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복과 용서, 무엇이 구원의 열쇠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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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개봉 ‘살인의뢰’

영화 ‘살인의뢰’에서 강력계 형사 태수를 연기한 김상경. 법을 수호하는 경찰이지만 범죄자에게 여동생을 잃은 피해자가 되며 내적 갈등을 겪는다. 딜라이트 제공
영화 ‘살인의뢰’에서 강력계 형사 태수를 연기한 김상경. 법을 수호하는 경찰이지만 범죄자에게 여동생을 잃은 피해자가 되며 내적 갈등을 겪는다. 딜라이트 제공
몇몇 영화는 볼 땐 재밌으나 돌아서면 잊는다. 어떤 건 그냥저냥 봤는데 묘하게 잔상이 끈덕지다. 영화 ‘살인의뢰’는 뒤편에 속한다.

12일 선뵈는 ‘살인의뢰’는 스릴러 계열이나 속도감이 뛰어나진 않다. 반전도 딱히 없다. 제목을 보면 대충 흐름이 잡힌다. 그런데 뭔가를 지녔다. 잠깐 포스터 얘기를 하자. 주연 김상경 김성균 박성웅의 얼굴만 가득한. 그 눈빛들을 주목하길. 이 영화는 이들의 눈에 담긴 결여(缺如)를 따라가야 한다.

능글맞은 태수(김상경)는 연쇄살인범을 쫓는 강력계 형사. 우연히 뺑소니를 친 조강천(박성웅)을 붙잡았더니 다름 아닌 살인 용의자가 아닌가. 허나 이 ‘운수 좋은 날’은 곧 지옥으로 바뀐다. 그가 저지른 마지막 범행 대상이 다름 아닌 태수의 여동생 수경(윤승아). 갖은 협박과 회유에도 강천은 끝내 수경의 행방을 불지 않는다. 괴로운 건 태수만이 아니다. 평범한 직장인이던 수경의 남편 승현(김성균)은 슬픔에 몸부림치다 태수와 연락마저 끊는다. 3년 뒤. 살인사건을 조사하던 태수는 우연히 폐쇄회로(CC)TV에서 승현을 마주하는데….

줄거리에서 보듯 ‘살인의뢰’는 관점이 생경하다. 범죄스릴러는 주로 범인을 쫓는 과정을 담는 게 전형. 허나 이 작품은 범인이 잡힌 뒤부터 시작한다. 마구잡이 살인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의 ‘선택’이 이야기를 끌고 간다. 살인자는 사형을 선고받긴 했으나 한 줌의 뉘우침도 없이 교도소에서 살아가는 상황. 상처 입은 이를 구원할 수 있는 건 보복인가, 용서인가.

사실 영화는 다소 한쪽으로 기울어진 측면이 있다. 범죄에 대한 응징에 정당성을 부여한다고나 할까. 물론 숱한 액션영화(심지어 드라마도)가 폭력을 미화하는 시대에 이 정도쯤이야 여길 수도 있다. 허나 감정적 공감과 현실적 적용은 전혀 차원이 다르다. 영화에서도 언급되지만 ‘사적 복수’는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문제다.

다시 눈빛으로 돌아가 보자. 영화도 포스터도 태수와 승현, 강천은 하나같이 공허하다. 자의건 타의건 살인과 연을 맺는 순간 인성 자체를 파괴당하기 때문은 아닐는지. 우리 사회가 범죄율을 낮추는 데도 힘써야겠지만, 피해자들을 얼마나 잘 보듬고 있는지 한번쯤 생각해봤으면. 사족 하나. 박성웅은 2013년 ‘신세계’에서 최고의 악당을 보여주더니 이번엔 최고의 악마를 그려냈다. 아무리 연기라도 주위에서 잘 ‘회복’하도록 챙겨주면 좋겠다. 18세 이상 관람가.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살인의뢰#김상경#박성웅#연쇄살인범#사적 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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