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부형권]반기문 총장 남은 1년은 선택과 집중의 시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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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형권 특파원
부형권 특파원
70억 지구촌의 수많은 난제를 해결해야 하는 유엔 사무총장은 ‘세상에서 가장 불가능한 직업(the most impossible job)’으로 표현된다. 반기문 사무총장 측근들은 “남다른 열정과 성실함을 지닌 반 총장이야말로 그 불가능한 직업의 최적임자”라고 칭송한다. 그를 유엔에서 보좌했던 한 한국 외교관은 “100m 달리기 속도로 42.195km 마라톤을 완주하는 분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고 저서에 썼다.

그 근거의 하나로 제시한 반 총장의 1년 일정(2012년 기준)은 그야말로 살인적이다. 항공 마일리지가 약 29만625마일(약 46만7715km). 지구를 열 바퀴 넘게 돈 셈이다. 각종 면담이 1727회, 기자회견 인터뷰 등 언론 관련 일정이 172회, 유엔 회원국 정상과의 공식 전화통화만 270회.

그런 반 총장이 해외 언론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어온 비판은 ‘어디에도 없는 사람(nowhere man)’ ‘보이지 않는 사람(invisible man)’이었다. 역대 유엔 수장 중 가장 성실하고 부지런한 반 총장이 ‘존재감 없다’는 지적을 받는 역설적 상황이 유엔을 출입하는 기자에겐 늘 미스터리였다.

이에 대해 몇몇 유엔 소식통은 “결국 ‘선택과 집중의 문제’다. 세계교육포럼 참석과 개성공단 방문을 함께 추진한 이번 방한 일정(18∼22일)도 두 마리 토끼를 열심히 쫓았지만 하나도 제대로 잡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했다. 존재감은 일정이 아니라, 성과에서 확인된다는 얘기였다. 뉴욕의 한 인사는 “방북 계획 발표와 함께 바로 터져 나온 방북 무산 뉴스가 스스로 수없이 강조해온 교육의 중요성을 다 덮어버린 셈”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모든 사람에게 잘하고, 모든 일을 잘하려는 반기문 스타일’은 반 총장이 의도하든, 하지 않든 자기모순적 상황을 계속 만들고 있다. “국내 정치에 관심 없으니 대선주자 여론조사에서 내 이름을 빼 달라”고까지 말하면서도 뉴욕을 방문하는 정치인 등 국내 주요인사는 거의 다 만나준다. 고향 후배들은 ‘정기적으로 만나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만나고, 한국으로부터의 각종 영상 메시지 요청도 뿌리치지 못한다. 뉴욕에서 ‘반 총장과 사적인 시간을 함께 보낸 각별한 사이’임을 자랑하는 재미동포도 여럿 봤다.

반 총장 임기는 이제 1년여밖에 남지 않았다. 모두에게 싫은 소리를 듣지 않고 이런저런 안티(반대) 세력을 만들지 않기 위해 애쓰기에는 남은 시간이 길지 않다. ‘성공한 한국인 유엔 사무총장’으로 역사에 남기 위해서는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누구를 만나야 할지 ‘선택과 집중’이 중요해 보인다. 딴생각이 없으면 말이다.

뉴욕=부형권 특파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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