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위안부는 인신매매 희생자” “자위대는 우리 軍”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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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외교전쟁]美日 밀월에 막나가는 아베

아베 신조 일본 총리(사진)가 27일 자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인신매매(human trafficking)로 희생된 분들”이라고 한 표현에 대해 비판이 확산되고 있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는 페이스북에서 “‘인신매매’라는 표현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간접적으로 매춘부라고 상정하는 표현”이라며 “일본군이 운영했던 성노예의 성격을 약화시키려는 의도로 추정된다”고 했다.

아베 총리가 일본어로 표현한 ‘인신매매’는 영어로는 ‘human trafficking’으로 번역돼 워싱턴포스트 인터넷판에 실렸다. ‘인신매매’란 표현은 2일 웬디 셔먼 미국 정무차관이 외신기자클럽에 전달한 논평에서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군이 성적인 목적으로 여성을 ‘인신매매’한 것은 끔찍하고 지독한 인권침해”라고 말한 적이 있어 언뜻 보면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일본어에서의 ‘인신매매’는 부모나 민간업자에 의한 행위를 연상시켜 군대나 정부의 책임을 희석시키는 뉘앙스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에 비해 영어에서의 ‘trafficking’은 강제동원의 뉘앙스를 포함하는 단어로 미 국무부가 이 단어를 쓴 것은 일본 정부의 책임을 전제로 한 것이다.

아베 총리의 이번 발언은 다음 달 29일 미국 상하원 합동 연설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을 속이기 위한 ‘이중 플레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요미우리신문은 “아베 총리는 (영어와 일본어의) 뉘앙스 차이를 염두에 두고 (영역할 경우) 미 정부의 표현과 같은 용어가 되도록 ‘인신매매’라는 단어를 사용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외교가에서는 아베 총리가 미일 밀월을 등에 업고 거침없이 혼네(本音·속마음)를 드러내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과의 관계가 호전되자 과거사 책임을 교묘하게 피해가는 한편 북한 핵 문제 같은 현안에도 적극 개입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아베 총리는 20일 국회에서 자위대를 ‘우리 군’으로 지칭하기도 했다. 야당 의원의 질책에도 “해외 군대와 공동 대응을 한다는 측면에서 ‘우리 군’으로 부른 것”이라며 별것 아니라는 투로 대응했지만 일본이 패망한 이후 자위대는 ‘전력(戰力)’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게 일관되게 유지한 일본의 ‘다테마에(建前·겉으로 드러내는 명분)’였다.

노골적인 언론 통제도 더욱 강화되고 있다. 일본 경제산업성 관료 출신의 해설가 고가 시게아키 씨는 27일 민영방송 TV아사히의 간판 뉴스 프로그램인 생방송 ‘보도 스테이션’에 출연해 갑자기 “TV아사히 회장과 (연예·제작기획사) 후루타 프로젝트 회장의 의향에 따라 (내가) 오늘로 그만두게 됐다”고 말했다. TV아사히 측은 그 자리에서 부정했지만 고가 씨는 “내가 다시 한번 말하고 싶은 것은 ‘아이엠 낫 아베(I am not Abe)’다”라며 종이를 들어 보였다.

한편 한국 외교부는 29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의 책임을 일본 정부가 분명히 인정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첫걸음”이라는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29일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아베 총리의 미 의회 연설과 관련해 “분명한 역사인식을 표명해 한국만이 아니라 국제사회에 일본 지도자의 면모를 보여주고 (일본이) 아시아와 세계에 기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호기로 삼기 바란다”며 “이 기회를 놓치면 일본의 리더십에 큰 손상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도쿄=배극인 특파원 bae2150@donga.com / 조숭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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