둔 우승이어서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이룰 것으로 예상했나.

“커리어 그랜드슬램은 어렵기 때문에 골프 인생의 마지막 목표가 될 것으로 생각했다. 이렇게 빨리 이룰 줄 몰랐다. 꼭 브리티시오픈에서 우승해야 돼 부담감이 있었다. 그래서 이겨낼 수 있을까 하고 내 자신을 의심했다. 어린 나이에 일찍 이뤄 홀가분하다. 브리티시오픈 우승은 하늘의 뜻도 있어야 되고 많은 게 따라야 한다.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이룬 원동력은….

“대회 한 주 전에 허리 부상이 생겼고 컨디션도 안 좋았다. 올해 우승은 어려워 내년을 기약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음을 비웠다. 말로는 쉽지만 실제로 마음을 비우는 건 정말 어렵다. 2013년에는 인내심을 갖고 끝까지 포기하면 안 된다는 점을, 작년에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경험에서 배웠다. 그래서 더 성숙하고 노련하게 경기에 임했고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않은 것 같다. 늘 힘이 돼 주는 가족과 후원사, 국민의 성원이 없었다면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커리어 그랜드슬램 달성 이전과 달라진 게 있나.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이루면 여한이 없고 더이상 욕심 없이 골프를 즐기며 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이루고 나니 이전과 마음이 같지 않다. 다음 목표를 찾게 된다. 올해는 브리티시오픈 우승 외에 정해놓은 목표가 없다.”

―다음 목표는 정했나.

“골프 역사에 내 이름을 남기는 일이다. 박인비 하면 위대한 업적을 쌓은 선수였다고 기억되고 싶다. 프로에 입문하면서부터 쭉 꿈꿔왔지만 너무 멀게 느껴져 목표라고 말하기조차 어려웠다. 세계 명예의 전당과 LPGA 명예의 전당, 두 곳에 입회하는 것이다. 골프 인생의 마지막 목표가 될 것 같다. 우승을 더 하고 귀감이 되는 선수생활도 해야 이룰 수 있다.”

―일부 해외 언론이 에비앙 챔피언십까지 우승해야 그랜드슬램이라는데….

“신경 쓰지 않는다. LPGA가 4개 메이저 대회 우승을 그랜드슬램이라고 했고, 나의 그랜드슬램을 공식 인정했다. 에비앙 마스터스가 메이저 대회였든 아니었든, 2012년 우승해 현존하는 메이저 대회의 트로피를 모두 집에 갖고 있다. 메이저 대회는 정해져 있는 게 아니다. 어떤 대회는 메이저였다가 빠지고, 아니었던 대회가 메이저가 되기도 한다. LPGA 역사를 보면 메이저 대회는 3∼5개 사이를 오갔다.”

―오늘의 박인비 선수를 있게 한 비결 3가지를 꼽는다면….

“세상은 혼자 사는 곳이 아니다. 행운이지만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나 여러 가지 도움을 받았다. 먼저 어릴 때 골프 소질을 발견하고 키워준 부모의 공이 크다. 퍼팅도, 샷도 좋은 감을 타고난 것 같다. 그리고 골프 인생에서 터닝 포인트를 만들어준 사람이 남편이다. 세 번째는 긍정적인 사고다. 한 타를 잃더라도 다음 홀에 가면 바로 잊는다. 선천적으로 타고났다. 골프는 마라톤처럼 긴 경기이므로 빨리 잊고 새로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

―2008년 US여자오픈 최연소 우승 이후 긴 슬럼프를 겪었는데….

“공을 치면 오른쪽으로 날아가 없어지거나 OB가 났다. 라운드마다 한두 번 그랬다. 경기가 잘될 때도 늘 불안한 마음이었다. 힘들고 괴로웠다. 자신감을 잃고 인생이 실패한 것 같았다. 비행기를 타는 것도, 매주 짐을 싸는 것도, 잔디도, 골프도 싫었다. 그때 포기했다면 지금의 기쁨도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2011년 프로골퍼 출신 남편을 만나 스윙을 교정한 후 제대로 된 스윙을 다시 하게 되면서 슬럼프에서 벗어났다. 집에서 가깝고 경쟁이 미국보다 덜한 일본 투어에서 몇 차례 우승한 것도 자신감 회복에 도움이 됐다.”

―스윙의 무엇을 바꿨나.

“복잡하고 기술적인 것이라 설명하는 게 쉽지 않다. 간단하게 말하면 릴리스와 팔로스루 동작을 바꿨다. 골프채가 빠져나가는 릴리스 동작이 180도 달라졌다. 스윙 교정 후 힘을 잘 쓰게 됐다. 힘이 공에 잘 전달된다. 또 정확도가 높아졌다. 거리가 조금 줄었지만 버디 기회가 훨씬 많아졌다. 스코어도 좋아졌다.”

―스윙 교정에 대한 불안감은 없었나.

“걱정 반, 기대 반이었다. 큰 변화였고, 교정에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더 떨어질 곳이 없는 바닥이었기에 어떤 변화든 받아들일 수 있었다. 또 코치가 사랑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믿고 맡길 수 있었다.”

―남편은 박인비 선수에게 어떤 사람인가.

“나에게 새로운 인생을 선물해 준 사람이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 중 한 명이고, 앞으로의 삶에서 부모님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할 사람이다. 함께할 시간이 기대되고 설렌다. 남편을 만난 뒤 세상에는 골프 외에도 할 일이 많고 다른 삶을 살 수도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자녀 계획은? 아이가 골프를 하겠다면….

“2016년 리우올림픽 때까지 아이를 가질 계획은 없다. 그 이후는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가능하면 선수 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아이를 낳고 싶지 않다. 엄마가 필요한 어린 시절에는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기 때문이다. 아이만 낳고 투어에 복귀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아이가 골프를 하겠다면 주저 없이 시킬 것이다. 골프 선수는 힘들고 어려운 순간도 많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며 박수도 받는 매력 있는 직업이다.”

―은퇴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나.

“은퇴는 미래 계획이다. 운동선수의 생명이 길지 않기 때문에 동료 선수들과도 종종 얘기하는 주제 중 하나다. 여러 번 생각해 봤다. 그 시기를 정하는 게 어려운 것 같다. 은퇴한다면 안정된 가정을 꾸리기 위해서일 것이다. 골프를 사랑하지만 결혼한 만큼 여자로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 삶도 놓치고 싶지 않다.”

―아직 국내 대회에서는 우승을 못했는데….

“어릴 때부터 미국에서 활동해 KLPGA 경험이 부족하다. 미국은 2, 3개 대회를 빼고 4라운드 경기인데 한국 대회는 대부분 3라운드 경기다. 3라운드는 스타트를 빨리 해야 하는데 나는 슬로 스타트여서 그렇지 못했다. LPGA에서 거둔 16승 중 3라운드 우승은 한 번밖에 없다. 1년에 한국 대회에 두 번 정도 출전한다. 아직 시간이 많다. 두드리다 보면 문이 열릴 것으로 생각한다.”

▼“상체-팔 힘빼고 헤드 무게 이용해야… 퍼터는 최대한 지면에 가깝게” ▼

박인비 ‘주말골퍼를
위한 팁’

“드라이버부터 퍼터까지 헤드의 무게를 잘 이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주말골퍼에게 도움이 될 팁을 알려 달라고 하자 박인비 선수는 “스윙이라는 맥락은 같다”며 “골프채를 이기며 때리는 게 아니라 그 무게로 지나가게 하는 것이 핵심 포인트”라고 말했다.

헤드 무게를 이용하려면 상체와 팔, 특히 손에 힘이 많이 안 들어가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립을 약하게 쥐어 골프채가 움직이는 것을 느끼면서 스윙해야 한다는 것.

세계 랭킹 1위인 박인비는 평균 타수 1위(69.425), 톱10 피시니 1위(63.0%), 상금 1위(224만3103달러), 올해의 선수 포인트 1위(237)에 올라 있다.
드라이버로 티샷을 멀리 치려면 임팩트 구간에서 힘을 공에 잘 전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헤드 무게를 느끼면서 스윙하면 아마추어 골퍼의 임팩트 때 힘이 분산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박인비는 “어프로치를 잘하려면 연습이 필요하다”며 “어느 크기로 스윙하면 어느 정도 나가는지 자신의 거리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야 자신감 있게 스윙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쇼트 게임을 늘 연습하는 프로도 항상 홀에 붙일 수 있는 건 아니다. 어려운 만큼 주말골퍼는 홀 주변에 갖다 놓으면 만족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인비는 ‘퍼트의 달인’, ‘컴퓨터 퍼트’ 등으로 불릴 만큼 퍼팅에 강하다. 퍼팅을 잘하는 비결을 묻자 “공이 홀에 안 들어갈 것으로 생각하면 프로도 안 들어간다”며 “들어가는 것으로 상상하고 자신감을 갖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공이 홀에 들어가는 길을 그려보고 그대로 치면 된다는 것. “퍼터를 높게 들면 흔들림이 많아지므로 지면에 가깝게 붙여 낮게 스트로크 해야 흔들림이 줄어 정확도가 높아진다”고 했다.

박인비는 “인 투 스트레이트 스트로크를 한다. 연습을 통해 그렇게 하는 것이 공을 더 잘 구르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프로암 때 만난 아마추어 골퍼들에게 스윙 하나 고쳐 가는 것보다 오늘을 즐기는 게 건강에 훨씬 도움이 된다고 얘기해요. 주말에 시간을 내 골프를 즐기러 가는 만큼 스코어에 연연해 스트레스 받지 말고 마음을 비우고 편하게 치면 결과가 더 좋아질 겁니다.”


김상철 전문기자 sckim007@donga.com
#박인비#그랜드슬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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