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커버스토리]쉿, 청약비법!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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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아파트 시장 ‘분양상담사의 세계’

지난달 14일 오전 9시 50분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마련된 ‘고덕숲 아이파크’ 본보기집 앞. 현대산업개발이 서울 강동구 고덕주공아파트를 재건축해 아파트 250채를 일반 분양하기 위해 마련한 곳이다. 광복절 사흘 연휴의 첫날인데도 아침부터 40여 명이 이날 처음 개관하는 본보기집을 둘러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입장을 기다리는 줄이 길어지자, 분양대행사인 와이낫플래닝 직원들이 개관 시간을 10분 앞당겨 문을 열었다. 방문객들은 상담 부스로 우르르 몰렸다. 이들 대부분은 아파트의 평형, 구조 등에 대한 기본 정보를 이미 줄줄 꿰고 있었다. 네 살배기 손자를 안은 딸, 남편과 함께 온 60대 여성은 상담석에 앉자마자 “25평(전용면적 기준 59m²)과 34평(전용 84m²) 중 어느 평형의 (청약) 당첨 확률이 높은지 알려 달라”고 했다. 분양대행사 관계자는 “집값이 오르고 청약 경쟁이 뜨겁다 보니 당첨 가능성부터 따지는 고객이 많다”고 귀띔했다.

아파트 분양 시장이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가장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연휴나 휴가철에도 나들이보다 새 집 구경에 나설 정도로 수요자들의 관심이 높다. 건설사들도 “물 들어올 때 배를 띄워야 한다”며 분양 물량을 쏟아 내고 있다.

4일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해 하반기(7∼12월) 전국에서 분양하는 1000채 이상 대단지 아파트는 13만4177채로 지난해 같은 기간(6만8553채)의 갑절 수준이다. 같은 기간 기준으로 비교해 보면 2000년 이후 나온 최다 물량이다.

휴가철인 올해 7월 전국 아파트의 청약경쟁률은 평균 17.2 대 1로 2007년 이후 7월 기준으로 가장 높았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아파트 청약 자격에 미달하는 지원자도 급증하고 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김태원 새누리당 의원실에 따르면 아파트 분양 부적격 당첨자는 2013년 3311건, 2014년 3929건에서 올해 8월 말 현재 5068건으로 늘었다.

건설사와 분양 관계자들은 전세난에 지친 실수요자들을 한 명이라도 더 잡기 위해 바삐 움직이고 있다. 홍보, 분양 상담, 본보기집 안내, 청약 등 분양 업무를 맡는 베테랑 상담사나 본보기집 도우미는 일손이 달려 몸값이 뛰어올랐다. 분양대행사 신화디앤엠의 이종진 대표는 “상담사의 실력에 따라 분양 성적이 달라지니 대행사들이 베테랑 상담사와 도우미 잡기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특공까지 편법 지원… 글로벌 금융위기이후 최대 대목” ▼

아파트 분양 열기가 고조되면서 베테랑 분양상담사의 몸값도 치솟고 있다. 베테랑 상담사들은 고객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상담 과정에서 실제로 계약을 할 ‘알짜 고객’을 가려내는 안목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14일 서울 강남구 ‘고덕숲 아이파크’ 본보기집에서 상담사들이 고객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 올해 아파트 분양 열기가 고조되면서 분양대행사들 사이에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대의 대목”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분양 현장마다 새집을 장만하려는 투자자와 모처럼 돌아온 고객을 잡으려는 건설업계 관계자들의 치열한 수 싸움이 벌어진다. 반면 최근 국내외 경제 여건이 나빠지면서 “막차를 탄 게 아니냐”는 두려움도 커지고 있다. 아파트 분양을 위해 본보기집 개관을 준비하는 분양대행사 직원들의 72시간을 동행 취재했다. 》

#1. 본보기집 개관 D-2

1순위부터 ‘특공 경쟁’까지


지난달 12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고덕숲 아이파크’ 본보기집 내부의 전화상담실. 본보기집 개관까지 이틀이나 남았지만 분양상담사들의 전화기는 쉬지 않고 울렸다. 분양가나 청약 자격 등에 대한 질문이 전화기 너머로부터 쏟아졌다.

전화상담사 A 씨는 전화기를 붙들고 1시간째 씨름 중이었다. 은행 직원의 잘못된 설명만 듣고 청약통장을 관리했다가 청약 1순위를 놓친 고객이었다. 그는 “올해 2월 말 청약제도가 바뀌며 1순위 경쟁이 치열해졌다”며 “1순위 자격을 갖추지 못한 고객들이 ‘자격이 안 돼도 일단 넣고 보겠다’고 억지를 쓰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4일 금융결제원에 따르면 전국의 청약통장 1순위 가입자 수는 7월 말 기준 1052만8603명이다. 1977년 청약통장이 도입된 이후 가장 많다. 1순위가 많다 보니 청약경쟁도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1순위 가입자보다 우선권이 주어지는 특별공급 당첨을 위한 ‘특공(특별공급)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특공은 1순위 청약에 앞서 무주택자, 장애인, 신혼부부 등만 따로 청약하는 제도다. 특공에서 떨어져도 1순위에 지원할 수 있기 때문에 지원자에게 특공은 ‘밑져야 본전’인 셈이다.

이 때문에 청약에 당첨되기 위해 특공 대상자의 명의를 빌려 편법 지원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홍성호 와이낫플래닝 부장은 “최근 편법으로 특공 청약을 하는 분들이 늘어 상담사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며 “나중에 자격 미달로 청약이 취소되면 실계약자가 줄어 추가로 계약자를 찾아야 하는 부담이 생긴다”고 말했다. 아파트 분양 부적격 당첨자는 올해 들어 8월까지만 해도 지난해 1년간 적발된 건수(3929건)의 1.28배인 5068건으로 증가했다.

#2. 본보기집 개관 D-1

몸값 치솟는 분양 상담사들


“자, 나를 고객이라고 생각하고 한번 꺾어 보세요(‘계약을 유도해 보라’는 뜻). 장황하게 설명하면 고객 다 떠납니다.”

지난달 13일 오후 5시경 텅 빈 본보기집에 강사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초보 상담사 4명이 강사로부터 일대일 교육을 받고 있었다. 17시간 후 본보기집이 개관되면 현장에 투입될 인력들이었다. 강사의 호통에 긴장한 상담사들은 수험생처럼 얼어붙었다.

한 분양대행사 관계자는 “아파트 분양이 늘어나면서 경험 많은 베테랑 상담사를 영입하는 게 쉽지 않아 단기 교육을 갓 마친 상담사들도 현장에 투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련한 상담사는 방문객의 표정이나 질문 한두 개만 듣고도 실제 거주하려는 수요자인지 가려낸다. 거주 목적이 아닌 투자자들은 시장이 침체되거나 여윳돈이 부족하면 입주 직전에 계약을 포기하기 때문에 상담사들의 기피 대상이다.

분양대행 업계에 따르면 경험 많은 상담사는 요즘 하루 일당이 20만 원까지 높아졌다. 지난해 여름(13만 원)보다 54% 올랐다. 실적이 좋은 상담사는 1억 원이 넘는 연 수입을 올리기도 한다. 18년 차인 한 상담사는 “작년 이맘때만 해도 건설사들이 미분양을 털어내려고 실적에 따른 인센티브를 세게 줬다”며 “요즘은 시장 상황이 나아져 실적 인센티브는 별로 없지만 일당은 높아졌다”고 말했다.

모처럼 살아난 부동산 경기로 분양대행사와 상담사들의 표정도 밝아졌다. 하지만 조만간 닥칠 미국의 금리 인상과 중국 경제의 불확실성 같은 대외 악재로 부동산 경기의 불씨가 빨리 꺼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상담사 B 씨(여)는 “부동산업자들은 ‘지금이 (분양) 막차를 탈 시기’라고 말한다”며 “경험상 올해가 분양시장의 마지막 성수기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3. 본보기집 개관 당일

젊은층과 노년층 실수요자 몰려


본보기집 문 닫는 시간이 1시간 남은 오후 5시경. 본보기집 아파트 내부를 둘러보는 고객들이 “분양 물량이 몇 채 남았느냐”는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조바심을 내는 고객은 더 늘었다. 상담에 응한 고영순 와이낫플래닝 차장은 “당첨 확률을 높이기 위해 가족 명의의 청약통장 2, 3개를 모두 동원해 일단 신청하고 보자는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묻지 마 청약’이 고조되는 분위기였다.

이날 본보기집에는 새집을 보러 온 20, 30대와 은퇴 이후 작은 평수의 아파트로 옮겨가려는 50, 60대 노년층이 많았다. 특히 노년층은 달라진 주거문화에 당황해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소형인 전용 59m²형 아파트 안방을 들여다본 60대 여성은 “전에 살던 집에서 쓰던 12자짜리 옷장을 둘 곳이 없다”며 투덜거렸다. ‘발코니 확장’이 대세가 됐지만 노년층엔 낯설었다. 발코니 없는 집을 둘러 본 70대 남성은 “고추장, 된장단지 놓을 곳이 없다” “빨래는 어디에 널어야 하나”라고 물었다.

건설사 직원들은 상담 내용과 태도 등을 관찰하며 고객의 분위기를 살폈다. 현대산업개발 관계자는 “첫날 분위기를 보면 사업 성공 여부를 대충 알 수 있다”며 “이번엔 전용 59m²형의 경쟁이 치열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인근에서 조만간 분양을 시작할 경쟁사 분양소장도 이곳을 찾았다. 그는 “여기가 성공해야 우리도 ‘바람’을 탈 수 있다”며 기대감과 걱정을 감추지 않았다.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남권우 인턴기자 고려대 영어영문학과 4학년
#청약#아파트#분양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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