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임 타임은 세이프” 심판도 이 관례 따르는게 맞을까?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7일 17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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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임 타임 세이프”

‘빨간 장갑의 마술사’ 김동엽 전 감독(1938~1997)은 TV 해설위원 시절 1루에서 접전이 벌어지면 이렇게 외치곤 했습니다. 야수가 던진 공과 타자 주자가 거의 동시에 1루에 도착하면 세이프로 판정해야 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김 감독 생각만 그런 건 아닙니다. 영어에도 “Tie goes to the runner”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동(同) 타임’일 때는 주자에게 유리하게, 즉 세이프를 선언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관례적으로는 세이프가 맞다는 겁니다. 심판도 이 관례를 따르는 게 옳은 걸까요?

1루는 특별합니다. 1루 베이스가 타자에게 ‘살았다’는 희망의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심판 합의판정 결과를 봐도 그렇습니다. 7일 경기 전까지 올 시즌 프로야구에서 합의판정을 실시한 건 모두 204번. 이 중 92번(45.1%)이 1루에서 주자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를 따지는 내용이었습니다. 득점 성패 여부를 가리는 홈 플레이트 합의 판정(19번)보다도 5배 가까이 많습니다.

1루심은 이 중요한 판정을 어떻게 내릴까요? 눈과 귀로 ‘멀티태스킹’을 한다는 게 야구팬들의 상식입니다. 눈으로는 타자 주자가 베이스를 밟는 걸 보고 귀로는 공이 1루수 미트에 들어오는 소리를 듣는다는 겁니다. 이렇게 판정하는 게 맞으려면 눈과 귀가 똑같은 속도로 외부 자극을 처리해야 하는 게 당연한 일.

그런데 미국 콜로라도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람은 빛보다 소리에 빨리 반응합니다. 반응 시간이 소리는 평균 0.26초인 반면 빛은 0.29초입니다. 결국 심판이 눈과 귀를 동원해 공의 소리와 발의 모습을 동타임이라고 느꼈다면 실제로는 100분의 3초 발이 빨랐던 게 됩니다. 그래서 동 타임 때는 세이프를 선언하는 게 ‘과학적’입니다.

하지만 상식과 달리 1루심은 이렇게 판정하지 않습니다. 도상훈 한국야구위원회(KBO) 심판위원장은 “내가 처음 심판 교육을 받을 때 그렇게 하라고 배웠던 건 맞다. 하지만 프로야구는 관중의 함성 소리가 크기 때문에 이렇게 판정하는 게 불가능하다”며 “요즘 심판들은 1루수와 타자주자 모두 한 눈에 잘 볼 수 있게 자리 잡는 연습을 많이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들어온 것으로 심판이 느꼈다고 아무 판정도 내리지 않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순간적인 직관에 의존해 판정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규칙을 잘 보면 이건 직관 문제도 아닙니다. 야구 규칙 6.05(j)에는 “타자가 페어 볼을 친 뒤 1루에 도착하기 전에 (볼이) 그 신체나 1루에 태그 됐을 때” 타자 주자는 아웃을 당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혹시 일본이나 미국은 규칙이 다르지 않을까 하고 찾아 봤지만 역시나 두 나라 규칙 모두 ‘前に(먼저)’, ‘before(앞서)’라는 표현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러니 동시에 들어왔다면 세이프를 선언하는 게 규칙에 맞는 겁니다.

그런데도 “뛰는 것보다 수비가 훨씬 어려운 일이라 동시에 들어오면 아웃을 주는 게 맞다”고 주장하는 해설위원도 계십니다. 김동엽 전 감독은 생전에 기자들에게 “앞으로는 나한테 해설자가 아니라 해설가라고 해야 돼. 해설 못하는 놈들은 해설자(解說者)고 잘하는 사람은 해설가(解說家)라고 하는 거야”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여전히 기가(記家)가 되지 못한 기자(記者)지만 이런 해설자들에게는 외쳐주고 싶습니다. “세임 타임은 세이프”라고.

황규인 기자 페이스북 fb.com/bigki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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