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45분동안 45차례 박수 받아… “日 발빠른 대미외교, 韓 부담 커져”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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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訪美와 한국]‘아베 美의회 연설’ 美언론 - 전문가 반응

“신사 숙녀 여러분. 오늘 이 의사당 갤러리에는 로런스 스노든 미 해병대 중장이 앉아 계십니다.”

지난달 29일 미 의회 상·하원 합동연설에 나선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연설 초반 이렇게 말하며 갑자기 손을 들어 청중석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한 백발의 노인이 앉아 있었다. 순간 의사당 안을 가득 메웠던 사람들의 눈은 모두 노인에게로 향했고 이어 약속이나 한 듯 우레와 같은 기립박수가 터져 나왔다.

주인공은 지금으로부터 70년 전인 1945년 미군 중대를 이끌고 일본 이오(硫黃) 섬에 상륙했던 참전용사 스노든 중장이었다.

이오지마(硫黃島) 전투는 미국으로서는 상처가 깊은 전쟁이다. 태평양전쟁 전투 중에서 유일하게 미군이 일본군에 패한 전투이며 사상자도 많았다. 아베 총리가 이날 연설에서 미국에 뼈아픈 과거사인 이오지마 전투를 언급하며 여기에 참전했던 미군까지 섭외해 등장시킨 것은 미국에 대한 극진한 사과의 의미와 함께 일본은 과거사를 극복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청중의 반응이 뜨거워지자 직전까지만 해도 다소 긴장했던 표정이 역력했던 아베 총리의 얼굴이 환해졌다. 이날 오전 11시 17분부터 약 45분 동안 진행된 총리의 미 상하 양원 합동연설에서는 이 박수를 포함해 모두 45번의 박수갈채가 쏟아져 나왔다. 그 가운데 10여 건이 전원 기립박수였다. 참고로 3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경우 22번의 기립박수를 받았고 2013년 5월 박근혜 대통령은 6차례의 기립박수를 포함해 40여 차례 박수를 받았다.

연설이 후반부에 접어들어 다소 지루하다고 느껴질 무렵 아베 총리가 “우리(일본)는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rebalancing) 노력을 처음부터 끝까지 전적으로(first, last, and throughout) 지지할 것”이라고 말하며 미국의 글로벌 동반자로서 책임을 다하겠다고 다짐하자 다시 한 번 큰 기립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동맹관계를 확인한 아베 총리의 미 의회 연설에 대해 미국 언론은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과거사 사과 여부보다는 미일 동맹의 격상이나 미국의 주요 관심사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타결 여부에 더 초점을 맞추는 분위기였다.

워싱턴포스트(WP)는 ‘아베 총리가 일본을 위해 더 적극적인 역할을 천명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아베 연설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수준으로 미일 동맹이 격상될 것임을 예고한다”고 강조했다. 로이터통신은 “자신(아베 총리)을 향한 비판론자들을 만족시키지는 못할 것으로 보이지만, 보수주의자로서 미국과 일본의 군사동맹 등 미래에 초점을 맞추는 데 연설의 무게중심을 두었다”고 평가했다.

CNN은 “아베 총리가 의회 연설에서 ‘강한 일본’을 밀어붙였다(push)”고 표현한 기사에서 “미국의 글로벌 전략과 아시아 내 안보 질서에 일본이 더욱 깊이 관여하겠다는 비전을 대내외에 천명했다”고 평가했다.

미국 내 전문가들도 연설에 대해 비교적 긍정적 평가를 내놓았다. 제럴드 커티스 미 컬럼비아대 정치학과 교수는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방미와 의회 연설로 미일 군사동맹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해진 계기가 됐다. 미 정부는 특히 이 점에 주목하고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아예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비판적인 논평을 한 전문가도 있었다. 한미외교전문가 칼 프리도프 시카고국제문제협회 연구원은 WSJ 4월 30일 자에 기고한 글에서 “발 빠르고 능수능란한 아베 총리의 외교술이 박근혜 대통령을 압박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6월 미국에서 열릴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한일 관계 개선을 촉구할 것에 대비해야 한다”며 “아베 총리의 진취적 태도와는 달리 박 대통령은 한일 관계를 국익에 대한 문제보다는 개인적 이슈로 여기고 있다는 인식도 있다”는 식으로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이어 “박 대통령이 한일 정상회담을 계속 거부한다면 아베 총리의 역사관 때문이 아니라 한국의 고집이 (한일 관계 개선에) 문제라는 인식이 더 커질 것”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아베 총리가 과거사 문제에 대해 사과하지 않은 것에 대해 비판하는 시각도 많았다. 에드 로이스 하원 외교위원장은 “아베 총리가 동아시아 외교관계를 악화시키는 과거사 문제를 적절하게 다룰 기회를 활용하지 못해 매우 실망스러웠다”고 강조했다. 의회 전문매체인 ‘더 힐’은 “제2차 세계대전 위안부에 대한 사과가 부족했다”고 했다.

워싱턴=신석호 kyle@donga.com·이승헌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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