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중현]건설사 CEO가 밥을 산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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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현 경제부장
박중현 경제부장
굴지의 건설업체 최고경영자(CEO) A 사장은 건설업체 종사자들이 드라마, 영화 등에서 부정적으로만 묘사되는 데 평소 불만이 컸다. 그래서 지난해 초에 작심하고 드라마 PD와 작가들을 모아 식사를 대접하며 정중히 부탁했다.

“건설업체들이 1970년대부터 중동에 나가 외화를 벌어들이고, 경부고속도로 등을 세워 사회, 경제 발전에 기여한 거 잘 아시죠. 앞으로 드라마 만들 때 건설업체의 긍정적인 측면을 많이 부각해 주십시오.”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에이, 그러면 아무도 안 봐요.” 일반인의 머릿속에 부정적인 이미지로 뿌리 깊게 각인된 건설업체를 긍정적으로 표현해 봐야 득 될 게 없다는 뜻이었다. A 사장은 이 경험담을 털어놓으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잘생긴 건축사가 주인공인 ‘건축학개론’ 등 드문 예외를 빼면 건설업체는 대부분 정치권과 재벌의 비자금 원천 등으로 대중매체에서 그려져 왔다. 4대강 사업으로 대표되는 이명박 정부 시절 대형 토목공사에서 이름 있는 건설업체들이 빠짐없이 담합에 참여한 사실이 드러나 이런 이미지는 더욱 강화됐다.

지난 정부 때 담합으로 이들이 돈을 얼마나 벌었는지는 파악하기 어렵다. 하지만 한 건설사 대표는 이렇게 설명했다. “당시 정부는 대형업체들은 입찰에 무조건 참여하라고 압박했습니다. 현대건설 사장을 지낸 이명박 대통령이 4대강 사업 등의 공사대금을 70% 수준으로 후려치라고 지시했다는 소문이 돌았어요. ‘위장된 대운하 사업’이란 비판여론 때문에 재정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였겠죠. 그래서 ‘아는 선수가 더한다’는 말이 나왔어요.” 정권의 압력으로 입찰에 참여했고, 손해를 줄이려고 어쩔 수 없이 담합했다는 주장이다.

건설업체들은 담합 사실을 순순히 인정한다. 78개 건설사, 상위 100개 중 53개 업체가 공정거래위원회에 담합 혐의로 적발돼 과징금 등 처벌을 받았다. 과징금 규모만 총 1조3000억 원에 육박한다. 설사 돈을 벌었더라도 대부분 또는 그 이상 토해 냈다는 뜻이다.

게다가 진짜 폭탄은 따로 있다. 이들은 몇 년간 대형 국책공사에 입찰할 수 없다. 소송을 통해 미루고 있지만 이르면 연말, 늦어도 내년 상반기 안에 원전, 철도 등 국책사업 입찰에서 대형 건설업체가 완전히 배제되고 외국 업체와 수준 미달 업체만 참여하는 ‘입찰 대란’이 벌어진다는 게 기정사실이다. 해외공사 수주도 불가능해진다. 이미 세계 각국의 대형 공사를 따내려는 한국 업체들이 ‘공사를 끝까지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을 발주처에 소명하느라 쩔쩔매고 있고, 일부는 아예 수주를 포기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광복 70주년 특별사면 방침을 밝혔다. 현 정부의 마지막 대규모 사면일 공산이 크다. 몇몇 그룹 총수들에게 관심이 집중돼 가려져 있지만 사면 여부가 경제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곳이 건설업계다. 대통령의 의지대로 ‘제2의 중동 붐’을 일으키고, 국내외에서 청년 일자리를 더 만들어야 하는 것도 이들이다.

건설업체 사장이 밥 한 번 산다고 이미지가 달라지지 않듯 사면 한 번 받는다고 건설업체들을 보는 사회의 시각이 크게 나아질 리 없다. 사회에 기여하는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특단의 표현이 필요하다. 이후 단 한 번이라도 담합 사실이 드러나면 면허를 취소하는 등 강력한 근절 조치도 뒤따라야 한다. 다만 이런 상황을 건설업체 혼자 만든 게 아니듯 해결도 혼자 할 순 없다. 아무리 지난 정부가 남긴 불쾌한 유산이라 해도 정치가 만든 문제는 결국 정치로 풀어야 한다.

박중현 경제부장 sanjuck@donga.com
#건설업체#특별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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