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심 ‘윈 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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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비 ‘커리어 그랜드슬램’]
박인비, 브리티시오픈 역전 드라마… 4R 초반 타수 못줄여도 평정심 유지
14번홀 이글퍼팅 이어 16번홀 버디
고진영에 3타 뒤지다 3타 차 승리… 대회 3수 딛고 LPGA 7번째 대기록
상금-올해의 선수 등 3관왕 유력

박인비(27)는 평소 구체적인 목표를 잘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올해 초 미국에 있던 박인비와 전화로 신년 인터뷰를 했을 때는 달랐다. “브리티시 여자 오픈에서 꼭 우승해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완성하고 싶다. 그게 바로 새해 소망이다.”

당시 그는 신혼집이 있는 라스베이거스에서 겨울 훈련에 집중하고 있었다. “여기서 훈련하는 이유는 브리티시 여자 오픈이 열리는 영국의 변덕스러운 날씨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여름인데도 섭씨 5도까지 떨어져 쌀쌀한 데다 바람까지 심해 미리 적응 훈련을 하기에는 최적이다.” 박인비는 옷을 두껍게 입으면 스윙을 제대로 못 한다고 했다. 추운 날씨에 대비해 두꺼운 옷을 입고도 제대로 스윙할 수 있도록 스웨터에 점퍼를 껴입고 스윙하고 있다는 얘기에서는 ‘꿈의 기록’을 향한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오랜 시간 준비해 온 박인비는 정작 이번 브리티시 여자 오픈을 앞두고 허리 디스크 증세 재발로 통증이 심해져 제대로 훈련할 수 없었다. 대회 개막 이틀 전 한국에서 응원을 간 박인비의 부모는 가족회의를 소집해 프로암대회 불참을 결정하고 전담 물리치료사와 컨디션 회복에 공을 들였다.

3라운드까지 선두에게 3타 뒤졌던 박인비는 3일 4라운드 초반까지 타수를 줄이지 못했다. ‘올해도 어려운 게 아닌가’ 생각했다는 박인비는 7∼10번 홀에서 4연속 버디를 낚았다. 이어 14번 홀(파5)에서 핀까지 190야드를 남긴 상황에서 6번 아이언으로 투온에 성공한 뒤 10m 장거리 이글 퍼팅을 성공시켰다. 16번 홀(파4)에서 다시 버디를 추가해 이 홀에서 세컨드 샷을 물에 빠뜨리며 더블보기를 한 고진영을 3타 차로 앞섰다.

번번이 뒷심 부족에 허덕였던 앞선 두 번의 브리티시 여자 오픈 때와는 달랐다. 박인비는 “그동안 지나친 부담감에 시달렸다. 올해는 오히려 마음을 비웠던 덕분에 잘 풀렸다”고 말했다.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은 “긴장한 골퍼 대부분은 스윙이 작고 빨라지며 퍼팅은 짧아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박인비는 긴박한 순간에도 전혀 변함이 없었다”고 보도했다.

박인비는 자신이 우승한 메이저 대회의 홀 깃발을 액자에 넣어 신혼집 거실 벽에 걸어 뒀다. 이제 브리티시 여자 오픈 깃발도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우승 상금 45만 달러(약 5억2000만 원)를 받은 박인비는 한 시즌 5개 메이저 대회 결과를 합산해 가장 좋은 성적을 낸 선수에게 주어지는 롤렉스 안니카 메이저 어워드 수상자로도 결정됐다. 상금(218만 달러), 올해의 선수(235점), 평균 타수(69.391타)에서 1위에 오른 그는 한국 선수 최초로 이 부문에서 3관왕에 오를 가능성이 커졌다. 앞으로의 목표에 대해 박인비는 “아직 생각해 본적 없다. 이 순간을 즐기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벌써부터 슈퍼 그랜드슬램(5대 메이저 대회 우승) 달성 여부가 걸린 다음 달 에비앙챔피언십과 내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을 향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대기록을 달성한 박인비에게 찬사도 쏟아졌다. 누리꾼들은 그의 이름을 빗대 ‘여왕벌’, ‘윈 비(Win Bee)’ ‘인비리버블(Inbee-lievable·믿을 수 없는)’ 등의 애칭을 붙였다. 미국 스포츠 전문 매체인 ESPN도 “여자 골프에서 박인비는 전설적인 위치에 올라섰음을 부인할 수 없다. 27세인 박인비는 7번의 메이저대회를 휩쓸었다. 그보다 어린 나이에 이만큼의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한 선수는 타이거 우즈와 미키 라이트밖에 없다”고 전했다. 이 외에도 “여자 골프의 새 장을 열었다”(미국 뉴욕타임스), “세계에서 가장 압도적인 여자 골퍼임을 다시 증명했다”(영국 텔레그래프), “박인비가 엘리트 그룹에 합류했다”(영국 BBC) 등 외신들의 보도가 이어졌다.

김종석 kjs0123@donga.com·김동욱 기자 
#박인비#커리어 그랜드슬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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