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석 기자의 野生&野性]서식지 연구용 추적기… 신호 따라가니 뱀탕집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4일 03시 00분


코멘트

동화 속과는 다른 구렁이의 세계

한때 시골 농가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던 구렁이가 이제는 멸종위기 동물이 됐다. 구렁이가 몸에 좋다는 그릇된 보신문화 탓에 사람들이 닥치는 대로 포획했기 때문이다. 구렁이는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위기종 2급이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제공
한때 시골 농가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던 구렁이가 이제는 멸종위기 동물이 됐다. 구렁이가 몸에 좋다는 그릇된 보신문화 탓에 사람들이 닥치는 대로 포획했기 때문이다. 구렁이는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위기종 2급이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제공
“구렁이 담 넘어가듯 상황을 모면하는 데 급급했다.”

얼마 전 새정치민주연합은 황교안 국무총리의 인사청문회 답변 태도를 이렇게 비판했다. ‘구렁이 담 넘어가듯’ 한다는 건 일을 분명하고 깔끔하게 처리하지 않고 슬그머니 얼버무리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괴(고양이) 다리에 기름 바르듯’ 한다거나 ‘메기 등에 뱀장어 넘어가듯’ 한다는 말도 같은 의미다. 황 총리가 병역면제, 세금 체납, 전관예우 등 자신과 관련된 여러 의혹에 대해 명쾌하게 해명하지 않았다는 게 새정치연합의 얘기였다.

꼭 구렁이가 아니더라도 담을 타고 넘는 뱀은 대개 구렁이와 비슷한 모습이다. 뱀은 가늘고 긴 배비늘로 지면을 밀어내면서 앞으로 이동하는 원리상 움직임이 대체로 비슷할 수밖에 없다. 그럼 왜 하고많은 뱀 중에 ‘구렁이 담 넘어가듯’일까.

그건 예전부터 담 위의 구렁이가 눈에 많이 띄었기 때문이다. 구렁이는 농가 부근에 많이 살았다. 먹잇감인 쥐가 많았기 때문이다. 구렁이의 영어 이름이 ‘랫스네이크(쥐뱀)’인 것도 쥐를 많이 잡아먹어서다. 야생 구렁이는 1년에 쥐 100마리가량을 잡아먹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구렁이는 뱀 특유의 후각기관을 이용해 먹잇감인 쥐 냄새를 맡는다. 뱀은 코 말고도 입천장 양쪽에 야콥슨이라는 후각기관이 있다. 뱀은 혀를 날름거리면서 모아들인 냄새를 이 야콥슨 기관으로 보내고, 여기서 냄새를 맡아 주변에 먹잇감이 있는지를 확인한다. 뱀의 혀끝이 두 갈래로 갈라져 있는 것도 야콥슨 기관이 입천장 양쪽에 하나씩, 모두 2개가 있기 때문이다. 구렁이는 독이 없는 뱀이다. 그래서 일단 쥐를 입으로 물면 재빨리 먹이의 몸통을 친친 감아 졸라 죽인다.

쥐는 쌓아둔 곡물을 축내는 동물이다. 이런 쥐를 많이 잡아먹는 구렁이를 예전 사람들은 ‘업’(집 안의 살림을 보호하고 보살펴준다는 동물)으로 모셨다. 구렁이는 농가 부근 중에서도 특히 돌담 틈에 주로 살았다. 변온동물인 구렁이는 날이 더워 체온이 올라가면 돌담 틈새로 기어들었다. 체온이 떨어지면 햇볕을 받아 따뜻해진 돌담 위에서 체온을 끌어올렸다. 담 넘는 구렁이가 사람들 눈에 자주 띈 이유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산하의 국립공원연구원 송재영 연구위원은 “밤에 뱀들이 고속도로에서 로드킬을 많이 당하는 것도 낮 동안 데워진 도로 위에서 체온을 높이다 사고를 당하는 것”이라며 “단순히 도로를 건너려다 당하는 사고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멸종 위기 구렁이

자주 보이던 구렁이가 이제는 멸종 위기에 놓였다. 구렁이는 ‘야생생물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 정한 멸종위기종(2급)이다. 강원 치악산 자락에선 멸종 위기에 처한 구렁이 복원사업이 진행 중이다. 연간 수억 원씩 정부 예산이 들어가는 반달가슴곰, 여우, 산양 복원과 달리 구렁이는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자체 사업비의 일부를 쪼개 복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구렁이 복원은 치악산국립공원사무소 동식물보호단의 김종원 씨가 전담하다시피 하고 있다. 복원증식장 내 구렁이는 김 씨가 사다 넣어주는 냉동 흰쥐를 먹는다고 한다. 다 자란 어른 구렁이는 대략 2주일에 큰 흰쥐 5마리 정도를 먹는다. 이 정도 먹고 나면 짧게는 보름, 길면 한 달 동안 먹지 않고도 살 수 있다. 물만 먹는다. 구렁이는 변온동물이어서 체온 유지에 내부 에너지를 거의 쓰지 않는다. 그래서 자주 먹지 않아도 된다. 믿기 힘든 얘기지만 1년간 물만 먹고 버티는 뱀도 있다고 한다.

구렁이가 쥐 한 마리를 완전히 소화시키는 데는 대략 2∼4일이 걸린다. 체온이 25∼32도 정도일 때 소화력이 가장 왕성하다. 체온이 20도 이하로 내려가면 소화 속도가 더뎌진다. 구렁이가 쥐나 개구리, 새 같은 먹이를 삼켰다가 다시 토해내는 경우가 가끔 있다. 체온이 너무 떨어져 도저히 소화하기 힘들겠다 싶으면 먹이를 토해낸다.

‘동물의 왕국’ 같은 TV 프로그램을 보면 종종 구렁이가 자기 머리통보다 큰 쥐나 개구리를 통째로 삼키는 장면이 나온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구렁이를 포함한 뱀은 위턱과 아래턱의 분리가 가능하다. 위턱과 아래턱의 양끝을 잇는 작은 뼈, 방골(方骨)이 붙었다 떨어졌다 하기 때문. 방골이 떨어지면 붙어있을 때보다 입을 훨씬 더 크게 벌릴 수 있다.

뱀은 또 아래턱의 좌우가 뼈가 아닌 인대로 연결돼 있다. 왼쪽 턱과 오른쪽 턱이 따로 움직일 수 있다는 얘기다. 자기 머리보다 훨씬 큰 먹잇감을 삼킬 수 있는 건 좌우 턱이 번갈아 움직이면서 먹이를 목구멍 쪽으로 밀어 넣기 때문이다. 구렁이는 자기 머리보다 4배 이상 큰 먹이도 삼킨다. 구렁이는 소화력이 워낙 좋아 먹잇감인 쥐의 이빨이나 뼈, 새의 부리까지 다 소화시킨다. 그래서 구렁이 배설물에는 대부분 털 같은 것만 보인다.

혀를 날름거리는 구렁이. 구렁이가 혀를 날름거리는 이유는 주변 냄새를 모아 입천장에 있는 후각기관인 야콥슨 기관으로 보내기 위해서다(위 사진). 알을 깨고 나오는 구렁이. 구렁이는 한번에 대략 12∼25개의 알을 낳는다(아래 왼쪽 사진). 개구리를 잡아먹는 구렁이. 구렁이는 아래턱과 위턱의 분리가 가능해 자기 머리통보다 큰 먹잇감도 삼킬 수 있다(아래 오른쪽 사진). 국립공원관리공단 제공
혀를 날름거리는 구렁이. 구렁이가 혀를 날름거리는 이유는 주변 냄새를 모아 입천장에 있는 후각기관인 야콥슨 기관으로 보내기 위해서다(위 사진). 알을 깨고 나오는 구렁이. 구렁이는 한번에 대략 12∼25개의 알을 낳는다(아래 왼쪽 사진). 개구리를 잡아먹는 구렁이. 구렁이는 아래턱과 위턱의 분리가 가능해 자기 머리통보다 큰 먹잇감도 삼킬 수 있다(아래 오른쪽 사진). 국립공원관리공단 제공
구렁이 천적(天敵)은?

이렇게 소화력이 좋은데…. 물만 먹고도 한 달씩 버틸 수 있다는데…. 어쩌다 구렁이는 멸종될 처지에 놓였을까. 구렁이 개체수가 감소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적합한 서식지가 예전에 비해 크게 줄었다. 요즘은 농가도 대부분 현대식 건물이다. 틈 있는 돌담이나 처마가 있는 집이 드물다. 1960, 70년대 전국적으로 쥐잡기 운동이 벌어지면서 먹이원인 쥐가 많이 줄어든 것도 구렁이 개체수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 쥐약 먹은 쥐를 먹고 죽은 구렁이도 많다.

하지만 구렁이가 멸종 위기에 내몰릴 만큼 개체수가 급감한 건 그릇된 보신문화 탓이다. 구렁이가 몸에 좋다고 믿는 사람들이 닥치는 대로 잡아먹었기 때문이다. 요즘도 인터넷에서 뱀 생태를 연구하는 곳인 것처럼 이름을 달고 있는 사이트를 열어 보면 땅꾼 집을 소개하는 사이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일도 있었다. 복원사업 과정에 구렁이의 서식지 내 활동 영역을 확인하기 위해 위치추적용 발신기를 구렁이 몸에 심었다. 그런데 하루는 서식지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서 신호가 잡히더라는 것. 그것도 산속이 아닌 시내에서. 가봤더니 뱀탕집이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왜 뱀이 몸에 좋다고 여길까. 이런저런 이유가 있겠지만 아무래도 뱀의 생식기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뱀 수컷은 생식기가 2개다. 예전의 시골 장터에서 뱀장수들이 호객할 때도 이 부분을 강조했다. 뱀은 생식기가 2개라 정력이 더 세다는 점을 부각한 것. 하지만 이는 믿거나 말거나 식의 근거는 없는 얘기다.

환경부가 2004년 야생 구렁이를 포획하는 땅꾼뿐 아니라 구렁이탕이나 구렁이술을 먹는 사람들까지 처벌하는 법을 만들자 땅꾼들이 환경부로 몰려가 시위를 하기도 했다. 2009∼2013년 5년간 밀렵동물 개체수를 보면 구렁이와 칠점사 등을 포함한 뱀(5842마리)이 제일 많다. 두 번째로 많은 고라니(335마리)의 17배다.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의 시골 농가나 논두렁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던 구렁이가 이제는 민간인출입통제구역 등에서만 주로 산다. 구렁이 천적은 사람이다.

먹구렁이, 황구렁이, 능구렁이

‘구렁이’란 이름이 붙은 뱀은 여럿 있다. 먹구렁이 황구렁이가 있고 능구렁이도 있다. 비단구렁이도 있다. 우리가 보통 구렁이라고 부르는 건 먹구렁이나 황구렁이다. 먹구렁이와 황구렁이는 같은 구렁이 종(種)이다. 먹구렁이는 색깔이 검고 황구렁이는 누런빛이 돈다. 먹구렁이는 주로 야산에 살고 황구렁이는 인가 부근에서 주로 살았다. 같은 구렁이 종에 속하는 뱀을 굳이 색깔에 따라 좀 더 세분해 이름을 따로 붙이자면 먹구렁이 황구렁이란 얘기다. 국립생물자원관 이정현 연구원은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먹구렁이와 황구렁이는 18가지 외부 형태에 있어 둘 사이에 뚜렷한 차이를 보이지 않고 유전적 변이도 매우 낮다”며 “그렇기 때문에 색깔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둘을 따로 분류하는 건 별 의미가 없고 구렁이 단일 종으로 취급하는 게 타당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능구렁이는 그렇지 않다. 능구렁이는 구렁이와 종 자체가 다르다. 능구렁이는 생물 분류 단계상 종뿐 아니라 속 단계에서부터 구렁이와는 다른 뱀이다. 구렁이하고는 종 자체가 다른데 왜 능구렁이 이름에 구렁이가 끼었을까.

구렁이는 우리나라에 사는 뱀 중 가장 큰 뱀이다. 보통 1∼1.2m까지 자란다. 큰 건 2m까지 자라는 것도 있다. 구렁이라는 이름도 ‘굵은이’에서 ‘굴근이-굴렁이-구렁이’가 됐다는 얘기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예전부터 좀 크고 굵다 싶은 뱀한테는 무슨무슨 구렁이라는 이름을 갖다 붙였다고 한다. 우리가 ‘그물무늬비단구렁이’라고 부르는 동남아시아 서식 뱀도 남미의 아나콘다와 함께 지구상에서 가장 큰 뱀 중 하나로 꼽힌다. 큰 건 10m 정도 된다. 하지만 그물무늬비단구렁이도 구렁이와는 종이 완전히 다른 뱀이다.

그럼 능구렁이의 ‘능’은 무슨 의미일까. 태도가 음흉하고 능청스러운 데가 있다는 의미의 ‘능글맞다’라고 할 때의 그 ‘능’이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인터넷에 돌아다니는데, 능구렁이의 ‘능’은 그런 뜻이 아니다. 붉다는 의미다. ‘능금’의 능과 같은 어원으로 여겨진다. 능구렁이의 영어 이름(레드밴디드오드투스스네이크·red banded odd-tooth snake)에도 붉다는 의미의 레드(red)가 들어 있다. 능구렁이를 실제로 보면 등에 붉은 띠가 가득하다.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구렁이#멸종위기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