쉿! 대출팀장님은 모텔 잠복근무중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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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들, 개인사업자 - 中企 상환능력 파악 천태만상

《 지난해 말 서울 시내 A모텔 앞 도로. B 씨는 모텔 길 건너편에 주차한 채 차량 의자에 몸을 깊숙이 파묻고 있었다. 그는 코트 안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더니 모텔 주차장 입구로 들어가는 차량 수를 일일이 세어가며 메모했다. 차량을 이용하지 않고 모텔로 걸어 들어가는 사람들의 수도 빼놓지 않고 수첩에 기록했다. 오후 들어 인적이 뜸해지자 B 씨는 모텔 인근을 서성였다. 수도계량기를 살피고 객실 청소부의 카트를 몰래 훔쳐보기도 했다. 날이 어두워지고 다시 투숙객의 발길이 이어지자 그는 차로 돌아가 다시 투숙객을 살폈다. 이런 B 씨의 ‘기행(奇行)’은 밤늦게까지 계속됐다. 이렇게 수상쩍은 행동을 하는 B 씨는 멀쩡한 시중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담당 행원이다. 대출 신청을 한 A모텔의 실제 매출을 파악하기 위해 현장 실사를 나갔던 것이다. 》  
○ 김 사장의 ‘실제 수익’ 파악이 영업의 지름길

최근 영업 환경이 나빠진 은행들이 개인사업자와 중소기업을 대출고객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대기업들이 주거래은행을 바꾸는 일은 드물고 가계대출은 억제하는 분위기여서 그나마 수익을 낼 수 있는 곳이 개인사업자와 중소기업들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상환 능력이 우수한 ‘우량’ 개인사업자와 중소기업을 어떻게 가려내느냐이다. 이에 따라 은행들은 업체의 실제 상황과 사업주의 상환 능력을 확인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은행 직원들이 중소기업과 개인사업자의 상환 능력을 파악하기 위해 가장 많이 쓰는 방법은 현장 실사다. 숙박업소나 음식점 등 현금 고객이 많은 사업장일 경우 현장에 나가 손님의 수를 살펴야 전체 매출액의 규모를 정확하게 추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애견숍의 경우 잘생긴 강아지가 비싸게 팔린다는 점을 감안해 대출 담당자가 강아지들의 외모를 직접 살피는 경우도 있다.

신동관 신한은행 명동금융센터 부지점장은 “현장에 나가야 재무제표에 나타나지 않는 고객의 현금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며 “재무제표가 나빠도 현금 흐름이 좋으면 대출 한도를 늘리거나 금리를 깎아 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사업주의 자녀가 사업체를 이어받을 예정일 때에는 자녀가 대학에서 무엇을 전공하는지도 조사한다. 자녀의 전공이 부모의 사업과 관련이 있다면 사업체를 물려받아 한 단계 발전시킬 가능성이 높아지고 업체의 부실 위험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사업장으로 들어가는 진입로의 정돈상태, 직원들의 머리 모양이나 눈빛도 대출 심사할 때 살피는 중요 요소다.

우삼명 기업은행 화성남양지점 부지점장은 “직원들이 단정해 보이고 회사가 깨끗하게 잘 정돈돼 있을수록 발전 가능성이 높다”라고 설명했다.

○ 고객 마음 잡기 위해 가족 생일도 챙겨

새로운 거래처를 만드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공단이나 주요 상권은 은행들의 영업력이 ‘정면승부’를 벌이는 전장이다. 대출 담당자들은 “영업은 결국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일”이라며 “감성에 호소하는 게 의외로 잘 통한다”라고 귀띔했다.

농협은행은 최근 한 중소기업의 대표이사가 한 달에 한 번 고향에 있는 홀어머니를 방문하는 것을 확인하고 대출 담당 직원이 직접 어머니 생신선물을 들고 고향에 가 대출을 성사시켰다.

은행 직원들은 고객이 원하는 대출 요건을 맞추기 위해 고군분투하기도 한다. 이광희 우리은행 수원시청역지점 차장은 “고객이 대출을 요구하면 자택, 본사 등의 등기부등본을 일일이 확인해 근저당이 잡혀 있지 않은 담보를 찾아 가능한 한 가장 낮은 금리로 대출을 해주려 한다”고 설명했다.

최근 은행권의 대면거래 비중이 떨어지면서 직원들이 직접 발로 뛰며 우량 고객을 찾아다녀야 하는 필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수익률만큼 중요한 게 전체 매출 규모인데 현재로서는 새로 영업을 할 수 있는 곳이 중소기업밖에 없다”며 “우량 중소기업의 수는 한정돼 있어서 은행 간 출혈경쟁을 벌이는 일도 없지 않다”고 강조했다.

송충현 balgun@donga.com·백연상 기자
#대출#은행#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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