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최고의 환대 속 韓中회담, 北核해법 진전은 없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3일 00시 00분


코멘트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어제 베이징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어떠한 행동에도 반대한다”고 밝혔다. 북핵 문제와 관련해 두 정상은 ‘한반도 비핵화’를 확인한 2005년의 9·19공동성명과 유엔 안보리 결의 이행을 강조하면서 6자회담의 조속한 재개에 의견을 모았다. 박 대통령은 중국의 전승절(3일) 열병식 참석이라는 정치 외교적 부담을 안고 어렵게 방중(訪中)했는데 시 주석은 한중일 3국 정상회의 개최 합의라는 선물만 내놓아 실망스럽다.

박 대통령의 방중에 앞서 청와대는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 문제 해결의 모멘텀을 만들겠다는 게 대통령의 생각”이라며 “특히 북핵과 관련해 두 정상이 과거보다 진전된 메시지를 내놓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런데도 이번 회담에서 ‘북핵 불용’이 아니라 ‘여러 차례 천명한 (한반도) 비핵화’만 언급되는 등 과거보다 진전된 메시지가 나오지 않은 것은 박근혜 정부의 외교 실패로 기록됨 직하다. ‘긴장 고조 반대’와 “한중은 세계평화 발전을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시 주석의 발언 역시 북의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에 대한 경고뿐 아니라 고고도미사일(THAAD·사드) 배치 등 미국의 대(對)중국 포위망에 한국이 참여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일 수 있다.

9·19공동성명이 거론된 것도 북핵을 해결하려면 미국이 북한과 관계 정상화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시 주석의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읽힌다. 중국은 북의 핵 포기를 약속한 9·19공동성명 직전에 미국이 방코델타아시아(BDA) 대북(對北) 금융제재를 내린 탓에 북핵 해결이 실패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시 주석이 한미 정상회담을 앞둔 박 대통령에게 ‘미국에 9·19공동성명 이행을 촉구하라’는 무언의 압력을 넣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한중 정상이 6자회담의 조속한 재개에 의견을 같이한 것은 평가할 만하지만 이 회담이 동력을 잃은 것은 북이 진정성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미일은 6자회담 재개의 전제로 북에 핵 활동 동결 등을 요구하고 있고, 북은 핵 포기에 관한 회담에는 응하지 않겠다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이 6자회담 재개라는 어려운 숙제를 안게 됐으니 미국을 어떻게 설득해낼지 걱정스럽다. 한반도 통일에 대해서 한국이 ‘조속한 평화 통일’을 강조한 반면 중국은 종전과 다름없이 ‘장래에 한민족에 의한 평화 통일’을 지지한 것도 우리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중국의 태도는 외세 즉 주한미군 없는 남북통일을 원한다는 북한 주장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번 회담에서 한국이 얻은 것이 있다면 2012년 이후 중단된 한중일 정상회의를 다시 열기로 한 것 정도다. 시 주석이 한국의 동북아평화협력 구상에 지지를 표명하고,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와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구상의 연계 가능성을 모색하기로 한 것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한국이 최대 교역국인 중국과 경제 분야에서뿐만 아니라 외교 안보 측면에서도 협력의 범위를 넓혀 가는 것 역시 바람직하다.

그러나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인 중국에 기대한 만큼 한국이 주도하는 통일에 대해 시 주석의 분명한 지지를 받아내지 못한 것은 아쉽고 안타깝다. ‘한반도 통일 문제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가 있었다고 청와대가 밝혔으니 박 대통령의 ‘통일 대박’에 대한 이심전심(以心傳心) 무신불립(無信不立)의 대화가 오갔기를 바랄 뿐이다. 대통령이 정상회담 직후 시 주석과 특별 오찬을 하는 등 각별한 의전과 예우를 받는다 해도 큰 틀의 지정학적 전략 없이 개인적 친분만으로 한국의 국익을 지키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방중의 큰 소득일 것이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