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남 감옥에 넣겠다 해” vs “장남보고 ‘너 누구냐, 나가’ 호통”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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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그룹 후계 분쟁]부친 둘러싸고 ‘진흙탕 폭로’

“차남 지지 안해”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2일 방송사에 보낸 영상에서 “차남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지지하지 않으며 한국롯데 회장에 임명한 적조차 없다”고 말하고 있다. SBS 화면 캡처
“차남 지지 안해”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2일 방송사에 보낸 영상에서 “차남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지지하지 않으며 한국롯데 회장에 임명한 적조차 없다”고 말하고 있다. SBS 화면 캡처
신동주 전 일본롯데 부회장이 2일 급기야 아버지인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영상까지 공개하는 ‘초강수’를 뒀다. 영상에 등장한 신격호 총괄회장은 차남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신동빈 회장 측은 아버지가 정상적 판단을 하지 못하는 상황을 이용해 장남이 미리 짠 각본으로 ‘언론 플레이’를 하고 있다며 강력 반발했다.

○ 지시서에서 육성, 이번엔 영상까지


신동주 전 부회장 측은 지난달 30일 신동빈 회장 등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진을 해임한다는 신격호 총괄회장 명의의 지시서(26일 작성)를 공개했다. 또 그날 신격호-신동주 부자 간 대화를 녹취한 다음 이튿날 음성파일을 언론에 보냈다. 이 녹취에서 신격호 총괄회장은 “(신동빈도) 그만두게 했잖아”라고 직접 말해 신동주 전 부회장 측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이틀 후 아버지의 영상까지 공개했다. 문서→음성→영상 순으로 공개 수위를 전략적으로 높여간 것이다.

공개된 자료들을 종합하면 신격호 총괄회장은 자신을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에서 물러나게 한 차남에게 크게 분노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육성 및 영상 공개는 신동주 전 부회장 측의 필요에 의해 추진된 것이란 분석이 많다. 현재 모든 계열사 이사진에서 배제된 신동주 전 부회장으로서는 아버지의 지지만이 유일한 ‘창’이기 때문이다. 수차례에 걸친 아버지의 지지 표명은 동생인 신동빈 회장과 세력 대결을 벌여야 할 일본 롯데홀딩스 주주총회에서도 유리하게 작용하리라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신동빈 회장과 아버지의 갈등 관계를 지속적으로 노출해 동생의 도덕적 문제점을 부각시킨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어 못해 죄송” 신동주 전 일본롯데 부회장(왼쪽)이 부인 조은주 씨와 함께 가진 방송사 인터뷰에서 한국어를 못한다는 비판에 대해 “죄송하다”는 사과의 뜻을 전하고 있다. SBS 화면 캡처
“한국어 못해 죄송” 신동주 전 일본롯데 부회장(왼쪽)이 부인 조은주 씨와 함께 가진 방송사 인터뷰에서 한국어를 못한다는 비판에 대해 “죄송하다”는 사과의 뜻을 전하고 있다. SBS 화면 캡처
○ 여전히 지속되는 건강 이상설

롯데그룹 관계자는 “신동주 전 부회장 측이 아버지를 이용해 과도한 여론몰이를 펼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롯데그룹은 2011년 2월 10일 신격호 회장을 총괄회장으로, 신동빈 부회장을 회장으로 각각 승진시켰다. 신격호 총괄회장의 재가 아래 이뤄진 인사였다. 그러나 신격호 총괄회장은 이날 “신동빈을 한국롯데 회장, 한국 롯데홀딩스 대표로 임명한 적이 없다”고 했다. 자신이 4년 반 전 직접 한 인사를 전면 부인한 것이다. 또 ‘일본 롯데홀딩스’를 ‘한국 롯데홀딩스’라고 잘못 말하고 짧은 분량의 글을 읽는 것도 힘겨워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여기에 신격호 총괄회장은 지난달 31일 롯데그룹 계열사 대표로부터 보고를 받는 자리에 동석했던 신동주 전 부회장을 알아보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건강 이상설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롯데그룹 고위 관계자는 “총괄회장이 임원들에게 누구냐고 물어본 적이 없다”며 “왜 장남을 못 알아볼까란 의문에 참석자 모두 당황했다”고 전했다.

신격호 총괄회장이 신동주 전 부회장에게 “나가라”고 고함까지 질렀지만 그는 10분가량 집무실에 더 머물렀다. 그러다 자리에서 일어나 휴대전화로 아버지의 사진을 두세 번 찍었고 프레시가 터지자 신격호 총괄회장이 놀라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사진은 신동주 전 부회장이 아버지의 건재함을 보여주기 위해 촬영 당일 언론에 공개했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2일 언론 인터뷰에서 신격호 총괄회장이 “보통이라면 창피해서 얼굴을 못 든다. (신동빈을) 교도소에 넣어라”고까지 말했다며 공격의 강도를 끌어올렸다.

○ 신동빈, 판세 뒤집을 수 있을까


신동빈 회장은 3일 입국과 동시에 경영인으로서의 행보를 강화하면서 그룹 회장으로서의 ‘법적 지위’를 재확인한다는 전략이다. 롯데그룹 측은 “일본에서 8일 만에 귀국하는 신동빈 회장은 정부, 금융권 및 협력업체 대표들을 만나 협조를 당부하는 한편 산적한 계열사 업무를 챙길 예정”이라며 “또 아버지를 찾아 인사드리고 출장 경과에 대한 설명도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신동빈 회장으로서는 쉽지만은 않은 싸움을 펼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신동주-신동빈 간 경쟁으로 보였던 이번 사태는 이미 신동빈 진영과 반(反)신동빈 진영 간 싸움으로 확대된 상태라는 증거가 속속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신동주 전 부회장과 누나 신영자 롯데재단 이사장, 육촌 형 신동인 롯데자이언츠 구단주 직무대행은 신동빈 회장이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에 오른 지난달 15일 서울 롯데호텔에 모여 신동주 전 부회장 체제로 롯데그룹을 재편하자는 데 합의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자리엔 롯데그룹 전직 임원 및 계열사 대표 10여 명도 참석했다.

한편 신격호 총괄회장의 아내 시게미쓰 하쓰코 씨는 1일 일본으로 돌아간 뒤 “동주, 동빈 둘 모두 사랑하는 아들이다”라고 말해 형제 간 다툼을 중재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김범석 bsism@donga.com·한우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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