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숙’ 삼성-현대, 이젠 스타 주고받는 사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17일 03시 00분


코멘트

과거 농구-배구 숙명의 맞수 유명…그룹 오너 관심 겹쳐 대리전 양상도

최근 순혈주의 무너지는 추세
삼성 남녀농구 이상민-임근배 감독, 선수시절 현대 간판스타로 활약
현대캐피탈 최태웅 감독은 삼성출신

재계 라이벌인 삼성과 현대는 스포츠 현장에서도 팽팽한 긴장 관계를 유지했다. 농구와 배구가 대표적이다. 농구는 1970년대 후반부터, 배구는 삼성화재가 창단한 1990년 중반 이후부터 두 회사는 숙명의 맞수로 인기몰이를 책임졌다. 남자 농구는 오너들의 비상한 관심 속에 대리전 양상까지 띠었다. 남자농구 실업팀 현대 창단 멤버인 신선우 한국여자농구연맹(WKBL) 총재 대행은 “삼성과의 경기를 앞두고는 혈서라도 쓸 분위기였다”고 회고했다. 삼성 농구단 출신인 이성훈 한국농구연맹(KBL) 사무총장은 “현대와 맞붙으면 전쟁을 치르는 것 같았다. 경기 전날 선수들이 잠을 못 이뤄 바가지에 소주와 맥주를 부은 뒤 한 잔씩 마셨다”고 말했다. 삼성과 현대는 유망주 영입을 위해 스카우트에 사활을 걸었고, 심판 로비 등 과열된 장외 대결을 벌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두 팀의 선수가 서로 트레이드되거나 상대 팀의 지도자가 되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최근 이런 벽은 허물어지고 있다. 프로배구 현대캐피탈에서 새롭게 지휘봉을 잡은 최태웅 감독은 대학 졸업 후 10년 가까이 삼성화재의 간판 세터로 활약했다. 최 감독이 2010년 현대캐피탈로 이적해 뛰긴 했어도 이례적인 감독 인선인 것은 사실이다. 여자프로농구 삼성은 16일 임근배 전 모비스 코치를 신임 감독으로 선임했다. 임 감독은 경희대 졸업 후 줄곧 현대에서만 뛰다 지도자로 변신했다. 특히 삼성은 전임 이호근 감독에 연이어 현대 출신을 감독으로 뽑았다. 남자 프로농구 삼성 역시 현대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이상민 감독이 벤치를 지키고 있다. 삼성에서 뛴 인삼공사 전창진 감독은 “삼성 남녀 감독이 계속 현대 출신으로 채워진 건 달라진 세태를 반영한 것 같다”고 했다.

지난해까지 프로배구 남자부 7연패를 이뤘던 삼성화재의 임도헌 코치는 현대자동차에서 간판 공격수로 활약하다 팀을 옮겨 신치용 감독과 호흡을 맞추고 있다. 신 감독은 평소 사석에서 “내가 감독에서 물러나면 임 코치가 내 뒤를 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곤 한다.

이 같은 상호 교류 바람은 모기업부터가 오너 중심에서 벗어나 전문 경영인 체제로 운영되는 데다 활발한 외부 영입으로 순혈주의가 약해지고 있는 영향이 크다. 출신보다는 실력 위주의 인사가 중용되는 것이다. 최태웅 감독, 임근배 감독, 임도헌 코치 등은 이미 선수나 지도자로서 인품과 리더십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었다. 농구에서는 2001년 현대가 팀을 해체하면서 양강 구도가 깨진 측면도 작용했다. 저돌적인 추진력으로 대변되는 현대와 섬세한 관리가 강조되는 삼성은 경기장에서도 대조적인 팀 컬러를 보였다. 양쪽을 두루 볼 수 있는 하이브리드형 지도자는 승리를 향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킬 수 있는 장점도 지녔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